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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만 되면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녀석과 화장실에서 씨름을 한다.

"왜 또 서서 오줌을 누니?"

잠이 덜 깬 녀석의 얼굴에 짜증이 배어난다. 싫다는데 왜 자꾸 성화냐는 눈치다.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앉아서 누기로 약속했잖아?"

며칠 전 우리 집 남자들은 앉아서 오줌을 누기로 약속했다. 물론 남자라고 해 봐야 나와 아들 녀석이 전부다. 어쨌든 약속을 받을 때도 녀석의 저항은 예상보다 심했다.

"왜 앉아서 오줌을 눠야 돼? 나는 남잔데."
"물이 밖으로 튀면 변기가 지저분해지잖아."
"그럼 청소하면 되지!"
"네가 한 번이라도 청소해 봤어?"

그 말에는 녀석도 면목이 없나 보다. 사실 지퍼 하나만 내리면 간단할 것을 굳이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 오줌을 누라고 하니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꺼려지는 것은 아마 '남자가 어떻게∼' 하는 마음일 것이다. 녀석의 항변도 그랬다. 지금까지 별로 불편한 것 없이 서서도 오줌을 잘 눠 왔는데 왜 바꾸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창피하게 남자가 말이다.

이제 겨우 세상을 10년 남짓 산 녀석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우리집만큼은, 우리 아들 녀석만큼은 남녀차별이라는 이분법에 매이지 않도록 키우려고 노력했는데, 어느새 아이의 몸과 머릿속에 이렇게 딱딱한 껍질이 앉았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섬뜩해졌다.

10여 년 전 독일에 있을 때였다. 가깝게 지내던 여자 선배 집에서 오랜만에 동료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였다. 주종은 당연히 값싼 맥주였다. 그런데 맥주라는 술이 다른 건 다 좋은데, 워낙 빨리 소화가 돼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

헌데 남자들이 화장실을 갔다올 때마다 여자 선배도 일어났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그저 무슨 일이 있는가 싶었다. 그런데 좌중에 취기가 돌고 가무가 한바탕 휩쓸고 난 뒤에야 선배가 불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야, 김○○, 네가 제일 지저분해! 오줌발 센 거 자랑하냐? 그리고 너 정○○, 왜 변기도 안 올리고 오줌을 눠? 변기 뚜껑에 다 묻잖아! 닦지도 않고…. 그래도 박○○ 네가 제일 나아. 별로 튀지도 않고 깨끗해."

이게 무슨 소린가? 그럼 아까 들락날락한 것이 남자들 오줌 눈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던가? 평소에도 엉뚱한 구석이 있는 선배였지만 참으로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그러면서도 별 희한한 놈의 결벽증이 다 있구나 하고 웃어 넘겼다.

그러던 것이 결혼을 하고 주로 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선배의 그런 행동이 단순한 결벽증이 아니라 남자들의 화장실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변기를 청소하다 보면 주변에 튄 물방울들이 퍽 비위생적으로 느껴진다. 사실 남자들은 별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오줌을 눈다. 물이 튀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 나중에 여자들이 앉을 자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남자들은 생리 구조상 조준(?)이 잘 되지 않아 엉뚱한 곳에 오줌을 흘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자랑스럽게 뒷짐까지 지고 일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야 남자의 위신이 서는 것일까?

위생을 고려하고 뒷사람을 생각하면 남자도 앉아서 오줌을 누는 것이 좋다. 큰 것도 앉아서 보는데 작은 것을 못 볼 이유가 어디 있는가? 공중화장실이 아니라면 가정에서는 앉아서 오줌을 누는 습관을 키우자.

중동의 어느 오지에서는 남자들이 서서 오줌을 누면 오히려 놀림을 받고, 독일 남자들도 상당수 앉아서 오줌을 눈다. 그러니 앉아서 오줌을 누는 것은 흉이 아니다. 단지 습관과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여자니까 이래야 하고, 남자니까 저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저 편리하고 좋은 쪽으로 바꾸면 그만이다. 어릴 때부터 굳어진 습관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남녀평등을 부르짖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바꾸어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고, 고정관념 때문에 못 바꾸는 것이라면 한 번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올해 우리 집 새해 목표는 정해졌다. 남자도 앉아서 오줌을 누자! 서서 오줌을 눌 수 있으면, 앉아서도 오줌을 눌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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