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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자 받침이 들어가는 나이에서 ‘ㄴ’자 받침이 들어가는 나이로,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 보다는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큰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따스한 봄기운에 녹아내리기 전에 겨울이 보고 싶었다. 곧 TV 브라운관에서도, 신문에서도 조용히 사그라질 그 겨울을 보고 싶었다.

지난 주말 적막한 강원도의 고속도로를 들어서면서 "아직 눈을 볼 수 있을까?"하는 조바심을 차창 밖으로 보냈다. 주위 산에는 솜사탕처럼 눈이 얹혀 있다. 멀리 불빛 받은 스키장에도 하얀 눈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몇 해 전 처음으로 가본 ‘해맞이 공원’엘 다시 갔다. 뒤쪽으로는 아직도 하얀 눈이 가득한 설악산이 있다. 차를 타고 오면서도 차에서 내려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아름다운 겨울산을 보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만난 친구처럼, 곧 멀리 떠나보낼 친구처럼 여러 마음을 가지고….

겨울바다, 파도에 반했던 그 곳에는 몇 해 전의 그것처럼 잊지 않고, 떠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반가움이 있다. 방파제 끝으로 가 말없이 유난히 파란 하늘과 바다를 안는다. 바다도, 바람도, 파도도 나에게 와서 안기고 보듬는다. 겨울 산을 업고 겨울 바다를 안은 나는 비로소 겨울과 마음껏 포옹했다.

▲ 설악산은 다행히 아직 겨울이다.
ⓒ 윤돌

▲ 파랗게 다가와 하얗게 부서지는 겨울 바다
ⓒ 윤돌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횡계 나들목을 나와 옛 영동고속도로를 찾아들었다. ‘대관령 옛길’이라는 정겨운 이름의 그 길은 살짝 얼어 있고 주위로는 온통 눈이다. 길 한편에 내가 찾아가는 양떼 목장의 이정표가 있다. 하얀 눈 언덕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 예쁜 이정표가 내 얼굴에 웃음을 준다.

양떼 목장은 ‘옛 대관령 휴게소’ 뒤편에 있는데 하얀 눈 장식을 한 나무들 사이로 미끌미끌 눈길을 종종걸음으로 다가서야 했다. 오후가 되어가는 목장의 산과 나무에는 눈꽃 대신 사람들의 웃음꽃이 맺혔다. 겨울의 따뜻함을 나는 이제야 알겠다. 시린 바람과 무색·무표정의 저 흰 눈 속에 담긴 겨울의 따뜻함을 이제야 느끼겠다.

▲ 서부 영화의 OK 목장에서는 느끼지 못할 ‘예쁜 마음’이 느껴졌다.
ⓒ 윤돌

▲ 방목지에는 양 대신 눈이 가득하다.
ⓒ 윤돌

눈으로 가득한 양떼목장, 양들은 가는 겨울을 아쉬워할까? 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을까? 울타리에 갇혀 지내는 양들은 방목장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문객들이 집어주는 건초더미를 받아먹고 있다. 양들은 서둘러 푸른 풀들이 돋아나는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세상에는 또 다른 양들이 있을 텐데, 내 아쉬움으로 다른 사람의 세월까지 붙잡고 싶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휴게실을 지난 눈 언덕에는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과 잠시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 어른들이 있다. 쉬익 하고 미끄러지는 눈썰매 위로 눈발이 날려 내 얼굴을 감싼다. 시린 손과 얼굴을 비벼가며 늦겨울의 정취를 만끽한다.

언덕 위에는 통나무로 지은 창고가 있다. 양떼목장을 소개하는 잡지나 사진에서 자주 보던 그 창고는 겨울과도 잘 어울린다. 울타리가 눈에 잠겨 하얀 들판이 되고, 들판 위에 창고가 서 있고, 뒤로는 겨울나무와 산들이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 양들도 내 마음처럼 겨울을 아쉬워하고 있을까?
ⓒ 윤돌

▲ 가끔씩 불어오는 매서운 눈보라가 얼굴을 할퀸다.
ⓒ 윤돌

휴게실 한쪽 구석에 앉아 한 알 한 알 옥수수를 입에 넣고, 그간 담아온 겨울을 마음에 담았다. 눈 에도 누워보고, 겨울에도 안겨보며 목장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새삼 얼어있는 대관령 옛길이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설악산으로 수학여행 떠난 사람이라면 그 구불구불한 길을 넘으며 맞던 추억을 한 두 장면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난 김에 옛 앨범을 꺼내 볼까?

▲ 하늘은 봄을 그리워하고 있다. 가로등과 구름이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 윤돌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횡계 나들목 - 425번 지방국도 - 대관령 옛길 - 대관령 휴게소(대관령 양떼목장(033-335-1966))과 선자령으로 가는 표지판.

저자의 블로그 www.yundol.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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