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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치레도롱뇽
꼬리치레도롱뇽

저는 도롱뇽입니다. 꼬리치레도롱뇽. 천성산에 살고 있지요.

이제 제가 말을 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불쑥 나왔습니다.
겨울잠, 이거 안 자도 됩니다. 봄에 따뜻한 햇살 받으며 좀 자불면 되겠지요.
겨울 들어 제일 추운 날 왜 자지 않고 나왔냐구요. 우리 말 귀가 둘 달린 사람들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더니 오늘은 왜 귀를 쫑긋 세우시나요.

우리 지킴이 지율스님의 안쓰런 모습, 땅 속에서도 잘 보았습니다. 우린 서로 교감하는 신경계가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답니다. 부산스런 사람들의 움직임이 정토회 안팎에서 요동을 치니 한 하늘 아래 이어진 땅으로 다 전달이 되는군요.

안타깝습니다. 스님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제 앞가림도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넋을 놓을 뿐입니다.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남아시아 지진 해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순식간에 떠나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측은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입니다. 옛날 그대로 방풍림을 간직한 해안에서는 큰 피해가 없다는 소릴 듣지도 못했나요. 관광객을 위한 화려한 인위적인 치장을 한 곳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왜 만물의 영장으로 부르는지 알다가도 모릅니다.

우린 몸으로 느낍니다. 왜 남아시아 해일피해에 동물들의 피해가 없는지 아시나요. 다 자연의 전조를 예감하는 기능이 몸에 붙어 있기 때문이지요. 자연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자연 몸에 달라붙을 그 인지기능을 사람들은 빠르게 퇴화시키지요. 자신을 지켜줄 그 소중한 기능을 사서, 돈을 쓰면서까지 버리는지, 그런 사람들을 왜 지능이 뛰어나다고 하는지요.

왜 그렇게 많이 쓰고 많이 갖고 빠르게 다니려고만 하나요. 왜 편하게 치장하고 따뜻한 아랫목만 찾나요. 그러면 더 빨리 이 땅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왜 모르시나요.
왜 사람만 지구상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땅 속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있습니다. 다음해 농사가 잘 되는 땅이 되려면 한겨울부터 땅 속 수많은 미생물들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 부지런히 땅 속을 갈고 농사에 이로운 미생물을 많이 퍼뜨려 놓아야 됩니다. 이미 겨울부터 수많은 농부 도우미들이 잠자지 않고 농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식물의 자양분이 되는 작은 미생물의 움직임도 이렇듯 엄청난 우주의 흐름을 좇아 때가 되어 제 역할을 하는데 천불도 구제 못하는 인간들의 유치찬란한 행동들은 왜 저리 한심한지, 열심히 자기 맡은 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들의 울화통을 건드리는지 화가 치입니다.

무엇이 근본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 좀더 깊고 넓게 보지 못하는 양철쪼가리 마음을 가진 이들, 쉽게 달고 쉽게 요란한 소리를 내는 이들은 재활용하지도 못합니다. 그들의 똥은 쉽게 썩지도 않아 밭의 거름으로도 쓰지 못합니다.

흙 1그램 속에는 100만 이상의 미생물이 있습니다. 미생물, 사람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지만 지구에 절대 필요한 생물. 그러나 지금까지 지구상의 1%만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인 무한한 천연자원인 작은 미생물들이 모여 사람에게 엄청 큰일을 합니다. 땅을 기름지게 하거나 생약을 만들어 가장 인간에게 필요한 먹을 것과 병든 것을 치료해 주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놓으며.

지렁이, 땅강아지 같은 작은 소동물들이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일 년 내내 흙을 뒤집으며 양분의 통로를 만들거나 물길을 만듭니다. 매일 밟고 다니는 흙에는 이렇듯 보이지 않는 엄청난 자연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순대와 같은 알을 두 개 낳는데 옛날 사람들이 농사짓는데 아주 좋은 기상통보관 역할을 했습니다. 그 해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면, 알을 돌이나 나뭇가지에 튼튼하게 붙여 낳고, 가뭄이 들 것 같으면 물 속에 그냥 낳는 습성이 있지요. 그래서 조상님들은 도롱뇽 알이 바위나 나무에 붙어 있으면 큰 장마를 대비해서 논둑을 튼튼히 하고, 물 속에 알이 있으면 가뭄에 대비해서 물막이 공사를 했지요. 사람과 도롱뇽은 이렇듯 교감하는 정다운 사이였지요.

작은 미물도 모두 제 역할이 있습니다. 머리가 발달된 사람의 기술로 자연물에게 새롭게 큰 역할을 맡기는 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몫입니다. 똑똑한 사람의 머리는 그렇게 써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인간 크기 이상의 큰 것에서는 절대 이로운 점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인간이 좀더 편리하게 살려고 인간 크기 이상의 물건들을 만들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큰 것을 만들어 이로운 점이 있으면 분명 또 반대편의 나쁜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석유자원이 고갈되면 석유에 의존하는 기계는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 크기 이상의 모든 기계는 쓸 수가 없고 자전거나 지게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살았던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희한하게도 땅은 절로 좋아집니다. 석유자원에 의존한 농약과 화학비료로 나쁘게 된 흙이 그땐 다시 살아나 지렁이가 우글대고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작은 소동물, 미생물이 풍부히 살아나 밭을 갈고 더 열심히 일하는 상농부가 될 것입니다.

그건 또 내 일이 아니라고 할텐가요. 뭔 훗날의 일이라고 할텐가요. 바로 내 아들, 그 아들의 아들이 겪어야 할 일입니다. 내가 저지른 그 죄악을 우리 아들들에게 보속을 하라고 할 텐가요.

이제 결론을 말할 때가 되었습니다. 바로 작고 하찮은 것들도 다 자기 역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은 것에도 의미를 두는 삶이 진정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느리다고 힘없다고 말없다고 그 존재가치까지 무시하면 더 큰 재앙이 사람에게 닥칠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그들이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 미물보다 못한 짓을 했는지, 말없이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만든 '착한 촛불연대'에 왜 자기들만 소외당해 있는지, 사람답게 살지 못했는지 그들은 알아야 합니다.

겨울이 다 가도록 우린 땅 속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으렵니다. 100일 넘게 우리를 위해 단식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한가하게 잠이나 자서는 안 될 일입니다. 사람이라면 나 몰라라, 내 일이 아니라고 많이 먹고 편안하게 아랫목을 찾겠지만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 우린 천성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친구의 아픔이 내 아픔이고, 배고픔이 바로 내 것입니다. 모든 천성산의 소동물이 겨울잠에서 깨어 일어났습니다. 불도저의 굉음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친구인 우리 생사를 자신이 공명하여 산지킴이 홀로 나서 광활한 사막에서 홀로 외롭게 우릴 위해 싸우다 지쳐 쓰러져 있는데 어찌 우리가, 친구인 우리가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일어나 무엇을 하느냐구요. 그저 가만히 앉아 대안이 없다고 하는 분들, 그럼 어디 시간이 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지 지켜볼까요.

저 말없는 초록의 자연이 벌떡 일어나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주던 산소를 다 뺏고 이산화탄소 가득한 도시를 만들테니 기다리세요. 돈 좋아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니 지금까지 돈 안받고 산소 준 값 다 내달라고 할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산지킴이 소중한 생명의 시간도 없지만 우리 소동물과 미생물, 자연도 참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정중히, 마지막으로 말씀 드립니다.

그래도 잘 모를 것 같아 확실히 해두자면, 산지킴이와 말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사람들 생명도 시간이 별로 안 남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말없는사람, 말많은 사람들, 이제는 정말 무엇을 하면서,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야하는지 밤새워 토론해야 합니다.
진정 사람답게 사는 것, 자유스럽게 사는 건 무엇일까요.
지율스님의 가녀린 어깨에 모두 이렇게 기대어 있어도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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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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