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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동안 알고 지내던 많은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귀국할 때마다 “꼭 연락할게요”하고 떠나지만, 정작 계속 연락해 오는 사람들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매 절기 때마다 전화를 해 오는 친구가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도 점심 시간쯤 새해라고 인도네시아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화는 감이 너무 멀게 느껴지고, 제가 하는 말이 수화기에서 다시 들리는 현상이 계속 발생하면서 제대로 통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몇 분 안 된 사이 네 번이나 중간에서 연결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한시간쯤 지나서 다시 국제전화로 여겨지는 전화가 왔습니다. 여전히 수화기에서 소리가 울려, 상대방의 말을 듣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렵게나마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자에날(Jaenal)이었습니다. 자에날은 미등록 체류 상태로 일하던 시기에 사고를 당해 오른손목 아래를 절단 당해 의수를 하고 귀국해야 했습니다. 그는 성탄절이나 추석, 새해 등과 같은 명절이면 꼬박 꼬박 전화를 해 오는데, 그날은 전화 상태가 좋지 않아 다섯번 만에 연결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에날은 성격이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전부 잃는 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업체 사장에게 산재처리를 해 달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 속앓이를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동료들이 나서서 저를 찾아 왔고, 결국 자에날은 보상을 받고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간단한 통화를 하기 위해 한시간 넘게 다섯번씩이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반면 잘 안 들린다고 전화를 끊어 버렸던 저로서는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상적인 새해 인사를 나누고, 자에날은 늘 하듯이 “인도네시아에 언제 와요?"라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늘 그렇듯이 쉽게 한결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시간 나고, 돈 있으면 가 볼게요.”

그런데 이번은 자에날이 뜻밖의 말을 해 왔습니다. “아체(Aceh)에 오면 전화 주세요. 저 지금 깔리만탄인데, 달려갈게요.” 갑자기 말문이 콱 막혔습니다. 자에날은 지진 해일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에 제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오라는 건지 모르지만, 불편한 손에도 불구하고 달려 와서 함께 일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요. 피해 복구를 위해 인도네시아에 함께 가자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아직 갈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가게 되면 연락할게요. 고마워요.”

저는 전화를 하면서 소심했던 자에날의 성격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고통 당하는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지금 눈앞에 자에날이 귀국에 앞서 선물로 주고 갔던 고풍스런 버튼식 전화가 울고 있습니다. "어서 와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계속 부르고 있는 듯한 그의 음성이 귀에 울리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덧붙이는 글 | 지진 해일 피해 지역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한 모금 운동들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있고, 구호활동 또한 전개되고 있는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가까운 곳에서 함께 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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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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