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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사상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저자 자신이 3년간 이탈리아, 그리스,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여행하며 느낀 체험을 에세이 형식으로 적어낸 책이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먼 북소리>의 모티브(motive)가 되는 3년간의 여행이 1986년부터 1989년 동안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십여 년도 훨씬 전의 여행인 것이다.

그렇기에 책에 담긴 유럽은 현재의 유럽이 아님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 <댄스댄스댄스>를 집필하던 1980년 후반의 유럽 체험이니 지금의 유럽과는 판이하게 다른 과거 유럽의 모습만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유럽여행에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구매하는 독자에겐 이 책은 뚱딴지 같은 책으로 비쳐질지 모른다. 하지만 옛 유럽에 대한 향수, 유럽인들에 정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흥미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로마, 그리스 아테네, 스팟체스 섬, 미코노스, 시실리. 로마.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어지는 긴 여정에서, 하루키는 지금의 유럽인들에게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독특한 삶의 가치관을 적어내고 있다. 그 가치관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루키는 마치 오늘의 일처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그 십 년 전의 유럽은 독자들 마음에 작은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유럽, 부러움과 풍요의 대상인 유럽의 과거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적잖은 웃음과 재미를 전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섬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01p.스팟체스섬)

인간이 생물병기나 독가스 사용을 금지한 것처럼 고양이들이 코 공격을 금지하는 협정을 맺어야 할 시기에 이른 건 아닐까(109p)


특히 이탈리아에 관한 부분은 잠시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열정적인 기상 캐스터에 관한 내용, 또 로마의 좀도둑 이야기, 그리고, 이탈리아의 엉망진창 우편서비스에 관한 이야기는 한편의 시트콤(sitcom)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하루키가 전하는 이탈리아 이야기가 비단 웃음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교훈도 슬며시 전해준다. 무엇인가 관심을 갖고 여럿이 모여 떠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에 관한 묘사는 2002년 월드컵 때, 판정시비로 우리 나라 국민들과 감정싸움 직전까지 갔던 이탈리아 사람들의 국민성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사적인 견해지만, 만약 조금만 일찍 이탈리아인들의 국민성을 알았더라면 월드컵 당시 흥분한 그들을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달랠 수 있지 않았을까?('먼 북소리'를 보면 금방 열기가 고조되는 우리 나라와 이탈리아의 국민성이 지나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루키의 3년여의 여행기, 솔직하고 담백한, 이것저것 오래된 골동품을 수집한 듯한 책의 내용이 정겹게 다가온다. 과거의 유럽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다.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문학사상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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