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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에서 나온 <한국의 굿> 엽서집. 20권으로 나왔던 <한국의 굿>중에 가려뽑은 20장의 사진이 들어있다.
열화당에서 나온 <한국의 굿> 엽서집. 20권으로 나왔던 <한국의 굿>중에 가려뽑은 20장의 사진이 들어있다. ⓒ 조경국
김수남 선생의 사진에선 무기(巫氣)가 느껴진다. 아마 자신에게 내재된 무기를 사진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끼'가 있었기에 우리 나라 굿을 집대성한 <한국의 굿>(1983년 1권 황해도 내림굿부터 시작해 93년 20권 서울 지노귀굿을 끝으로 열화당 출판사를 통해 완간했다) 20권을 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방대한 사진집을 내려면 '신'이 내리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잠시 <한국의 굿> 제목만 살펴보자. 황해도 내림굿, 경기도 도당굿, 제주도 영등굿, 수영포 수망굿, 평안도 다리굿, 전라도 씻김굿, 제주도 무혼굿, 함경도 망묵굿, 은산 별신굿, 옹진 배연신굿, 강사리 범굿, 제주도 심방굿, 양주 경사굿과 소놀이굿, 통영 오귀새 남굿, 서울 부군당굿, 거제도 별신굿, 황해도 지노귀굿, 위도 띄뱃굿, 소돌 별신굿, 서울 지노귀굿.

우리 나라의 굿이 <한국의 굿>을 통해 소개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많은 굿과 만신과 무당이 일제 침략기를 넘기고 새마을 운동의 바람이 몰아치던 사이 사라져 버렸다. 굿은 우리 겨레 삶의 일부였다. 굿을 통해 억울한 혼을 달래고, 병을 잠재웠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았다.

섣달 그믐에 매구(맷굿이라고도 한다)치고 정초에 마당밟기, 정월대보름에 마을굿을 지내는 것은 빠져서는 안 될 연례행사였다. 마을 어른들이 꽹과리를 앞세우고 징 울리고 북치고 장구치고 어깨춤을 추며 집집마다 돌면 어린 우리들도 덩달아 신이나서 뒤를 따랐다. 그게 딱 20년 전 일인데 젊은 사람들이 빠져버린 고향마을에선 자연스레 마을 굿도 사라져 버렸다. 이젠 그의 사진집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잃어버린 풍경으로 남았다.

김수남 선생은 그의 책 <아름다움을 훔치다>에서 고인이 된 '영혼을 부르는 하늬바람' 무녀 신석남을 기리며, 점점 사라져가는 굿판이 안타까워 이렇게 썼다.

"7,80년대에 내가 만난 굿판의 어른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거나 거동이 불편해서 굿을 못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손을 꼽아봐도 몇 되지 않는다. 신석남이나 김석출 등의 동해안 팀도 지금은 아들 며느리 조카 등이 그들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강릉 단오제도 신석남의 며느리 빈순애가 예능 보유자로 있다.

앞으로 몇 년이나 굿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하는 양중이(남자 무당을 뜻한다)들이 많다. 젊은 사람들이 굿 하겠다고 나서지 않으니 양중이도 무녀도 굿을 원하는 사람들도 줄어만 간다고 한다"

1986년 평민사에서 나왔던 한국인의 놀이와 제의 첫번째 <풍물굿>. 아쉽게도 열화당에서 나온 <한국의 굿>은 곁보기만 했을 뿐 구하질 못했다.
1986년 평민사에서 나왔던 한국인의 놀이와 제의 첫번째 <풍물굿>. 아쉽게도 열화당에서 나온 <한국의 굿>은 곁보기만 했을 뿐 구하질 못했다. ⓒ 조경국
얼마 전 헌책방에서 열화당에서 출판됐던 <한국의 굿>에서 가려 뽑은 20장의 사진으로 꾸민 엽서집을 구했다. 짙은 흑백 사진으로 20장 모두가 온전히 들어있다. 색은 바랬지만 세월의 흔적만큼 흑백의 이미지는 더욱 진해진 느낌이다.

<한국의 굿> 엽서집은 절판된 상태다. 사진집도 마찬가지고. 사진집의 출판과 함께 이벤트로 엽서집을 발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절판된 엽서집은 책보다 더 구하기 힘들다.

현재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엽서집은 현암사에서 나온 '아름다운 우리 ~'(아름다운 우리 석불, 장승 등이 있다) 엽서집과 미술문화에서 나온 '우리문화보기총서' 엽서집 등이 있다. <한국의 굿> 엽서집 외에 필자가 가지고 있는 엽서집은 모두 사진집 <꽃살문> 유명한 관조스님의 사진들이다.

엽서집은 사진집을 구해 보기 부담스러울 때 사진집을 대신한다. 물론 사진집을 구해 보는 것이 좋겠지만 사진집의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나마 엽서집이라도 있으면 참 다행한 일이다. 사진집의 책장을 넘기는 것 보다 방바닥에 모든 사진을 펼쳐놓고 보는 것도 엽서집만의 좋은 점이다.

<한국의 굿> 엽서집 표지에 나와있는 신이 내린 신딸(만신이 되기 전의 호칭) 채희아를 본다.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슬픔과 신을 받아들인 희열이 동시에 느껴진다. 펼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치켜든 방울로 자신의 몸에 깃든 신의 몸짓을 대신하며 눈을 지긋이 감은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비친다.

굿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다음은 <한국의 굿> 엽서집에 나온 설명이다.

"무속의 중심이 되는 의례를 '굿'이라고 한다. '굿'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12세기 고려의 문인 이규보가 쓴 '노무(老巫)'가 남아있다. 유학자의 입장에서 무녀의 굿을 비판적으로 쓴 글이지만, 현재 경기도 지역 강신무의 굿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이미 오늘날과 같은 굿의 양식화가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무당은 한강의 중심으로 이북이 강신무(내림굿과 같은), 이남은 세습무로 나뉜다. 강신무란 의학적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신체적, 정신적 질환으로 고생하다가 신을 모셔야 된다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입무 의례인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된 사람이다. 이들은 굿을 할 때 직접 신을 받아 신격화 되고 예언을 하는 능력이 있다.

한편 세습무란 신들리는 현상과 관계없이 다만 가계로 무업이 계승되어 무당이 된 경우인데, 반드시 여자만이 굿을 했고, 남자는 악사가 되어 뒷바라지를 해주는 것이 상례였다. 물론 한강 이남에도 강신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은 단순한 점장이가 될 뿐 굿을 하는 무당은 될 수 없었다. (<한굿의 굿> 엽서집 해설 가운데, 황루시)"

덧붙이는 글 | 지노귀굿(진오귀굿이라고도 한다) 소리를 들으려면 KBS 홈페이지에서  FM 제1라디오 '국악의 향연'(00:00~01:00 방송) 2월15일 방송 다시듣기를 하면 된다.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지노귀굿 말미거리 대목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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