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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니까 오전 8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씻고 나서 어제 사둔 포도주스를 꺼내서 마시고 보조가방만 메고 밖으로 나섰다. 오전에는 타이페이 근교에 위치한 양명산에 가고 오후에는 고궁박물관과 스린 야시장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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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사역에서 MRT(지하철)로 타이페이역으로 갔다. 타이페이역 앞에 있는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타고 양명산으로 가면 된다. 조금 기다리자 ‘陽明山’이라고 써있는 버스가 왔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그 버스를 타는 아저씨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손으로 버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빠오치엔(실례합니다), 양밍샨(양명산)?"

아저씨는 뭐라고 말을 하며 타라는 몸짓을 한다. 버스에 올라서 기사 아저씨에게 요금을 물었다.

"양밍샨? 뚸샤오치엔(얼마입니까)?"

기사아저씨는 손가락 3개를 펴보인다. 30NT(1NT=35원). 자리에 앉아서 버스 내부를 보았다. 역시 우리나라 버스와 비슷하다. 좌석 배치도 비슷하고 광고들이 붙어있는 것도 비슷하고. 차이를 찾자면 노약자 보호석이 좀더 많다는 것, 그리고 앞에서 TV 비슷한 것을 틀어준다는 것 정도.

밖을 보자 우선 스쿠터가 눈에 띈다. 대만은 스쿠터의 천국이다. 엄청나게 많은 스쿠터들이 몰려다니고, 차도에는 스쿠터 전용 대기공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30년 넘게 한국에서 살면서 본 스쿠터의 수보다 대만에서 3일 동안 본 스쿠터의 수가 더 많은 것 같다.

양명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본 바깥의 모습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건물들에 있는 한문으로 된 간판만 아니라면, 그리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중국말들만 아니라면 여기를 한국의 어디쯤으로 생각해도 될 정도다. 날씨가 좀 흐리다는 것이 아쉽지만 비만 오지 않는다면 괜찮은 산행이 될 것도 같다. 어쨌건 마음만은 편하다.

양명산에 도착해서 우선 편의점에 들렀다. 산행 도중에 먹을 도시락(40NT)을 사고 녹차음료(20NT)를 하나 샀다. 타이페이에는 편의점이 많은데 특히 ‘훼미리마트(Family Mart)’가 많다. 대만에서는 훼미리마트를 ‘전가편리상점(全家便利商店)’으로 표기한다.

조금 걸으니 큰 안내판이 나온다. 지금의 위치에서 더 걸어가야 공원의 중심이 나오는 것 같다. 양명산 국가공원은 대만에 있는 6개의 국가공원 중 하나이다. 이 공원 안에는 높고 낮은 산들이 10개 가량 있고 그 외에도 온천과 과수원 등이 흩어져 있다고 한다. 양명산이란 특정한 산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이 일대를 총칭하는 명칭이다.

양명산 국가공원의 주차장
양명산 국가공원의 주차장 ⓒ 김준희
1시간 가까이 걸었더니 양명산공원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안쪽에는 영어로 서비스 센터(Service Center), 한문으로 ‘복무중심(服務中心)’이라고 써있는 작은 건물도 있다. 넓은 주차장이 있고 한쪽에는 큰 꽃시계가 있고 자판기와 벤치를 중심으로 꽃들이 많이 피어있다.

지금 대만의 날씨도 춥지는 않지만 좀더 따뜻해진 후에 오면 더 많은 꽃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벤치 한쪽에 앉아서 사온 도시락을 먹고 완만한 근처 지역을 돌아다녀 보았다. 근처에는 사원도 있고 누군지 모를 동상도 있다.

월요일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이래서 국가공원인가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로 마음먹고 등산로를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의 산 밑은 보통 먹을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곳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다. 먹을거리 파는 곳은 그저 두세 군데뿐이고 기념품 파는 곳은 보이질 않는다. 워낙 넓은 곳이니까 다른 쪽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양명산의 꽃 시계
양명산의 꽃 시계 ⓒ 김준희
적당한 등산로를 하나 찾아서 오르기 시작했다. 바위산이 아니라서 그런지 오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상한 것은 등산로를 오르는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만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것보다 산 밑에 모여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조금 가다 보니까 무슨 폭포라고 쓴 표지판이 나온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작은 폭포가 있고 그 주위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 벤치에 모여서 뭔가를 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 폭포를 지나서 더 위로 올라가 보았다. 이러다 보면 한 봉우리의 정상에 도착할거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까 등산로가 꽤 좁다. 어느 정도냐면 겨우 한사람이 올라가기에 딱 맞은 폭이다. 분명히 닦여있는 등산로처럼 보이기는 한데 우리나라 산의 등산로에 비하면 너무 좁은 길이다. 그리고 길 주변으로는 나무들이 울창해서 좀처럼 바깥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등산로에 접어들면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것 이외의 다른 행동을 할 수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옆으로 비켜서서 사진을 찍거나 한쪽에 앉아서 물을 마시거나 쉴 수 있을 정도의 여유있는 길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올라가고 있는데 길이 끊겼다. 길의 앞에는 무슨 보일러실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이 있고 길은 어디로도 연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기가 정상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정상이라면 탁 트인 사방을 둘러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주위를 돌아다녀 보니 여기까지 찻길이 연결되어 있다. 저 밑에서 올라오는 차가 보인다.

그렇다면 어디론가 갈수 있는 등산로가 또 있을 텐데 아무리 주변을 찾아보아도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앞쪽으로 가보니 집이 있고 계단식 농사를 짓는 밭도 보인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은 것 같다. 한 봉우리의 정상을 가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멈춰야 할 것만 같다.

시간은 1시 가까이 되었고 고궁박물관까지 가려면 안타까워도 이만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다음에는 사전 조사를 철저하게 하고 오자고 다짐하면서 산을 내려갔다. 다시 공원의 중심으로 내려와서 40NT짜리 ‘오뎅’과 해물을 섞은 작은 탕을 먹었다.

타이페이역으로 가는 버스를 탄 시간은 2시 30분이었다. 타이페이 시내로 들어가면서 주위를 보니까 MRT역이 보인다. 버스는 MRT 단수이선을 따라서 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타이페이역까지 갈 필요가 없다. 스린(士林)역을 지나고 앞쪽으로 진탄(劍潭)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탄역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난 앞으로 가서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뚸샤오치엔?"

아저씨는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내가 멍청하게 서있자 오른손으로 왼쪽 손바닥에 15라는 수를 써보였다. 15NT를 내고 내려서 택시를 잡았다.

"워스한궈런(저는 한국인입니다)"

이 말을 하고 난 지도를 펴서 한자로 쓰인 고궁박물관을 가리켰다. 택시기사는 알았다는 듯이 말을 하고 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타이페이에서 택시는 쉽게 눈에 띈다. 모든 택시가 짙은 노란색인데다가 지붕에는 택시임을 표시하는 등을 붙이고 다니기 때문에 타이페이 시내에서는 택시를 잡기가 쉽다. 기본요금은 70NT이고 미터제이지만 흥정도 가능하다고 한다.

잠시 후에 고궁박물관에 도착했다. 택시요금은 120NT. 편하게 온 걸 생각하면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대만의 고궁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스 미술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슈 미술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곳이란다.

타이페이의 고궁박물원
타이페이의 고궁박물원 ⓒ 김준희
고궁이란 중국의 자금성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의 황제가 중국 전역에서 수집한 유물들을 자금성에서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 대만 고궁박물관의 소장품은 약 70만점인데 실제로 전시되는 것은 6500점 정도이다. 이 유물들은 모두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하면서 남경에 있는 소장품들의 4분의 1을 대만으로 옮겨온 것들이라고 한다.

고궁박물관에서 입장권(100NT)을 사고 들어갔다. 전체 건물들은 꽤 큰 편이지만 현재 확장공사중이기 때문에 그 넓은 건물들을 전부 구경할 수는 없다. 문을 연 전시관도 몇 개 되지 않는다. 몇 천 년 전의 돌도끼부터 명, 청나라 때의 각종 서화와 조각품들과 황제의 옥새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유물들도 많다.

혼자서 돌아다니니까 이런 점이 안 좋기는 하다. 박물관에 오면 뭔가 설명을 들어야 할 텐데 혼자서는 설명을 들을 방법이 없다. 여행 가이드북이 아무리 잘되어 있더라도 직접 사람에게 설명을 듣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으니 아쉽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본 것은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유물들이었다. 방 하나를 채울 만큼 많다. 작은 탑도 있고 삼국시대의 불상은 아주 많고 고려시대 때의 금관 같은 것도 보인다. 선채로 왼손의 검지는 하늘로 향하고 다른 손의 검지는 땅으로 향한, 마치 디스코를 추는 듯한 자세의 작은 불상들도 많다.

고궁박물원에 전시된 고려시대의 관
고궁박물원에 전시된 고려시대의 관 ⓒ 김준희
중국이 이 유물들을 언제 가지고 간 것일까? 중국이 한반도에 쳐들어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언제일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유물들을 타이페이의 박물관에서 보게 되니까 기분이 묘했다.

고궁 박물원에 전시된 삼국시대의 불상
고궁 박물원에 전시된 삼국시대의 불상 ⓒ 김준희
박물관의 한쪽에는 기념품들을 파는 곳이 있다. 온갖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열쇠고리와 볼펜도 많고, 티셔츠와 중국의 산수화가 그려진 머그컵도 있다. 뭘 살까 생각하다가 마우스 패드와 볼펜과 머그컵 등을 샀다. 그동안 돈을 아끼면서 다녔으니 여기서는 좀 써도 될 것 같았다. 여행을 오면 재미 중의 하나가 먹는 것과 기념품 구경이니까. 물론 돈이 많을 때의 이야기지만.

2시간 정도 구경하고 나서 다시 택시를 타고 스린역에서 내렸다(110NT). 역 앞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80NT), MRT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산에서 오래 돌아다녀서 그런지 온몸에서 땀이 나서 씻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호텔에 와서 씻고 커피 한잔을 마신 후에 7시쯤에 다시 밖으로 나섰다. 유명한 스린 야시장을 구경하기 위해서 였다. MRT를 타고 진탄역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스린 야시장이다.

이곳은 타이페이 시내의 가장 대표적인 야시장이다. 노천시장이 아니라 넓은 건물의 1층이 통째로 야시장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중국음식 특유의 강한 향이 우선 느껴진다. 각종 먹을거리를 포함해서 옷과 액세서리를 파는 곳도 있고, 동전을 넣고 농구공을 던지는 곳도 있고 우리나라의 인형 뽑기 같은 기계들도 많다.

MRT 역에서 바라본 스린 야시장
MRT 역에서 바라본 스린 야시장 ⓒ 김준희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을 오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먹을거리들 때문이다. 얼마 전에 밥을 먹어서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사먹었다. 여기서 파는 음식들은 20NT에서 60NT까지 다양하다.

단수이의 음식들과는 달리 그릇에 담아파는 음식들, 그러니까 자리잡고 앉아서 먹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해산물이 들어간 탕도 있고, 꼬치 종류는 아주 많고 각종 면과 빵과 부침개들이 즐비하다. 뭘 먹으면 좋을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이다.

음식냄새와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부침개 부치는 소리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뒤섞여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통닭을 사려는 사람들의 긴 줄은 끝날 것 같지가 않고, 밤새도록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먹더라도 음식이 떨어질 것 같지가 않다.

스린 야시장의 먹거리 상점들
스린 야시장의 먹거리 상점들 ⓒ 김준희
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앉아서 넓은 물그릇에 담긴 새우와 작은 자라를 잡고 있다. 맨손으로 잡는 게 아니라 작은 낚시도구 같은 것을 이용해서 잡고 있다. 일정한 돈을 내면 새우를 잡게 해주는 것 같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한쪽에는 불을 피워놓고 그곳에서 자기가 잡은 새우를 직접 요리해 먹는다. 구경하고 먹다보니까 어느새 10시 가까운 시간이다. 아쉽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50NT짜리 과일주스를 사서 먹으며 밖으로 나섰다.

새우를 잡는 사람들
새우를 잡는 사람들 ⓒ 김준희
다시 MRT를 타고 용산사역에서 내려서 호텔로 왔다. 어제처럼 호텔 앞의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어제 먹은 맥주는 좀 싱거운 것 같아서 오늘은 다른 걸 샀다. 방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내일의 일정을 생각해보았다. 오전에는 야류에 가고 오후에는 신베이터우에 간다.

덧붙이는 글 | 2월 6일부터 9일까지 2박 4일간 타이페이를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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