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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는 몽골족이 세운 나라잖아요. 중국 민족이라 보기 힘듭니다."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 국가입니다. 때문에 몽골족도 중화민족의 하나가 분명합니다."

"몽골 공화국이 지금도 중국 북쪽에 분명히 자리잡고 있지만 당신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군요. 한가지 예를 들어볼 까요? 원나라는 전 국민을 4등급으로 나눴어요. 1등급은 몽골인, 2등급은 색목인(色目人·서역 사람들), 3등급은 거란·여진족들, 4등급은 남인(南人)이라고 불린 남송(南宋)의 한족(漢族)들이었죠. 몽골인들은 당시 전체 인구의 대부분인 한족들을 노예로 취급하다시피 했는데 원나라가 중화민족 왕조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 말에 사내는 대꾸할 말을 잊은 듯했다. 그만큼 채유정의 말은 논리정연하고 이치에 맞아 떨어졌다. 할 말을 잊은 사내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머리를 돌렸다.

"그것보다 난 여기 만주를 찾아오는 한국인의 태도가 못마땅하오. 수많은 한국인들이 여기로 몰려와 고구려와 발해 유적을 찾아갔죠. 한국인들은 단순한 관광이나 유적 답사의 차원을 넘어서는 형태를 보이기도 했죠."

"단순한 답사가 아니라뇨?"

"승용차에 '고구려는 우리 땅' 또는 '백두산은 우리 땅' 따위의 플래 카드를 걸고 돌아다니는 걸 많이 보아왔소이다. 또 많은 제물과 제수를 꾸려와 울긋불긋한 제복을 입고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며 제사를 올린다는 소리도 들었소이다. 백두산 정상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 삼창을 소리 높여 외치기까지 한다더군요.

여기 심양과 무순 일대를 돌아다니며 거리나 술집에서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면서 통일이 되면 우리가 찾아야 한다고 떠드는 한국인들을 본 적이 있소."

"저도 그런 행위가 온전한 애국심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모두 틀렸어요. 고구려는 어디까지나 우리 중국 변방 역사의 한부분일 뿐이죠."

듣고만 있던 김 경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립니다. 우리 나라의 국호인 코리아라는 말도 바로 고구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임의로 정한 것뿐이죠.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朱蒙)은 중국의 고대 역사에 등장하는 고이족과 고양씨(高陽氏)의 후손입니다. 또한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朝貢)하였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의 속국이었습니다. 게다가 고구려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이 거의 당 나라로 끌려갔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고구려의 혈연적 계승이 단절되고 말았죠."

김 경장은 무슨 대꾸라도 하려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정체도 모르는 사내와 더 이상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우선은 여기를 빠져나가는 게 급했다. 하지만 사내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관계나 학계에 있는 사람은 분명 아니다. 상황으로 보아 조폭 쪽에 있는 사람이 분명한데도 어설프게나마 역사적 소양을 갖추고 있는 게 신기해 보였다. 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쳐 자신감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조폭 쪽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을 중화사상으로 승화시켜 놓고 있었다. 이런 자의 눈에는 조국을 위해 사람 목숨 한둘 없애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자일수록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 것이 아닌가?

둘이 더 이상 말이 없자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에서 있는 자를 돌아보았다. 뒤의 남자가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총이 들려져 있었다. 이어 한쪽 구석을 턱을 내밀었다. 밑의 지하 창고로 들어가라는 말이었다.

둘은 스스로 바닥에 달린 뚜껑으로 열고 지하 창고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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