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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조경국
서랍 속에 넣어뒀던 사진을 꺼냈습니다. 벌써 두 달이 다되어 가는 선배의 결혼식 사진이었습니다. 꼭 결혼식 사진을 찍어달라고 장가갈 날짜를 잡자마자 나에게 연락을 했던 선배는 사진이 보고 싶었을 터인데 그날 고생(?)시킨 것이 미안해선지 사진 보여 달라 말이 없었습니다.

ⓒ 조경국
지금까지 부탁받아 결혼식 사진을 찍어 준 것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기억할 순 없지만 적어도 마흔 번은 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결혼식 사진을 부탁 받으면 사진을 찍고 적어도 한달이 넘게 서랍 속에 사진을 묵혀두었다 선물합니다.

아는 사람의 결혼이거나, 부탁을 받아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을 촬영했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달라고 하면 아직 덜 됐다 하고 더 오랫동안 서랍 속에 꽁꽁 감춰뒀다 한참이 지나서야 가져갑니다. 사진 보여 달라는 말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날의 기쁨이 슬슬 잊혀질 때 쯤 내보입니다. 어떤 때는 정말 까맣게 잊고 있다가 전할 때도 있습니다.

“뭐가 그리 사진 한번 받기 힘드냐. 빨리 좀 주지”라고 하면 “빨리 보여주면 그럼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댑니다. 하지만 신혼여행 갔다 오자 바로 보여주는 결혼식 사진보다 두어 달 기다렸다 받아 보는 것이 더 반가운 것은 아마추어 결혼식 전문 ‘찍사’의 오랜 경험(?)에 의해 터득된 것입니다. 골동품처럼 결혼식 사진도 바로 보여주지 않고 묵히면 묵힐수록 값이 더나갑니다.

얼마 전 이혼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2004년 한 해 동안 약 30만 쌍이 결혼하고 16만 쌍의 부부가 이혼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두 쌍이 결혼하면 그 중 한 쌍이 이혼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 조경국
서로 갈라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을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아픔이 경제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든, 성격 차이에서 생긴 것이든 어려움에 부딪힌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된다 하면 그때부터 부부라는 관계는 오히려 남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혼이란 극한의 선택을 해야 하는 부부가 그렇게 늘어 가는 것을 오늘날의 세태라 단순히 생각하기엔 너무 심각합니다. 이혼을 마지못해 써야 하는 마지막 극약 처방으로 남겨놓기 보다 단방에 모든 것을 정리하려는 종합감기약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인연이란 그렇게 쉽게 끊고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은 서로 보듬고 가기 위한 것인데 만약 서로에게 생채기만 안겨 준다면 꼭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을 지킬 필요는 없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해서 결혼 했다면 그것은 사회적 계약이기 전에 믿음의 약속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고통이라도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남남이 만나 함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그런데 제 기억으론 주례사에서 이 말이 나온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바로 결혼의 참의미입니다.

ⓒ 조경국
옛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죽어서도 아내와 연리지(連理枝)로 맺어졌다는 춘추전국시대의 '한빙(韓憑)의 고사'입니다. 송나라 강왕이 한빙의 아내인 하(何)부인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빙을 멀리 귀양 보내고 후궁으로 삼습니다.

아내를 빼앗긴 한빙은 목숨을 끊고 그 소식을 들은 하 부인도 남편과 함께 묻어달라는 말을 남긴 채 남편의 뒤를 따라 높은 궁궐의 높은 누대에서 몸을 던집니다. 이들의 사랑을 시샘한 왕이 일부러 무덤을 따로 썼지만 각각의 무덤에서 나온 나무가 이어져 연리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고도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인연은 이렇게 죽어서도 이어질 정도로 질기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저 옛 이야기일 뿐이라 넘길 수도 있지만 수십 번의 결혼식을 찍었던 저에겐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내가 사진에 담았던 그들, 그리고 올해도 나를 불러줄, 아직 부부의 연을 맺지 않은 그들의 사랑도 연리지처럼 강하고 질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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