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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 제 고향인 완도 지역의 외딴 섬들을 운좋게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깎아 놓은 듯 아름다웠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육지에서 가깝거나 규모가 큰 섬들을 제외하고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그들의 체온으로 포근했을 섬마을 분교는 이제 폐교가 되어 차가운 돌이 되어버렸습니다. 허리 굽은 노인들만이 뱃편도 흔치 않은 섬을 외롭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전한 것은 지천으로 피고 지는 붉은 동백뿐이었습니다.

▲ 퇴색된 반공탑
ⓒ 박남수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섬이나 동네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빛바랜 탑들입니다. 이른바 '반공탑'이 비록 퇴색하긴 했지만 아직도 서슬퍼런 슬픈 역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햇볕이 미처 이르지 못한 때문일까요? 이번 설에 귀향했을 님들의 고향 모습은 어땠습니까?

▲ 땅굴 파는 남침야욕, 총화로 분쇄하자
ⓒ 박남수
▲ 간첩선을 신고하여 오천만원 상금타자
ⓒ 박남수
"땅굴파는 남침야욕 총화로 분쇄하자"
"간첩선을 신고하여 오천만원 상금타자"
"간첩잡는 아빠되고 신고하는 엄마되자"
"북괴는 노린다 분열과 혼란을"
"불안에 떨지말고 자수하여 광명찾자"
"간첩은 표시없다 너도나도 살펴보자"


▲ 북괴는 노린다 분열과 혼란을
ⓒ 박남수
▲ 불안에 떨지말고 자수하여 광명찾자
ⓒ 박남수
아주 가까운 옛날, 반공탑은 공산주의로부터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수호신이었고, 마을 사람들을 감시하는 '빅 브라더'였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간첩'들에게는 경고를, 주민들에게는 '신고' 정신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공산당 없는 세상, 반공정신이 투철한 자유세상만이 빛의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여 '빅 브라더'의 대장이 세상을 뜨고, 그의 후예들도 줄줄이 법정에 서는 '암흑기'를 지났습니다. 반공탑도 색이 바라고 훼손되더니 시나브로 사라지고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마을의 광명을 지켜주던 그 수호신이 사라졌으니 이제 한국은 암흑이어야 하는데, 간첩들로 들끓어야 하는데, 공포에 떨어야 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오히려 괴뢰정권과 경제협력, 민족화해, 교류협력을 하고 있으니 그 반공신(神)은 어디로 납시셨는지 모를 일입니다.

▲ 간첩은 표시없다 너도나도 살펴보자(완도군 군외면 국도변)
ⓒ 박남수
이제 마을마다 이런 반공탑을 찾아보기는 힘들게 되었습니다. 아직 남은 몇 개는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고향의 이곳 저곳에서 비록 퇴색되긴 했지만 아직도 선명한 내용의 반공탑과 바위의 경고문을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대부분 없애는 추세지만 이제 이 탑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반공과 분단의 유령 대신 통일과 환경과 민주와 인권의 수호탑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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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비전한글학교 교장 완도군성인문해교육협의회 회장 완도언론협동조합 이사장 오마이블로그 '완도통신'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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