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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위에서 바라본 박 할아버지의 집
성곽 위에서 바라본 박 할아버지의 집 ⓒ 서정일
도대체 매달려서 휘날리는 것들은 뭘까? 그리고 무슨 의미로 매달아 놓은 것일까? 성곽을 내려와 좀더 가까이에서 살펴 보니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다. 바람을 불어 넣어 조금 부풀어 오르게 만든 빨간 고무장갑, 하얀 비닐 봉투와 파란 비닐 봉투 그리고 손수건 같은 천 등 그저 흔하디 흔한 생활용품들이다. 100여 가구가 있는 성 안에 저런 광경은 찾아볼 수 없기에 생소하면서도 재미난 광경.

호랑가시나무 옆에 대나무에 묶여 펄럭이는 생활용품들
호랑가시나무 옆에 대나무에 묶여 펄럭이는 생활용품들 ⓒ 서정일
"뭔 의미가 있으세요?"

불쑥 찾아왔기에 거부감도 있으련만 관광지다 보니 전혀 어색함이 없이 마루를 내 주시는 박봉열(82) 할아버지. 하지만 이런 질문은 흔치 않았는지 얘기를 꺼내기까진 약간의 시간이 흐른다. '민속마을이기게 이런 게 뭔가 해를 끼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 또한 했을지도 모를 일. 그런 노부부를 안심시켜야겠다 싶어 "저 빨간 열매 있는 나무를 뭐라 부르죠?"라고 얼른 질문을 바꿨다.

"저거 호랑가시나무라고 하는데 열매는 약재로 씁니다. 저 옆에 있는 나무는 유자나문데 성 안에 호랑가시나무하고 유자나무가 아마 여기밖에 없을거요"라고 하며 그 옆에 있는 나무까지 설명하는 박 할아버지.

3단으로 정성껏 다듬어진 것으로 봐서 노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나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정정가위를 들고 온다. "나무를 멋지게 손질하셨네요"라고 한 게 화근이라면 화근. 나무 손질하는 걸 가르쳐 주겠다고 막무가내로 기자의 손을 잡고 나무 앞으로 향한다. 한참을 그렇게 강의(?)를 듣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다시 끄집어냈다.

"혹시 이곳이 흔히 무당집이라고 하는 곳이 아닌가요?"

그러자 웃음을 참아가면서 옆에 있는 할머니에게 "내가 뭐라 그랬어. 그럴 거라고 그랬지? 당신이 얘기혀"라고 하면서 참았던 웃음을 마저 터트린다. 이 문제(?)로 부부간에 의견 차이가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화였다.

정정가위로 나무를 다듬는 시범을 보이는 박 할아버지
정정가위로 나무를 다듬는 시범을 보이는 박 할아버지 ⓒ 서정일
"새 쫓을라고."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너무나 짧았다. 기나긴 토론과 의견 차이를 그저 "새 쫓을라고"라는 간단한 말로 잠재운 것이다. 이번엔 내가 웃을 차례였다.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서 '낙안읍성에도 당집이 있구나' '저 집엔 어떤 사연들이 있을까?'라고 상상했을 수많은 관광객들을 생각하자니 더불어 웃음이 나왔다. 유자나무 위에 덮어 놓은 짚새기들은 열매가 잘 맺힐 수 있도록 꽃눈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것도 덧붙여 설명해 줬다.

물론 예전엔 이 마을에도 당집이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돌아가신 지 오래고 그저 아련한 옛일로만 기억하고들 있다. 어찌되었든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것들이 있다. 특히 낙안민속마을에선 더 더욱 그렇다.

뒤돌아본 대나무엔 신을 부르는 몸짓이 아닌 아닌 새를 쫓는 흩날림이었다
뒤돌아본 대나무엔 신을 부르는 몸짓이 아닌 아닌 새를 쫓는 흩날림이었다 ⓒ 서정일
옛 삶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살아가기에 그들의 행동 그리고 표현하는 방식을 지금의 우리네 눈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방향이 되기 십상이다. 하나의 사물이 두개로 보이는 곳 그곳이 낙안임을 박할아버지의 집 마당에 서 있는 대나무에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함께 만들어가는 낙안읍성 연재
http://blog.naver.com/pen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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