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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막냇동생 '돼지감자'(우리 집안 막내 남동생 애칭)의 작품을 또 이메일로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혼자만 보기 아까워 이렇게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 중학교 또래 친구들이 보는 만화책들을 보더니 컴퓨터로 그림을 따라 그려보기 시작하더군요. 볼 마우스로 포토샵도 아닌, 오로지 그림판으로 두꺼비 같은 손을 놀리면서 그림을 그리다니요.
돼지감자가 살살 마우스를 움직이며 그림을 그릴 때면 나도 모르게 뒤에서 쿡쿡 웃음이 나옵니다. 제 동생이라서 그런 걸까요? 이제는 코 밑이 거뭇해지는 것도 같은데 저는 마냥 귀엽기만 하네요.
동생의 그림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동생은 그림이 좀 그려진다 싶을 때가 돼서야 그림 자랑을 하면서, 모 인터넷 사이트에 추천 그림으로 올라온 적도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뒤로 자신만만해하더니 그림에 재미를 들이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창작그림이 아닌 만화책 보고 따라 그리는 그림이라 그냥 막냇동생의 여가활동이자 취미일 뿐이지요.
동생의 꿈은 요리사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괜찮은 2년제 전문대를 가는 것이 요즘 목표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저 녀석이 먹는 걸 좋아하더니 요리사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요리사의 꿈은 더 구체화 되겠지요.
동생의 그림을 보면 초기에는 선이 거칠고 뭔가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점점 그림이 거듭날수록 그림판으로 그렸다고는 상상이 안 될 만큼 매끄러운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색도 넣어서 제법 멋있는 그림이 되었어요. 그 그림을 보면서 내심 이 녀석이 요리사보다는 그림 그리는 것을 꾸준히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건 섣부른 판단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엄마라도 된 것처럼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이 참 많아지네요.
사실 요리사는 저희 가족들이 암묵적으로 "너 요리사 돼 보는 거 괜찮지 않냐?"고 툭 던진 말이 어쩌다가 동생의 꿈이 된 사례랍니다. 그 뒤로 동생은 은연중에 '내 꿈은 요리사야'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아빠는 '저 녀석이 꿈은 있구나' 뭐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과연 동생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요리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동생의 그림을 보면서 더 많은 생각이 든 것이지요. 동생이 몇 시간에 걸쳐 그림을 그리는 열정은 뭘까? 이 녀석이 정말 행복한 것을 뭘까? 이 녀석은 뭐가 되고 싶은 거지? 난 뭘 해줄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그런데 괜히 동생에게 헛바람만 넣을 수도 있는 것 같아 수많은 생각을 하다가 그냥 접어버립니다. 그래요. 그림은 사실 그렇게 개성 있고 뛰어난 그림은 아닙니다.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재미로 그리는 그런 그림이지요. 그런데 저는 그 그림만 보면 계속 수많은 생각에 빠집니다.
자꾸 고민을 하게 되는 건, 진짜 내 동생이 행복했으면 하기 때문이지요. 한 번뿐인 인생, 진짜 잘살았다 싶을 정도로 내 동생이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돈은 못 벌어도 우울하지 않고 아주 행복하게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그렇게 내 동생, 돼지감자가 살아줬으면….
아직 고등학교 입학식도 안한 동생을 앞에 두고 사념이 많아지네요.
아무튼, 제 동생의 그림은 최고입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동생의 그 집중력과 열정만으로도 그 그림들이 최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