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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한미양국은 서울에서 '한미동맹안보정책구상(SPI)' 첫 회의를 갖고, 소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주제로 주한미군의 역할확대와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이 회의에서는 한미연합지휘체제와 전시작전통제권 문제가 구체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SPI 회의에서 논의되는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와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주한미군 역할 확대,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

▲ 지난 1월 11일, 광화문 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제64차 반미연대집회에서 평통사 홍근수 상임대표가 SPI를 반대하는 내용의 손피켓을 들고 있다.
ⓒ 평통사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란 무슨 뜻인가?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여 주둔하고 있고, 이 조약(제3조 적용범위)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역할은 대북 방어에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미군체계를 개편하고 있고, 이에 따라 주한미군도 남한 붙박이 군대가 아니라 필요시 언제든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출동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여기서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미국은 이 조약을 재해석하고, 일본에서의 경우처럼 한미안보공동선언을 제정해서 주한미군의 작전반경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란 다름 아닌 주한미군의 역할확대, 즉 주한미군의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미양국은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그럴 듯하고 부드러운 이름을 붙여 주한미군 역할확대의 침략적 성격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을 교묘히 가리려고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으로 확대되면 어떻게 되는가? 우선, 이라크 침략에 주한미군이 차출된 것처럼 한반도는 주한미군의 일상적인 해외출동 전초기지가 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한미군이 중국 포위, 나아가 중국과 대만간의 분쟁(양안사태)에 개입하는 경우다.

사실, 주한미군 역할 확대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한미군이 공항과 항구가 있는 평택으로 기지를 옮기고, 서해안을 따라 MD벨트를 구축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중국을 21세기의 잠재적국으로 상정하고 중동에서부터 동북아에 이르는 '불안정한 활꼴' 모양의 대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처럼 주한미군이 중국을 겨냥하게 되면 중국도 이에 대한 대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이 러시아와 사상 최초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에 나서는 것이나 인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추진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포위망을 뚫기 위한 중국의 몸부림이다. 중국이 여러 경로를 통하여 주한미군 역할 확대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한반도에 전쟁의 불똥이 튈 수도

더욱이 대만의 높아지는 독립 움직임과 중국의 무력사용 불사 공언은 '대만 독립→ 중국의 무력 행사→ 주한미군의 양안사태 개입→ 중국의 주한미군 기지 공격'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바로 이와 같은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언제, 어디로든 출동시킬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마련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한미군이 자신의 역할을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으로 확대하게 되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 의도와는 전혀 관계 없이 한반도가 지역 분쟁에 휘말려 민족의 운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미일동맹의 하수인?

우리 정부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세계전략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양안사태 개입에는 반대한다거나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미연합지휘체계나 작전통제권이 주한미군사령관의 수중에 있는 조건에서 이런 주장은 주관적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우리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주한미군의 양안사태 개입과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의 길을 여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한미동맹이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에 따라 미일동맹의 하위체계로 편입되는 길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우리 나라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체제의 최하위국으로서 미일동맹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게 되면 군사적 대미 종속성은 더욱 심화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미일동맹의 하수인 노릇을 하게 될 가능성마저 있는 것이다.

사전협의제 전혀 실효성 없어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의 역할확대를 인정해 주더라도,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드나들 때 사전협의(또는 사전동의) 절차를 만들면 주한미군 역할 확대의 위험성을 한국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전 협의제를 두고 있는 일본의 경우, 사단급 부대 이동에만 제도가 적용되도록 되어 있는 등 기준이 너무 까다롭고, 실제로는 단 한 차례도 적용된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실효성이 전혀 없다. 오죽하면, 일본의 진보적 학자들이 주일미군을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주일미군의 해외차출에 면죄부만 주고 있다고 한탄하겠는가?

올해는 광복 60주년에다 주한미군 주둔 60년이 되는 해다. 호혜평등한 한미관계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한미군의 역할확대와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를 절대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

평화와 통일로 가는 한반도의 미래를 열 것인지, 더욱 심화된 군사적 대미 종속 상태에서 항시적인 전쟁위협에 시달리는 미래로 갈 것인가는 이번 SPI회의에 임하는 정부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오미정 기자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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