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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장 밖으로 나서자 사복을 입은 공안이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자는 안 박사를 감시해왔다는 장젠신(張建新)이었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 담배 한 개비를 집어들고, 그 앞을 손톱으로 몇 번이고 튀겨 가지런히 한 다음,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있었다. 이어 비스듬히 앞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장젠신은 싸늘한 미소와 함께 라이터를 테이블에 다시 놓곤 다리를 꼬았다. 날카롭게 베인 눈꺼풀과 유리 세공처럼 오싹한 눈동자가 한동안 둘을 살피다가 문득 이런 말을 던져왔다.

"두 사람은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키고 있군요."

김 경장이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게 어째서 말썽이다 말입니까?"

"한 번은 괴한이 침입해 불을 지르려 하지 않나, 이번에는 사람까지 죽어 나갔소이다."

"그게 우리 탓이라 말이오?"

"류허우성 교수는 우리 중국이 국보처럼 아끼는 학자라 말이요. 이유야 어떠했던 당신들이 그분을 만났던 것이 발달이 되어 살해당한 것이 아니오?"

"이 사람이 정말…."

김 경장은 주먹 쥔 두 손을 부르르 떨다가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장젠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했다.

"두 분 모두 조심해야 할 것이외다. 우리가 지켜 볼 것이오."

어딘지 모르게 공식 문서를 직역한 듯한 말투였다.

둘이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걸어가자 공안국 입구에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바로 얼마 전에 만났던 참사관이었다. 둘을 발견한 참사관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당신들을 빼오느라 제가 얼마나 힘 들었는 줄 아십니까?"

김 경장은 무뚝뚝한 어조로 답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댁이 수고할 이유라 없지요."

참사관이 두 손을 허리에 올려놓고 고개를 내저었다.

"여긴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란 말입니다. 공안이라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치는 곳이죠. 공안에게 걸렸다 하면 취조도 하기 전에 곤봉 세례부터 하는 자들이죠. 댁들이 외국인이라 점잖게 대한 것입니다."

"아무튼 우린 분명히 인권을 침해당했고, 정식으로 중국 측에 항의 할 것입니다."

참사관이 김 경장의 소매를 이끌고 복도 한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권했다. 김 경장이 담배를 피지 않는다고 하자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담배에만 불을 붙였다. 그는 조금전보다 표정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었다.

"한국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이번 수사에서 손을 떼고 귀국하라고 하더군요."

김 경장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귀국하라는 이유가 무엇이죠?"

"류 교수의 살인이 큰 충격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외교적인 마찰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우리 대사관 측의 판단입니다."

문득 김 경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대사관에서 엉뚱한 보고를 하여 절 불러들이겠다는 것 아닙니까?"

"엉뚱한 보고라뇨? 저흰 사실 그대로 본국에 보고했을 뿐입니다. 아무튼 귀국 지시가 떨어졌으니 오늘은 편안하게 여기 관광이나 하시고 내일 귀국을 하세요."

"전 이대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참사관님도 지켜보시지 않습니까? 두 명의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그만 귀국하시라는 겁니다."

"그럼 이번 사건을 온전히 중국 측에 맡기자는 겁니까?"

"류 교수의 사망은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안 박사의 살인과 관련이 있으니 우리 쪽에서 조사할 필요도 있습니다."

참사관은 호흡을 끊으며 나직하게

"이 보시오. 김 경장!"

하고 불러놓고는 침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긴 중국 땅입니다. 김 경장 독자적으로 수사를 하기엔 무리예요. 김 경장이 여기에 파견된 이유도 잘 아시지 않소?"

결국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외교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참사관과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는 그 어디에도 도움 받을 곳이 없었다. 철저히 혼자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막막했지만 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다. 둘의 죽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음모가 작용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음모의 한 가닥을 찾아낼 듯도 싶었다.

채유정과 함께 공안국을 나서려는데 참사관이 등 뒤에서 소리쳤다.

"내일 출발할 비행기 표를 끊어 놓도록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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