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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참할 수 있는 구경 중에 으뜸은 ‘싸움구경’이다. 누가 이길지, 누가 질지를 생각하면서 지켜보는 이 싸움구경은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싸움구경’과 비슷한 이치의 재미를 주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비교하기'를 보는 재미다. 이것 또한 당사자들에게는 진저리나는 일이겠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다. 역대대통령 잘못 비교하기, 유명연예인 특징 비교하기 등등 비교한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의 심리를 적극 이용한, 속된 말로 ‘제목부터 먹고 들어가는’ 책이 등장해 화제다. <남자 vs 남자>의 저자이자 정신과 의사로 활동 중인 정혜신의 <사람 vs 사람>이 그것이다.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것은 틀림없는데 작품에서 언급된 주인공들의 명단을 보면 그 흥미로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심은하 vs 김민기', '정몽준 vs 이창동', '박근혜 vs 문성근', '김대중 vs 김훈'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현존인물 16명의 이름이 홀로 등장하는 것도 아니며 비교대상으로 <사람 vs 사람>에 목차를 자리 잡고 있다.

‘감히’ 이들을 비교하는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용기인가, 무모함인가? 이렇게 해도 상관이 없을까? 작품을 본격적으로 보기에 앞서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 vs 사람>의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 vs 남자>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16명을 찬양하려고 펜을 든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할까?

'칭찬'할 것이야 칭찬하지만, '씹을' 것은 거침없이 씹는 사람이 바로 전혜신이라는 저자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까지 아찔해질 정도의 수준이다. 그럼에도 어째서일까? 읽을수록 재밌는 글이 <사람 vs 사람>이다. 단순히 비교하기를 지켜보는 재미 때문일까? 아니면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기 때문일까?

유일한 별명이 유신과 연관되어 있었던 대학생 문성근은 같은 캠퍼스에서 생활하는 박정희의 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76부터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맞서다 험난한 감옥살이를 시작하는 아버지 문익환 목사를 보면서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던 박근혜 동문에 대한 심정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박근혜 vs 문성근 중에서


저자는 공통점을 통해 두 명의 유명인사를 비교한다. 가령 박근혜와 문성근은 특별한 아버지를 뒀다는 큰 공통점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자식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은 특별한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점에서 특별해 보인다고 하는데 일단 그 점은 수긍할 만 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행동 성향에 대한 분석이다.

분석심리학에서는 부성콤플렉스를 가진 여성을 ‘영원한 소녀’라고 부른다. 그들은 성장 후에도 여전히 현실적 부모와 신화적 부모를 분리하지 못하는, 부모 문제에 관한 한 유아적 심리상태에 머물러 있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신화적 부성 원형으로의 박정희’를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 아버지 생전에 이미 유명인사였던 문성근은 언론으로부터 수도 없이 아버지와의 공동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호기심 차원에서 대담을 시키려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버님은 나와 차원이 다른 분이다. 섞어놓지 말라”며 거절했다.
-박근혜 vs 문성근 중에서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라는 직업인답게 흥미를 위해서 무턱대고 유명인사들을 비교하지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행동성향의 원인에서 공통점을 찾은 뒤에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행동의 분석으로 ‘비교하기’를 보여주고 있다.

욕심의 ‘이인화’와 희망의 ‘김근태’, 나를 골라서 만든다는 ‘나훈아’와 나를 깍아서 만든다는 ‘김중배’ 등의 비교들이 그렇다. 원인이 똑같다 할지라도 왜 성향이 다른지, 그럴 경우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지적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 vs 사람>은 터무니없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저자의 말마따나 “내가 인물평전을 쓸 때마다 반복적으로 되뇌는 것은 한 가지, 그 인물 자신이 수긍할 만한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원칙을 고수한 까닭에 일단 제목부터 먹고 들어가는 이 책은 내용 또한 일정 부분 먹고 들어간다.

다만 비교하기의 대상 당사자들은 꽤 심기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의사의 말이라 해도 부성콤플렉스에 빠져 있다는 평이나 심각한 자기 착각에 빠져 있다는 평, 허무개그 같은 소통의 장애를 겪는다는 평 등을 듣고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지만 옛말에도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하지 않던가.

저자는 본문에서 여라 차례 농담 반 진실 반으로 국회의원 같은 사회 지도층 인물이니 분석과 비교를 하지, 일반인이면 그러지도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영광으로 생각하면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어쨌든 이런 구경이 그렇듯이 당사자들의 심정과 관계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구경할 수 있으니 보는 이들에게 이보다 반가운 구경거리도 없다. 무모한 것인지, 용기인 지는 감히 판단할 수 없지만 이런 구경거리를 던져준 저자에게 일단 고마움을 표할 따름이다.

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개마고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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