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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런 보이지 않는 신드롬은 과연 박정희의 어떤 모습에서 연유한 것일까라는 점은 결국 지난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찬양(?)이고 나아가 현 대통령의 지도력 문제를 부각시키는 모양새로 자리잡는 듯싶었다.

하지만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평소에 알고 있는 바도, 또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쯤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때이니 그에 대한 실존적인 자각을 가지기에는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문제와 연관해서 과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어떤 점에서 일부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숭앙의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점으로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다양한 박정희 관련 서적들이 나와 있었지만, 여러 권의 책들을 읽고 소화하기에는 열정과 시간이 부족한 탓으로 작지만 알찬 내용으로 엮인 책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이전에 읽었던 탁석산씨의 <한국의 주체성>과 <한국의 정체성> 책이 떠오르게 되었다.

책세상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다소 전문적인 영역을 다루면서도 그 내용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그 출판사에서 박정희를 다룬 책이 있어 서슴지 않고 선택하게 되었다.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책세상 2002)를 쓴 전재호는 80년대 이른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이론적인 안목을 갖추기 위해 학업까지 병행한 신진 정치학자였다.

책 겉 표지
책 겉 표지 ⓒ 책세상
"이 책은 일단 남북 간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국내외적 상황에서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교육받고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던 집단들이 새로 탄생한 한국의 근대화를 주도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근대화의 성격을 ‘반동적 근대주의’로 지칭한다. 여기서 ‘반동적’이란 ‘반민족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성이 지닌 진보성·혁명성·합리성·민주성이 거세되었음을 뜻한다."(<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14쪽)

저자는 글의 도입부에서 그와 같은 반동적 근대주의의 정점에 박정희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반동적’이라는 표현의 핵심적 의미를 서구 근대화의 핵심적인 정신들과는 거리가 있거나 혹은 상반되는 성질의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박정희를 민족주의의 관점과 우리의 현대 경제 발전사와 관련시키면서 상당히 실증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족주의라는 관점은 상당히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때에 따라서는 폭력과 억압도 묵인될 수 있고, 자기와 상반되는 것에는 상당한 반감과 배척 정신으로 무장할 수 있는 자칫 독선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이념의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박정희는 이런 민족주의에 기대어 국민들을 가두고 억압했다는 것이다.

한편 경제 발전사에서 박정희의 업적을 상당히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저자는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을 당시 이미 민주당에서 경제 발전 5개년 계획을 잡고 있었으며, 박정희는 그런 계획을 실행했을 뿐이었고, 또한 무리한 차관 도입을 통해 우리 경제가 여타 선진국의 경제적 속국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결국은 우리의 민주화와 민족 통일의 대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되었고, 그런 박정희 시대의 보이지 않는 억압과 폭력의 전모들이 근 몇 십년 우리 현대사를 좌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런 부분들을 통해 박정희는 우리 근대사의 영웅적인 인물이기 보다는 잘못된 근대화의 탈을 쓰고 폭력과 억압을 통해 민주화와 통일을 길을 가로막은 반동적 근대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물론 저자는 박정희가 우리 현대사에 있어 업적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본질에는 빗나간 민족주의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음을 역설한다.

"여기서 분명히 밝히지만, 이 글은 박정희의 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물론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와 민족 중흥이라는 구호를 이용해 국민 동원에 성공했고 어느 정도 경제를 발전시킨 공이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 민족주의의 핵심 과제인 통일과 민족 통합 그리고 민주주의의 제도화에는 큰 해를 끼친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같은 책 34쪽에서)

최근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특히 박정희 시해 사건을 담은 영화가 상영되기도 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현대사에 끼친 영향은 여러 모로 컸음을 직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를 살지 않는 사람으로서 그를 단적으로 어떤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와 동시대에 살면서 나의 실존적 삶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면 직접적으로 그는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다만 간접적으로 책이나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그에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역사 해석의 기준 잣대는 현재이다. 현재를 통해 과거를 반성해 볼 수 있고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가 가지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철저한 탐구와 실증적인 접근을 통해 박정희 신드롬 이면에 숨겨진 왜곡된 역사적 추악함을 밝혀내고 또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도록 하는 데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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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전재호 지음, 책세상(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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