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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올린 '스물여덟, 평점 2점대, 컴맹인 여자가 취업하려면? - 나의 파란만장 입사기 ①'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나는 면접 보는 것을 좋아한다. 주변에서는 황당해 한다. 면접관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긴장 많이 되시죠?"라는 식으로 물어보면 "아뇨. 저 이런 거 좋아해요"라고 답할 정도.

내가 면접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 면접관들의 질문에는 정말 의외의 질문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대처하다 보면 내 생각도 보다 분명하게 정리될 뿐 아니라, 나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무엇을 신경써야 하고,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는지 짧은 시간 안에 확인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밌는 것은 면접관이나 면접생의 개성을 관찰하고 유형별로 스타일을 짐작하는 것이다. 긴장 속에 오가는 질문과 답변, 눈빛으로 오가는 '마음의 찜'과 교차하는 심리, 유도 작전 등등. 너무 신난다.

사실 스물 다섯 살 이전까지 면접이란 것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서류전형 후에 면접 1등으로 붙거나 가산점을 받아 더 나은 자리로 배치되곤 했는데, 나이를 먹고 나니 시세(?)도 떨어지고 직장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도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면접도 보다 정교해지고 심층화되다 보니, 중요한 순간에 솔직한 성격이 발동되어 합격을 눈앞에서 놓친 경우도 있었다. 아래의 짤막한 에피소드에는 바로 눈앞에서 면접합격의 영광을 놓쳤거나, 아니면 면접에 붙었는데 작은 실수로 입사에 탈락한 실수담을 몇 개 모아봤다.

에피소드 <1> 여행사

지원한 여행사 업무는 해외 근무로서 현지 사무실에 근무하면서 가이드와 파티플래너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하지원이 했던 일과 같은 일이 아닐까 나름의 환상을 가지기도 했다. 면접에서 부드러운 분위기와 생글거리는 미소로 승부한 나는, 같이 면접을 본 애와 나란히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면접볼 때, 대표님께 받은 명함에 있는 메일로 그 애와 내가 이력서와 면접으로 다 보여주지 못했던 '나의 입사후 포부'에 관해 적어서 보낸 것이 효력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대개 남자들의 경우 해외 근무를 장기적으로 하다보면 외롭고 심심해서 도박과 여자에 빠지기 일쑤"라는 여행사 대표님의 지적이 기억나서, 만일 내가 근무하게 된다면 방송국이나 각종 홈페이지에서 하고 있는 명예기자나 해외 주재원을 하면서 그 나라 문화에 대해 알리고 동시에 우리 여행사를 간접적으로 알리는데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담은 메일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드디어 한 주간의 교육 일정이 시작되었다. '교육'이라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층 면접에 가까운 것이었다. 첫 날은 가이드 업무의 상황별 질문이 나왔다. '외국 주간 잡지에서 한국 사회는 들쥐사회다'라는 대목에 대해 한국에 온 외국인 친구에게 1분 정도로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부가적인 설명없이 즉흥적인 답변이 나와야만 했다. 나는 일단 자신있게 서두를 시작했다.

"한국인을 들쥐 사회라고 칭한 것은 아마도 무언가 던져주면 우르르르 모여나오는 부분, 좋은 예를 들자면 레드 데블스의 응원을 들 수 있겠죠. (중략) 그러나 이러한 개떼 정신은…"

여기까지 말했을 때 대표님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내 말을 끊고 얘기하셨다.

"흠. 다시는 그 입에서 '개떼'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으면 해요. 여행업에서는 그 나라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 나라에 돈 쓰러 온 사람들에게 굳이 부정적인 예를 들 필요는 없어요."

아주 차분한 말투로 하신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기가 죽었다. 그 외에도 관광객이 다른 이성과 방을 함께 썼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이상형의 손님이 프러포즈를 해온다면 어떤 방식으로 거절할 것인지, 한국의 드라마와 대중음악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 등등. 즉흥적인 상황 대처 능력과 화술을 보기 위한 진땀나는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다음날은 가이드로서의 멘트 능력을 연습하고 테스트하고, 아나운싱을 연습하고, 그 다음에는 상황별 영어 구사 능력을 테스트 했다. 정확한 발음과 표준어 구사, 자세 등을 배우고 주제에 대한 스피치를 했다. 영어는 너무 오랜만에 접하는지라 떨린 나머지 실력의 1%도 발휘하지 못했다. 면접도 결국은 하나의 협상이며 밀고 당기는 심리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교육 시간이었다. 나는 수습 기간 1개월의 고비를 남겨둔 채, 교육기간 동안 탈락하고 말았다.

에피소드 <2> 시민단체

따지고 드는 성격에 비판적인 성향, 학생운동의 경력이 도움이 될 거라 믿고 막연히 지원한 시민단체. 어느 시민단체나 헝그리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곳이었다. 자신들 말로도 사무직 100만원 이상이면 많이 주는 거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재정 능력을 과시했으니 말이다.

세 명의 면접관과 세 명의 면접생. 가운데에 팀장이 앉았다. 여러 가지 질문에 나는 대체로 냉철하고 드라이하게 말하려 애썼다. 평소의 말투는 장난스럽고 기분과 분위기가 많이 묻어나는 다양한 억양을 구사했지만, 이 면접 때는 톤이 일정하고 지적인 느낌이 배어나오는 아나운서 말투를 흉내냈다. 그전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면접이 진행되어 갈수록 나는 자신감이 높아져 갔다. 나보다 실력이나 경력이 나았던 다른 면접생 보다 내가 질문을 잘 소화하고 있었고, 면접관의 시선도 내게 많이 머물러 있다고 느꼈다. 면접이 끝나갈 무렵에는 거의 내가 합격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차올랐고, 마지막으로 팀장이 궁금한 것을 물으라고 했다.

"시민단체라면 중요한 것이 당연히 재정의 투명한 운용일텐데요. 이 단체에서는 어떤 식으로 하고 있나요?"

나도 모르게 차가운 말투가 나와 버렸다. 분위기는 순간 냉랭했다. 팀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어물어물 대답을 한다. 그리곤 '마치 제가 취조를 받는 것 같네요'라는 한 마디를 던진다. 분위기는 이제 얼어붙었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아무래도 붙었겠지 생각하며 안전빵으로 면접을 한군데 더 보고 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들은 소식은 불합격이었다. 마지막에 한 실수가 그렇게 큰 거라고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화가 나서 아무 생각없이 오후에 본 다른 면접 합격 소식에 출근하겠다고 말해버렸다.

에피소드 <3> 명예기자

모 스포츠 신문의 명예기자를 지망했을 때의 일이다. 앞의 기사에서 적은 대로, 손으로 A4용지에 쓴 자필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 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출력하고, 내가 명예기자가 되어 기사를 쓴다면 '폰카로 여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짤막한 에세이를 쓸 예정이었으므로 그 위에 손글씨로 짤막한 글을 써서 제출했다.

공고를 늦게 본지라 마감 날을 넘긴 날, 나는 서류봉투에 그것들을 담아 직접 신문사를 찾아갔다. 쉬는 날이라서 건물도 문을 닫았다. 그러나 공을 들인 시간과 정성이 너무 아까워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예전에도 광고 공모전에 건물 안으로 어렵사리 들어가 뒤늦게 제출한 뒤 입선한 적이 있었으므로, 뚫어보기로 작정했다.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로 들어가서 신문사로 들어갔다.

당직 기자 한 명이 달랑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기자는 그렇게 땀흘리며 달려온 내게 좌절의 한 마디를 던진다.

"어쩌나. 지금 제출한다 해도 마감 시간 지난 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텐데…. 아시잖아요. 신문사는 마감시간이 칼이에요."

헉~ 어쩌라는 건가. 할 수 없지. 내 잘못인걸. 그래도 서류 봉투 겉면에 큼지막하게 붓펜으로 꼭 읽어보기라도 하라고 호소하듯 써두었다. 당직기자가 호기심이 당겼는지 꺼내어 슬쩍 살펴본다. 그리고 자필로 쓴 글들과 폰카 사진을 보며,

"사진 느낌은 좋은데, 담당기자가 읽어 볼지는 모르겠네요."

애원하듯 잘 부탁드린다고 하고 나왔다. 그 다음주 일요일 핸드폰으로 날아온 합격 통지. 그것만으로도 통쾌하고도 기뻤다. 내 서류를 읽어봤다는 거다!

면접에 갔다. 실수없이 무난하게 잘 마무리 한 뒤 마음 속으로 합격한 것으로 단정지었다. 그런데 왜 연락이 없나 싶어 전화를 해보니 내가 탈락했다는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날 면접에 온,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쟁쟁한' 사람들이었다. 담당 기자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에게 음료를 대접하며 놀아주고 있었고, 면접실에서는 국장급 이하 세 명이 세명씩 면접을 보고 있었다.

나의 실수는 면접 대기 시간에 벌어진 것이었다. 이야기 하기가 창피한 사소한 말 실수 하나가 내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결국 같이 일 못할 사람으로 찍히게 만든 것이다.

담당 기자는 긴장하지 말라며 이번 합격자들이 워낙 대단한 분들이 많아서 2차 면접은 거의 형식적이고 다 합격시킬 계획이라는 국장님 말씀이 있었다는 정보를 주었다(사실 면접은 어마어마한 경쟁율에 비해 루즈한 분위기이긴 했다). 그리고 기자는 '여러 면에서 튀었던' 내게 말을 걸었다. 역시 '친한 척의 대가'인 나답게 금방 기자랑 신나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심한 '친한 척' 탓인지, 다른 면접 대기자는 내가 신문사 관계자인줄 알았다고 한다.

기자는 이런 저런 질문을 하다가 내가 모 연예인과 닮았다고 했다. 나는 아니라며 버럭 화를 냈다. 소심한 성격의 기자 스타일에 변명을 하는데도, 난 그 여자 연예인이 안 이쁜 건 아니지만 성형한 거 몰랐냐며 그의 소박한 칭찬에 또 면박을 주었다. 이 얼마나 재수 없는 언행, 센스 없는 짓거리인가 말이다.

그 기자도 면접의 긴장을 풀라고 기분 좋은 한 마디를 던진 것일텐데, 나는 들뜨고 예민한 나머지 엉뚱한 말이 튀어나간 것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어이없다. 그리고 그 기자님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는 주워담기 어려운 말이지만.

더 많은 실수담이 있고, 또한 더 많은 성공담이 있지만,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기로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실수로부터 더 많이 배우고 때로는 더 많은 의욕을 충전하기도 한다. 실수나 실패는 쓰라리지만, 극복하는 이에겐 더 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게다.

나는 오늘도 실수를 한다. 지하철에서 길을 헤매기도 하고 약속시간을 깜빡하기도 하고. 매일 매일 어쩌면 실수투성이의 하루하루인데도, 실수가 두렵지는 않다. 더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가끔은 실수 없는 완벽한 나를 상상해 보지만, 그러면 너무 인생이 재미없을 것 같다. 굴러보고 상처입고 실수해봐야, 고지에 다다른 성취감과 행복감도 느낄 것이 아닌가? 너무 쉬운 문제만 골라 풀어서 평이한 나 자신보다는, 어려운 문제 하나 푸는 데에 땀 빼며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하는 내가 더 맘에 든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실수를 보여주는 것. 부끄러운 일이지만 인터넷 속에 묻힌 많은 닉네임에 묻어서 뭔가 전하고 싶었다. 이런 어리버리 황당실수를 할 사람들은 없겠지만, 도움되는 이에게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리라.

덧붙이는 글 | 지난 번에 올린 기사를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이 계셔서 또 올립니다. 이번에는 지난 번보다 좀 더 많이 솔직합니다. 그래서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드러나 있는 글을 올린다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군요. 혹시 우연히 오늘 실수로 인해 자책하고 있는 분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나보다 더한 애도 있구나' 생각하고 웃으며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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