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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는 이런 현대인들의 정신병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는 듯하다. 쉽게 읽으면 괴짜 정신과의사의 괴짜환자 치료기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 내용을 조금만 음미해 본다면 현대인들이 안고 사는 정신병의 근원과 치유방법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작가의 기발함에 놀라게 된다.

비타민 주사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 비타민 집착증을 가진 괴짜 신경정신과의사 이라부 이치로와 미니스커트와 움푹 패인 상의 차림으로 환자들의 시선을 끄는 이라부의 충실한(?) 조무자인 무대포 간호사 마유미.

이들의 환자는 그에 걸맞게 기기묘묘(奇奇妙妙)하기 이를 데 없다.

뾰족한 것만 보면 공포를 느끼는 선단공포증(先端恐怖症) 환자 세이지는 칼을 수족 부리듯 하는 야쿠자 중간보스다. 매번 공중그네에서 떨어지는 고헤이는 후배에 대한 질투심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서커스단의 베테랑 공중그네 곡예사고, 강박신경증 환자 다쓰로는 촉망받는 대학병원의 의사로 대학병원 최고책임자인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어 안달이 난 강박증 환자다.

그뿐이 아니다. 프로구단의 붙박이 3루수 스즈키는 잡은 타구의 1루 송구를 제대로 못하는 입스(YIPS) 증세로 시달리는 야구선수며, 유명 여류작가 호시야마는 본인의 글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헷갈릴 때마다 구토를 일으키는 심인성 구토증을 갖고 있다.

모두 본인들이 하는 일에서는 일가를 이룰 만큼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모두 본인들의 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병적으로 꺼리는 사람들이다.

묘하게도 그들이 겪는 대부분 증상은 본인들이 만들어 낸 증상이라는 것이다. 이 증상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과 지나친 성취욕 때문에 생겼다.

그런데 정작 이라부 박사는 그런 환자들의 증세에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곡예사 환자에게는 공중그네 가르쳐달라고 떼를 쓰고, 작가에게는 엉망인 자기 글을 들이대며 자기 책 내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자기중심적인 어린애와 같은 행동 뿐이다.

그리고 찾아오는 이들 환자에게 이라부 박사와 마유미가 맨 처음 해주는 일이란 무조건 비타민 주사를 한 대씩 놓아 주는 것. 이라부 박사는 비타민을 만병통치약 쯤으로 여기고, 환자의 증상에는 아무 상관없이 비타민 주사를 놓는다.

증상이 심한 사람에게는 큰 주사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작은 주사기로 넣지만 어찌됐건 환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비명을 지르며 이 주사를 맞아야 한다. 황당한 사건을 겪은 환자들은 마음 속으로 다신 이 병원에 안 오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러나 마치 마약에라도 중독된 듯 다시 이라부를 찾아오고 비타민 주사를 맞는다. 이라부 박사의 이런 엉뚱함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세상에 저런 괴짜 정신과 의사가 있을까. 환자들보다 더 심한 정신병 증상을 보이는 의사라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이라부 박사의 엉뚱함 속에는 현대인들의 정신병을 치료하는 그만의 노하우가 숨어 있다. 절대로 환자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이라부의 행동들은 아무리 환자라도 타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는 현명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본인의 엉뚱한 행동들이 가져오는 결과를 통해 환자들에게 순수함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치밀함과 기발함을 발휘한다.

이라부의 진찰실은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유원지의 관람차 같다. 일단 타면 일주가 끝날 때까지 페이스를 지켜야 하는 관람차. 환자들은 단지 그 관람차에 타고 있다는 것만으로 각자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이라부가 그렇게 집착을 보인 비타민 주사는 어쩌면 그만의 관람차를 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연료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라부 박사가 벌였던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정신병 치료기는 나름의 정신병적 증상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제공하는 유쾌한 치료법임에 틀림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의 유쾌함이나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아마 현대인의 정신병 중 하나에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그런 사람들은 부디 이라부 종합병원의 어두컴컴한 신경과에 가서 비타민 주사 한대를 맞도록 권하고 싶다.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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