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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프랑크푸르트에서 조금 떨어진 작센 하우젠 거리.

18세기의 정경을 떠올리게 하는 구 시가지인 이곳은 라인강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거리 곳곳에는 작센 하우젠 특유의 와인과 독일 각지의 독특한 맥주집, 그리고 식당이 들어차 있었다.

그 중 한 식당에서 검정색 양복을 입고 금발의 곱슬머리에 은테 안경을 쓴 남자가 늦은 아침을 들고 있었다. 그는 오늘 오전 장례식에 참석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식당에 들른 것이다. 친한 친구의 죽음을 맞이한 그는 주문한 식사를 한 옆으로 밀어놓고 오전부터 맥주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둘은 유적지 발굴을 위해 세계 곳곳을 함께 누벼왔다. 둘 다 고고학을 전공했지만 학교에 적을 두지는 않았다. 국내에 있는 시간보다 외국에 나가 유적지를 발굴하는 날이 많은 그들을 어느 대학도 받아 주지 않았다. 하여 둘은 국내에 있는 동안은 날품을 팔거나 유물을 박물관에 팔아서 돈을 마련했고, 그 돈으로 세계를 누벼왔다.

근래에 다녀온 중국의 일은 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엄청난 사실을 접한 둘은 당분간 이 일을 비밀에 부쳐두기로 했다.

"당분간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돼."

"물론이야. 하지만 그에게는 알리지 않았나?"

하우스 돌프가 신중한 목소리로 일렀다.
"그는 신중한 사람이야. 또한 그 방면의 전문가이기도 하고. 조만간 확실한 연구 성과로 드러낼 것이 분명해."

"그렇다면 우리의 이름도 역사에 남게 되겠지?"

"지금은 우리의 이름을 숨기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지."

그렇게 이번 일을 묻어두기로 한 둘 중의 한명이 그만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것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라니……. 뺑소니를 한 상대는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피터 크라샤는 입이 무거운 친구였다. 그 사실을 함부로 발설할 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정말 우연에 불과한 것인가?'

하우스 돌프는 피터 크라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놓고 한참동안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이다. 하지만 뺑소니 사고라면 누군가 의도해서 일으켰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의식 전면에 뿌연 안개가 들어차며 가슴 한켠으로 차디찬 불안이 엄습해 들어왔다.

새하얗게 되어 버린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급속히 형태를 만들어 갔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터에 다가간 그는 주인을 향해 "국제 전화 한통만 사용하겠소"라고 외치면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전화 연결음만 계속 들려올 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 말인가?'

그런 불길한 생각이 들며 등허리 쪽에서 차가운 냉기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어딘가 모르게 수상쩍다는 느낌이 시시각각 정수리께로 몰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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