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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한해걷이에 분주한 마지막 달.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예산문화원 3층 다목적실이 분주하다. 한무리의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 아이들 수만큼이나 많은 교사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 어린 나무들의 내공이 발휘된 결산 행사.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자연 놀이 활동의 진행자는 나무 1기생이다. 하루 교사가 되어 또래 친구들에게 놀이 방법을 알려 주는 아이들의 표정에 기쁨이 뚝뚝 흐른다.
ⓒ 장선애
이날은 예산 지역에서 처음으로, 아니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운영된 비상설 생태체험학교 '나무'의 활동 보고가 있었다. 활동 보고라는 게 격식 차려 치적 자랑하는 식이 아니라 나무 어린이들이 주체가 되어 또래 친구들과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자연놀이를 함께 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까지 사계절을 자연에서 놀며 느낀 나무 어머니들도 잔칫집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 만들기와 안내 요원을 맡아 거들었다.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과정에 흠뻑 취했던 교사들도 열성을 다했다.

'나무랑 놀자'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예상보다 성황을 이뤄 행사가 끝난 후 '나무' 식구들은 모두 녹초가 됐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겨울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이제 나무 1기생 14명과 교사들은 동면이 끝나는 이른 봄에 다시 만나게 된다.

생태놀이는 생활 지역에서

'나무'는 예산생태연구소가 '늘푸른예산21'의 일부 후원을 받아 지난 4월부터 8개월 동안 군 내 초등학생 14명을 대상으로 운영한 생태학교다.

남녀 어린이 7명씩 두 모둠으로 진행된 ‘나무’에는 총괄교사 1명과 모둠교사 2명, 도우미교사 4명이 함께 한달에 2~3회씩 자연 속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모두 여덟개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따른 자연놀이와 조사 활동이 이뤄졌다. 또 ‘밤 숲산책’과 ‘모둠별 번개모임’등 비정규 활동과 아이들끼리의 번개 모임을 통해 스스로 생태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나무’에서는 학생과 교사 모두 별칭을 사용한다. ‘나무’의 기획과 운영, 교육 전반을 총괄하는 정재근 내포생태연구소장은 '산지니(산에서 오래 묵은 짐승)' 혹은 '촌장'이라 불린다. 차돌, 기러기, 디딤돌, 두더지, 모글리, 푸른뜰, 봉선화, 이쁜꽃, 하얀눈, 목화, 방아깨비, 제비꽃, 별, 개나리, 바람, 미루나무, 나뭇잎, 오아시스, 산, 사슴벌레, 구름 등등. 이들이 지난 한해 자연에서 벌인 활동은 참 다양하다.

▲ 만남의 단계- 숲아 만나서 반가워, 풀에게도 이름이, 고개 마루를 넘어가요 ▲ 발견의 단계- 바위 얼굴을 찾아라!, 갯벌이 들썩들썩, 물고기를 잡아라!, 나비들이 팔랑팔랑 ▲ 이해의 단계- 물가에서 텀벙텀벙, 별과 함께 여름밤을, 숲속 올림픽, 자연미술 비엔날레 ▲ 관계의 단계- 나무자연미술제, 가을 숲에서 놀아요!, 엄마 아빠 천천히 걸어요!, 새들이 찾아왔네!, 무한천에도 새들이… ▲ 정리의 단계- 나무의 일년, 나무와 함께 놀아요!

ⓒ 장선애
이 '나무' 활동의 80% 이상이 예산군 내에서 실시됐다. 다만 바다 철새 탐사와 공주 자연미술비엔날레 관람, 스스로 캠프 등 네번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에서 해야 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생태 자원과 가치를 습득하고 자연스럽게 지역 사랑의 마음을 키워갔다. ‘사고는 지구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라는 말이 나무에서 그대로 실행된 셈이다.

"스스로 할 수 있어요"

나무 프로그램 중에 눈에 띄는 또 다른 하나는 ‘자치력 향상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지난 여름에 진행된 스스로캠프를 잊지 못한다. 공주로 2박3일 동안 떠난 일정은 철저히 아이들로만 이뤄졌다. 준비부터 이동, 숙식까지. 초등생들로만 구성된 아이들의 안전을 감안해 교사들은 멀찌감치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들은 돈이 부족하면 스스로 흥정을 하고 대책을 세웠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진행한 프로그램이 또 있다. 공주자연미술 비엔날레를 관람하고 와서 관작리 관모산에서 진행한 나무자연미술제와 가족들을 초청해 진행한 '엄마 아빠 천천히 걸어요', 그리고 마지막 프로그램인 '나무와 함께 놀아요'가 그것들이다. 이제 아이들은 벌레가 징그럽다거나 똥을 더러워 하지 않는다. 어둠이 내린 산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바람과 천둥번개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산지니 정재근 촌장은 “나무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사는 생태 지킴이를 키워 내는 프로그램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며 “1년을 단위로 기초 공동체 교육, 기초 생태 교육, 심화 연구 과정, 자유 연구 과정의 4년 이상 과정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참다운 생태적 인간의 완성은 한세대에 완성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학생과 함께 크는 교사

▲ “고개마루를 넘어가요” 십리길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산길 굽이 돌아 마을로 들어선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 날.
ⓒ 장선애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했지만 장기프로그램 운영의 첫해 동안 무에서 유를 창조해 가는 과정이 계속됐다. 정규 생태교육을 받은 교사들은 지난 한해 동안 아이들보다 ‘나무’에 흠뻑 취해 있었다.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고 말한다. 교육의 새 지평을 만드는 창조 작업은 거듭됐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올해 정규 과목으로 채택된 생태 글쓰기다.

차돌 조재옥 교사가 전공을 살려 아이들과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 낸 과정이다. 곤충 기르기에 심취한 아이들은 ‘사슴벌레가 된 나’‘송장벌레가 된 나’같은 손바닥 소설을 써보더니 어느날 “기르던 곤충을 모두 자연속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해 왔다. “자연을 사랑하자”거나 곤충을 집안에서 키우는 데 따르는 문제점들에 대해 주입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감성으로 가능케 된 일이다.

이 작업은 공산성에 누워 ‘우리 아버지는 백제병사’라는 주제의 글쓰기로 이어졌다. 자기 표현에 서투르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생생한 소재를 던지자 서서히 문을 열었다. 교사들의 열성은 정 촌장도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정기 교육 시간 이외에 아이들끼리 혹은 모둠 교사를 중심으로 번개 모임이 여러 차례 진행됐다. 번개모임을 하기로 한날 천둥번개가 치는데도 교사들은 아이들과 그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비바람과 천둥번개도 자연 현상의 하나이고 어떻게 적응하는가를 익히는 좋은 기회라며.

서산에 살며 교사로 활동한 '기러기' 조미희 교사는 “나무 활동은 스승과 제자가 되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수업이 아닌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여 자연 속에서 함께 즐거워하고 같이 배우면서 자라가는 생활 속의 활동”이라고 말한다.

고향을, 마음을 만들다

ⓒ 장선애
올해 나무는 ▲ 애벌레 과정- 7, 8, 9세반 ▲ 도토리 과정- 초등 3학년 이상 ▲ 나무 과정- 1년차 과정을 마친 나무 어린이로 구성, 운영할 계획이다. 또 지난해 진행된 생태 교육을 근간으로 고택 지킴이와 노작(농사짓기) 활동이 덧붙여진다. 선택 활동으로 생활 목공과 목각 공예, 사진, 생태 글쓰기, 영화 보기를 일주일에 한차례 할 수 있도록 편성해 놓았다.

애벌레반은 그야말로 자연 속에서 실컷 놀고 충분히 느낄 수 있는 10단위, 도토리반은 자연을 만나는 20단위 과정, 나무과정은 자연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보다 심화된 22단위 프로그램이 마련된다(yeseco.org) 그리고 올해는 홍성과 서산에서도 이 과정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맞춰 예산생태연구소에서 내포생태연구소로 그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는 정재근 소장은 생태지킴이 ‘나무’를 키우는 자세에 대해 거듭해 강조한다.

“나무 이름, 풀의 종류를 알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 주고 마음을 만들어 주는 과정입니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만들어 주는 일. 그저 자연 속에서 뛰놀고 자연의 놀잇감을 통해 친구들과 정을 쌓던 모습이 사라진 자리에 입시 교육의 황량함이 버티고 있고, 커진 키만큼, 채워진 지식만큼 마음은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과 함께 마음을 만들어가는 ‘나무’는 그렇게 시작했고 현재 진행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계속돼 지구생태를 지켜갈 것이다.

[소감]나무 1년 활동을 마치며

함께 하는 나무 활동들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들도 자주 보이게 되었고 컴퓨터나 TV가 없어도 자연 속에서 마음껏 즐기는 친구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무는 혼자서 성장하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따스한 햇살과 맑은 공기 그리고 깨끗한 물과 바람, 곤충과 새 등 많은 것들이 함께 어울려야 잘 자랄 수 있는 것처럼 나무친구들이 성장하는 데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요. - 기러기 조미희 교사

정말 꿈만 같은 일이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생태 지킴이 나무라는 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 친구들도 만나고 정말 둘도 없는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바람 김한수(금오초 5)

나는 나무를 하면서 느낀 점이 스스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과 똥이 그렇게 더럽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가엾은 곤충은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겠다. -개나리 이해인(서동초 2)

한사람이 가진 희망의 힘은 적다. 하지만 그 희망들이 메아리가 되어 퍼져 나가면 어느새 살아있는 생활이 된다. 지난 일년, 나는 행복했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만남이 행복했고, 스폰지처럼 자연을 빨아들여 하나가 되는 아이들이 있어 행복했다. 이 과정에 많은 희망을 보았고 이 행복한 희망들을 나누면 더 커질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렇게 희망으로 지낸 시간들이 다시 세상으로 크게 공명되어 또 다른 희망들이 자라나기 바라는 마음이다. -산지니 정재근 촌장

늦은 밤까지 친구와 함께 누워 본 별은 아마도 가슴에 정겨움으로 빛날 때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밤과 어둠이 무서운 것도 아니요, 그 안에서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밤이 깊을 수록 별들이 더 다정하게 다가옴을 아이들도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푸른뜰 서신미 생태지도자

나는 아직도 많이 미숙한 나무 선생님이다. 여전히 생태적이지 못한 부족함을 아이들에 대한 애정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열네명인 나무 친구들이 또 다른 열네명들의 생태 지킴이를 키워낼 것이고, 그런 열 네명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뤄 나갈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생태 지킴이들을 보듬는 손길이 되고 싶다. -차돌 조재옥 교사

생태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꼭 들로 산으로 바다로 가야만 생태를 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마당에 있는 밭에도 화단에도 생태가 있고 길가에 아무렇지 않게 자라난 잡초도 생태라고 하네요. 아하~! 사람도 그 생태에 속하는 구나. 그러니 생태를 찾으러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디딤돌 강경아 특별교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의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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