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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두 공간으로 나뉘어졌다. 더 이상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위의 생활만으로는 현실을 유지해 나갈 수 없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그 속의 사이버 세상도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 또 다른 일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인터넷의 영향력은 나날이 커져만 가는 데 비해 정작 그 속의 문화는 무질서의 형태에서 고정화 되어 있다. '나'라는 한 존재가 인터넷에 들어가기만 하면 수많은 익명의 누리꾼(네티즌)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하게 된다.

최근에 인터넷의 무서움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사건들이 여럿 일어났다. 이제 인터넷 속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는 더 이상 남들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아이디를 하나라도 가지고 있다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이버 퍽치기를 당할 위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세상을 향한 약자들의 신문고

정신없이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실제 현실을 우리가 보고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신문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매체들이 우리가 사는 현실을 재구성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미디어들이 보여주는 그 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 이후 과거 미디어들로 인해 제한되었던 그 세상의 틀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최근에 있었던 부실 도시락 파문도 그 사실이 인터넷에 올라가면서 수많은 누리꾼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결국 언론에서도 그 문제를 다루면서 큰 이슈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이 넓어졌다. 대중들이라고 불리었던 수많은 익명의 존재들이 이젠 미디어들의 세상을 변화시킬 정도로 그 힘이 커졌다. 이 도시락 파문은 인터넷의 힘이 사회적인 약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힘이 반대로 작용하면 누군가에게는 끔찍스러운 악몽을 낳기도 한다.

타락한 신문고 - 인터넷에선 더 이상 사적이란 단어는 없다

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누나가 찍은 동생의 몸매 사진이나 전직 대통령의 손녀가 미니홈피에 올린 사진과 글은 검색어 1위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번졌다. 또 술집 접대부 같은 여성 아나운서라는 기자의 말도 블로그라는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곳곳으로 번졌고 결국 소송까지 가게 되었다.

최근에 있었던 홍대 클럽 외국인 강사 파문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우선 '잉글리시 스펙트럼'이라는 외국인 영어강사 사이트에서 '한국은 여자랑 자기 쉬운 곳'이라는 한국여성 비하 글이 뜨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홍대 클럽 M 바 미니홈피에서 누리꾼들이 섹시코스튬파티 사진을 퍼가 '난교파티'나 '음란파티'로 치부하며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번졌다.

결국 이 사진 속의 한국 여성들은 이들 누리꾼들의 도마에 올라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단지 파티를 즐겼던 평범한 여성들은 편집되어 왜곡된 사진과 글로 인해 '양공주', '창녀'로 전락해 버렸다. 아직은 여성들에게 제한된 성 문화를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철저하게 타자화 되어버린다. 이 여성들이 입은 정신적인 충격과 사회적인 피해는 어느 것으로도 보상받기 힘들 것이다.

장난으로 인한 수많은 인격들의 사이버 살해

인터넷의 이런 습성은 이번에 일어난 연예인 엑스 파일로 인해 그 무서움을 세상에 똑똑히 보여주었다. 연예인 엑스파일은 국내 최고급 스타 99명과 유망 신인 26명의 신상 정보를 담은 파워포인트 형식의 파일이다.

국내 최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이 광고모델 관리에 필요한 자료 확보의 명목으로 전문조사회사인 동서리서치에 의뢰하여 만들었다. 원래 이름은 연예인 종합평가-광고모델 DB 구축을 위한 사외 전문가 Depth-interview로 방송사 연예정보 프로그램 리포터 2명과 스포츠지와 통신사 기자 8명이 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이 엑스파일에는 스타들의 현재 위치, 비전, 매력 , 재능, 자기관리 항목별로 1~5개씩 별점을 매기고 그 외의 항목으로 사실을 알 수 없는 소문으로만 알려졌던 자극적인 스캔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스캔들의 내용으로는 권력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내용이나 성생활에 관한 일도 노골적으로 드러나 여기에 연루된 연예인들의 인격은 철저히 난도질 당했다.

이런 큰 사건이 연속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우리는 그동안 웃고 넘어갔던 우리의 인터넷 문화를 돌아보게 됐다. 인터넷의 대표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패러디문화에서는 과거부터 공공연히 이런 일들이 쉽게 일어났다. 한 일반인의 평범한 사진이 포토샵 과정을 거쳐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사이트마다 돌아다닌다. 그들은 공인도 아니고 무슨 굉장한 업적이나 잘못을 한 적도 없다. 단지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주위의 이웃들이다. 그런데 사진 하나로 이들은 익명이란 강력한 가면 속 누리꾼들의 노리개가 되어 버렸다.

위의 외국인 강사 파문이나 엑스파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은 명백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가해자는 찾아내기 힘들다. 아무도 그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물론 한쪽의 잘못으로 인해 이루어진 사건은 아니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제대로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보도를 했던 황색저널리즘이나 자본과 결탁해 제일기획의 행위를 비난한 기사는 하나도 없는 채 '사이버 테러'라고만 치부하는 보수 언론도 가해자라는 이름을 피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들의 잘못이 있다고 인터넷 속 우리의 문화를 눈감고 넘어가기엔 상황이 심각하다.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갖고 있는 사람이 1200만명을 넘었고 네이버와 다음 회원도 각각 3천만명 이상이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나 엠피스리 파일 등으로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홈피에 올려 자신을 스스로가 홍보하는 세상이다. 개인적인 이 공간은 인터넷이라는 테두리에 둘러싸이면서 더 이상 개인적이란 말을 붙일 수 없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사진이 상스러운 수많은 리플과 함께 언제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 돌아다닐지 모른다. 지금도 허락 없이 도용된 개인 사진들이 여러 사이트의 갤러리 코너에서 모욕 당하고 있다.

인터넷은 과거 매체와는 성격이 파격적으로 다르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받기만 했던 과거와는 달리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이런 인터넷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현실 세계에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점점 심해져 간다. 이런 공간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 즉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어렵다. 몰개성적인 다수로 취급 당하는 현실과는 달리 인터넷 속에서는 자신의 억압되었던 욕구를 분출가능하다.

현실을 수많은 규제들로 목이 졸려 있는 현대인들은 인터넷 속에서 익명의 탈을 쓰고서 자유를 찾는다. 또한 자신이 손을 조금 본 사진 한 장으로도 수많은 누리꾼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실 자체도 변화가능하다. 이런 일은 현실 속의 자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인터넷의 매력에 눈이 멀어 자신의 가벼운 행동으로 인한 타인의 인격, 그 사람의 인생 자체를 망쳐 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사이버 속 삶은 현실의 삶과 동급으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해질 것이다. 메일 주소가 없으면 외계인 취급을 당하는 현재로서는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익명의 가면 속에서 저지르는 질 낮은 장난은 귀엽게 넘어가기 힘들다. 생각 없이 달은 리플 하나도 범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인터넷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매체다. 공인? 연예인? 더 이상 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재미로 돌려 보는 그 사진 속 주인공이 언제 내가 될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www.zime.co.kr. 서강대 웹진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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