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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기아차노조 지도부의 뇌물수수 관행이 공개되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지는 등 각계 노동조합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가운데 은행과 증권 등 금융업계에 소속된 노조도 내부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갈등을 겪고있는 것으로 나타나 노동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은행 등 제1금융권에 속하는 금융기관 38개 노조를 지부로 두고있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 양병민. 이하 금융노조. 한국노총 소속)은 지난달 초부터 현재까지 신임위원장 선출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금융노조는 김기준 현 정치위원장과 양병민 현 위원장 직무대행이 각각 출마해 지난달 19일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개표 과정에서 부정투표 의혹이 제기되면서 아직까지 투표함조차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표 끝나더라도 갈등 치유 쉽지 않을 듯

애초 금융노조는 당일 선거를 전자투표 방식으로 치를 예정이었으나 투표 진행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자 부랴부랴 수기투표 방식으로 바꿔 모두 8만여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그러나 촉박한 시간 탓에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고, 김기준 후보측이 금융노조 중앙선관위의 관리 부실과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선거는 개표 도중 중단됐다.

금융노조 중앙선관위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등이 나서 몇차례 중재를 거쳤으나 유·무효표 판정기준을 둘러싼 양측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면서 사태는 더 커졌다. 결국 지난 5일 저녁 나승조 금융노조 중앙선관위원장은 선거 관리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까지 이르렀다.

금융노조는 빠른 시일 내에 중앙위원회를 열고 새 선관위원장을 선출한 뒤 개표를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하지만 설 연휴와 산하 지부 대의원대회, 상급단위인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 등 일정이 겹치면서 개표중단 사태는 빨라야 2월말쯤 해결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노조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은 개표가 완전히 끝나더라도 내부의 후유증으로 크게 남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노조 선거는 이미 초반부터 양측 후보 진영 사이에서 상호 비방이 난무해 중앙선관위가 인터넷상의 게시판을 폐쇄해야 할 정도였다.

사무금융연맹 대의원대회도 파행

이 같은 불협화음은 금융권의 또 다른 산별노조인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위원장 곽태원. 이하 사무금융연맹. 민주노총 소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사무금융연맹은 지난 3일 여의도 대한투자증권 강당에서 정기 대의원대회를 열었으나, 회의 도중 정족수 미달로 대회가 '유회'되는 사태를 겪었다. 일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대의원대회에서는 안건 채택과 운영비 결산을 둘러싸고 대의원들 사이에서 고성과 욕설, 몸싸움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금융연맹 대의원대회가 원만하게 치러지지 못한 이유는 지난해 노조 내부에서 일어난 사무처직원 3명의 부당해고 논란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 노조지도부는 지난해 조직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무처직원 3명을 해고 등 중징계했고, 이에 대해 산하 지부와 상급단체 활동가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현재 사무처직원 3명은 모두 복직한 상태다. 하지만 이날 대의원대회에서는 징계 사태와 관련, 곽태원 현 위원장의 신임 여부를 물었던 2004년 2차 임시대의원대회 회의록 채택을 둘러싸고 조직간 갈등이 재현됐다. 또 사무처직원 3명이 해고된 상태에서 지급되지 않은 급여가 지급된 것처럼 결산된 것도 욕설과 비방 사태의 빌미가 됐다.

이날 대의원대회는 노조지도부와 산하 지부 대의원들간 벌어진 공방 때문에 정회됐고, 이후 속개됐지만 정족수 미달로 결국 유회됐다.

"부끄러워서 노조 간부라 얘기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최근 들어 부쩍 늘어가고 있는 노조 내부의 갈등 탓에 일선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자괴의 목소리도 높아져 가고 있다.

사무금융연맹 소속의 한 간부는 "노동계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고 현 노조지도부의 자질을 비판했다. 그는 "예전에는 노동운동을 한다는 자부심과 조직간 연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권력화 됐다"며 "내용적 설득 없이 모든 것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요즘에는 부끄러워서 (민주노총이나 사무금융연맹에서) 노조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며 "얼굴도 들 수 없을 정도"라고 자괴감을 표시했다.

한국노총의 다른 간부는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던 노동운동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이제 정말 노조가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공감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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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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