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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고 있는 생태찌개
끓고 있는 생태찌개 ⓒ 김영주
일단 끓는 시간은 그런 대로 참을만한데, 생선 뼈 사이를 헤집으며 살들을 발라먹고, 어두육미라는 말을 알기 때문에 머리 부분도 먹기는 해야 할텐데 도저히 완벽하게 먹기란 언제나 쉽지 않은 것이었고, 무슨 건더기들은 그렇게나 많은지 국물 정도만 후루룩 먹고 나면 건더기들이 쌓이곤 했던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생태찌개만 팔고 있는 이 집을 알고 나서는, 최소한 이 집의 생태찌개만은 거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먹어 치우는 괴력을 발휘하게끔 된 것이니, 삼각지에 있는 생태찌개 전문점 '한강집'의 생태찌개는 맛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전혀 죄송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강집이 문을 연 것은 1980년이니 이제 25년이 넘어간다. 김영사에서 펴낸 <오래된 식당 100곳>이란 책에 실린 맛 집들의 기준 중 하나가 20년 이상 되었는가 인데, 그 이유가 한 곳에서 20년 이상을 음식을 만들어서 팔고 있으면 일단 이것만으로도 믿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인다.

사실 20년 이상 된 집들 중에서 역사와 전통이 맛을 보장하지는 않는구나 하는 집들도 간혹 만나게 되는 것을 볼 때, 한강집의 생태찌개가 맛있다는 것을 25년이나 되었다는 것에서 찾을 생각은 없다. 그냥 이 집의 생태찌개는 맛있게 만들기 때문에 맛이 있을 것이다.

김영자 사장은 생태찌개집을 차리기 이전에 설렁탕도 팔아보고 김치찌개도 팔아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음식들의 단점이 다소 질린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메뉴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생태찌개를 만들어 옆에서 표구사를 하던 북한 출신 할아버지에게 맛을 보였더니 맛이 있다고 극찬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생태찌개로 최종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손님들을 대하는 것이 서먹서먹해서 제대로 장사를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주방과 홀을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면서 손님 하나 하나의 표정을 살피며 각자의 부족한 점을 바로 알아내고 찾아가서 손님의 불만을 바로 해결하는 경지에까지 달했다고 한다.

생태
생태 ⓒ 김영주
그렇다면 한강집의 생태찌개는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물론 생태찌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태이다. 그리고 싱싱한 생태를 구하기 위해선 매일 새벽 3, 4시에 노량진 시장을 나가서 생태를 구매하는데 김영자씨가 구하는 첫째 가는 생태는 그물태가 아닌 낚시태.

다시 말해 그물로 잡히는 과정에서 그물에 온 몸을 부대껴 피멍이 들어 맛이 떨어진 생태가 아닌 낚시로 잡아 다친 곳 하나 없이 공수되어 온 생태이다. 물론 그물태보다 낚시태의 가격이 2배 이상 비싸다. 또 간혹 손님이 먹다가 미처 떼어 내지 못한 낚시 바늘을 발견할 때도 있다고 할 정도인 것이다.

다음 똑같은 생태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싱싱한가를 판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물었더니 생태를 손으로 잡고 평평하게 들었을 때 거의 밑으로 처지지 않고 수평을 이루면 싱싱한 것이고, 바로 밑으로 축 처지면 내장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좋은 생태를 고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좋은 먹이를 먹는다’는 격언처럼 매일 거르지 말고 새벽에 얼마나 부지런하게 시장에 나가는가라고 한다.

이렇게 구매를 해온 생태는 식당에 오자마자 바로 수작업을 통해 낚시 바늘들을 떼어내고 비늘을 벗겨내고 내장을 분리한 다음 잘라서 보관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생태들을 하나같이 냄비에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한다는 것이다. 그냥 보관을 하면 생태가 냉기를 곧바로 받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것이다.

생태가 준비가 됐으면 이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육수다. 다른 곳의 육수는 기본적으로 무, 대파, 양파, 다시마, 조개, 새우, 생강 등이 들어가는데 그치지만, 이 곳의 육수는 대구머리, 북어, 황태, 게, 조개, 새우, 홍합 등 14가지의 해산물로 낸다는 것이 특징이다. 3시간 정도를 끓여내고 건져내는데 이런 재료들이 육수의 시원함과 담백함을 내는 것이다.

생태맛을 살려주는 양은냄비
생태맛을 살려주는 양은냄비 ⓒ 김영주
이렇게 해서 생태찌개는 냄비에 무와 파, 양파를 깔고 그 위에 생태를 넣고 고추장, 된장, 마늘,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을 넣고, 두부를 넣은 다음 육수를 부어 끓이면 되는 것인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건 양은냄비에 끓여야 한다는 것이다. 생태는 강한 불에 빨리 끓여내야 제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조건을 가장 빨리 충족시킬 수 있는 그릇이 바로 양은냄비인 것이다.

한강집엔 하루 평균 500명의 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한 달이면 자그마치 1만5천명이 이 집의 생태찌개를 먹는다는 얘기다. 내가 취재를 하러 간 시간은 점심 시간과 저녁 시간의 중간쯤이었는데도 거의 비어있는 자리가 없었고, 김영자씨는 손님들의 표정을 살피느라 빨리 빨리 물어보라며 재촉을 하곤 했다. 물론 잘 먹고 간다는 손님들의 말이 절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의 만족스런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한국음식업중앙회의 자료에 따르면 극심한 내수부진으로 하루 평균 190여개의 식당이 문을 닫고 있는 데다 전국 식당의 85%가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됐기 때문에 현찰 장사라는 식당 운영의 장점(?)도 없어진 것이 요즘 현실이다. 솥단지를 들고 거리로 나온 식당 주인들의 시위가 불과 얼마 전인 것이다.

그런데 잘 나가는 맛 집을 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간신히 들어가서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음식을 연거푸 입에 가져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나라엔 맛있는 음식에 미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거듭 느끼곤 한다. 잘 되지 않는 식당의 주인과 맛있는 음식에 한이 맺힌 고객들의 간극은 과연 어떻게 메워야 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결코 나의 선호 음식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던 생태찌개를 무섭게 먹으며 생태찌개의 맛을 재발견한 것에 희열을 느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 풀리지 않는 숙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볼까 한다.

된장으로 간을 한 생태맑은탕
된장으로 간을 한 생태맑은탕 ⓒ 김영주

덧붙이는 글 | 02-716-7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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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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