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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 권우성
2005년 을유년 새해다. 해방 60돌이 되는 올해는 동양문화권에서는 예사 해와는 달리 갑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 소개할 새해 첫 인물로 누구를 할까 고심하다가, 두어 차례 만나 뵌 적이 있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별다른 언턱거리 없이 뵙자고 하면 사양하실 것 같아서 잠깐 생각을 가다듬자, 곧 '친일인명사전 모금 운동' 1주년이 된다는 사실이 머리에 스쳤다.

그래서 메일로 임 선생님께 '친일인명사전 모금 운동 1주년'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드리면서, '그 기념으로 특별대담을 하고자 하오니 대의로 사양치 마시라'는 빗장의 글까지 달아서 보내자 곧 내 생각대로 허락이 떨어졌다.

선생과 만나기로 한 지난해 12월 29일, 전날 밤 취재 가방을 미리 꾸려두고, 이튿날 아침 일찍 소풍을 가는 초등학생처럼 가뿐하게 집을 나섰다. 9시 30분 농협 안흥지점 앞에서 서울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정오 무렵 서울에 도착한 다음, 한 출판사에 들러 용무를 마쳐도 약속 시간이 한 시간은 더 남았다. 다른 곳을 기웃거리기도 어중간하여, 미리 민족문제연구소로 가서 사무실도 촬영하고 질문내용도 메모할 참으로 약속 시간보다 일찍 갔다(사실 나는 그동안 숱한 대담을 하였지만 여태 준비성이 부족하다).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사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사무실을 촬영하고, 차를 마시면서 질문 요지 메모를 마치려는데 임 선생님이 약속시간에 맞춰 들어오셨다.

임 선생님은 대담의 정확성을 위해 민족문제연구소가 문을 열 때부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온 조세열 사무총장을 배석시키겠다고 양해를 구한 다음, 조 총장을 옆자리에 앉게 했다. 필자도 그분과는 구면이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해가 되기를

- 을유년 새해는 해방 60돌이 되는 의미 있는 해입니다. 새해를 맞이한 네티즌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임헌영 소장 : "먼저 2003년 연말 곤경에 처한 우리 민족문제연구소에 희망과 용기를 주고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할 수 있도록 물심 양면으로 견인차 역할을 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에게 삼천 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화목과 건강을 축원하오며, 아울러 모든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임헌영 소장(왼쪽)과 조세열 사무총장이 자료를 보면서 답변하고 있다.
임헌영 소장(왼쪽)과 조세열 사무총장이 자료를 보면서 답변하고 있다. ⓒ 박도
2004년은 한 마디로 희망과 좌절의 한 해였습니다. 우리 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 데 필요한 예산 5억원이 국회예결위 예산조정과정에서 삭감되었습니다. 이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을 중단하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요. 이런 위기 상황에 한 네티즌이 불씨를 만들어준 걸 <오마이뉴스>에서 요원의 불길로 잘 살려줘서 온 나라를 들끓게 했지요.

그 불길의 연장으로 탄핵정국도 헤쳐나갈 수 있었고, 4·15 총선에서도 개혁 지향성 국회를 창출시켰습니다. 총선 직후에는 엄청난 희망을 가졌었는데 역시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고 한 해(2004년)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2005년은 해방 60돌로 곧 회갑을 맞게 되는데, 우리 옛 말에 '회갑을 지내봐야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수 있다'는 말처럼, 이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뭔지를 회갑동이가 정식으로 점검해야 할 해입니다. 올해는 우리 국민 전체가 모두 힘을 합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 국민 가운데 일부에서는 해방 60년이 된 이 시점에도 여태 '아직도 친일파 척결이냐'고 비판하는 측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들려주실 말씀은? 그리고 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도 말씀해 주십시오.
임헌영 소장 : "오히려 그들에게 '왜 해방 60돌이 되도록 친일파를 옹호하려고 하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친일파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현재의 문제입니다. 민주화의 바탕이 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언론, 문화 등 우리 국가와 민족의 모든 개혁이 친일파 청산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화통일 문제까지도 친일파 청산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다시 그들에게 '친일파 청산을 하지 않고도 이 모든 문제를 다 개혁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만일 위와 같은 '모든 개혁 문제를 다 해결해주고, 일제하의 강제연행 등 민족 수탈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8·15 이후 부당한 권력에 의한 국민들의 희생을 밝힐 수 있는 과거사 청산, 일제가 만든 일체의 악습과 악법,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 폐지 등등을 국민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처리해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이 모든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보십시오. 왜 그들이 친일파 청산을 반대하는지를. 이 문제가 결코 과거지사가 아님을 명백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친일파 청산은 결코 과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 현재의 문제요, 앞으로 우리가 올바른 통일을 할 것이냐, 아니면 외세의 간섭으로 영구히 분단 상태로 지낼 것이냐, 또 민주주의 정권을 탄탄히 뿌리 내려 선진국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다시 군사독재 정권을 세울 것이냐 등 민족의 사활이 걸린 오늘과 내일의 문제입니다.

어느 나라나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다가 해방되면, 가장 먼저 부역무리를 척결해야만 그 민족의 정기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그 시기를 놓쳤습니다. 친일부역의 무리는 대부분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그들의 이름과 행적이라도 역사에 남겨야 다시는 민족을 배반하는 무리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사실상 창설자 임종국 선생이 사무실 가운데 모셔져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사실상 창설자 임종국 선생이 사무실 가운데 모셔져 있다. ⓒ 박도
국난 때마다 우리 민중들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 2004년 1월 8일에 친일인명사전 모금운동이 벌어졌으니까 곧 1주년이 다가옵니다. 모금에 참여한 분이 몇 분이나 되며 총 모금액은 얼마나 됩니까?
임헌영 소장 : "(배석한 조세열 사무총장이 편 장부를 보면서) 2004년 1월 7일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의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라는 칼럼의 댓글에 '참세상'이라는 네티즌(부산 동인고등학교 김호룡 교사)의 '친일인명사전 발간비용을 모읍시다'가 불씨의 도화선으로 점화하여 다음날부터 모금이 시작, 나흘만에 1억을 돌파하였습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 박도
조세열 사무총장 : "애초에는 8월 15일 광복절까지 5억을 모금하려고 했는데, 우리 모두의 예상을 깨고 모금 개설 11일만인 1월 19일에 목표액 5억이 달성되었습니다. 목표액 달성 후 공식적인 모금을 중단했는데도 꾸준히 보내주셔서 2만 6900여 명 참여에 총액 6억 1300여만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1만원에서 10만원 사이가 가장 많았는데 대부분 일반 서민들이었습니다."

- 저도 앞서서 모금 운동(백범 암살배후 규명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 행 여비 마련)을 주도해 보았는데 성금을 내신 분이 대부분 기층 민중들이었습니다. 대학 도서관에서 항일 관계 문헌을 뒤져보다가 일제시대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낸 미주 동포들의 모금 서류를 보았습니다. 사탕수수밭의 노동자들이 1~5 달러씩 보낸 명단을 보고 가슴 뭉클하였습니다.
임헌영 소장 : "그렇습니다. 단군 이래 우리 나라를 지켜온 것은 집권세력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뿌리인 민중들이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최근의 예로 지난 외환 위기 때 금반지를 내놓은 사람은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상층부들의 금송아지는 별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상층부가 외화낭비로 국난을 초래한 것을 그 치유는 우리 민중들이 했습니다.

일제가 우리 나라를 강점했을 때 죽창이나 낫을 들고 나선 의병들도 우리 민중이었고, 국채보상운동에 나선 것도 우리 민중들이었습니다. 고관들이나 많이 가진 사람들은 외세에 빌붙어 오히려 동족을 괴롭혔습니다. 국난 때마다 우리 민중이 나서서 나라를 지켰습니다.

걸핏하면 '민생'이 어떻고 떠들지만 IMF때 대기업 회장이나 사장들이 자신의 몫을 희생하면서 노동자를 구했습니까? 그걸 구실로 구조조정이랍시고 마구 목을 친 게 누굽니까?"

- 친일인명사전 모금 열기는 화산의 용암이 솟구치는 듯한 백성들의 성난 불길이었습니다.
임헌영 소장 : "그랬습니다. 집권자나 정치하는 분은 민중의 이런 힘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정도의 민주주의도 사실은 민중들이 투쟁해서 얻는 것이지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게 아닙니다.

일제 침략 때 지배세력들이 독립운동가들처럼 투쟁했다면 식민통치가 달라졌을 것이고, 5·16 쿠데타 때 정치인들이 민주화 운동권처럼 투쟁했다면 결코 군부독재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지배층이 망쳐 놓은 역사를 바로 잡아준 것은 민중입니다. 그런데 지금 민중이 바로 잡아놓은 걸 오히려 정치인들이 망가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저는 네티즌(민중) 여러분에게 삼천 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 연구사들이 자료 정리에 여념이 없다.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 연구사들이 자료 정리에 여념이 없다. ⓒ 박도
외면할 수 없는 민족 문제

- 문학평론가의 길에서 민족문제연구소장이 된 까닭이 궁금합니다.
임헌영 소장 :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문학은 종합 인간학입니다. 본격적인 문학을 하려면 저절로 인문사회과학을 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민족사적인 쟁점에 맞닿게 되어 양심적인 문학인이라면 외면할 수 없는 문제를 당면하게 되지요. 또 근본적으로는 제 개인적인 팔자입니다. 그러나 요즘 저는 본업인 문학평론 쓰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할 말은 많은데 시간은 없고…."

- 다시 <친일인명사전> 모금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3만 명에 가까운 네티즌들이 눈물어린 성금을 모아 주셨습니다. 네티즌 가운데는 내가 보낸 성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민족문제연구소가 한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임헌영 소장 : "네티즌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애초 계획대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4년도 편찬 계획된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이 막 발간되었습니다. 이 사전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 사업의 하나로 일제 협력단체 중, 국내 중앙 편에 해당합니다. 곧 <친일인명사전>의 부록 편으로 보시면 됩니다. 수록 인명 9700여 명 중, 조선인은 7000여 명에 이르고 단체 수는 350여 개입니다. 사실 이런 사전은 이미 국가단체에서 나왔어야 할 것으로 우리 근대사 자료에 귀중한 문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30일에는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일제의 '전시 파시즘 미술을 개관하고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 찬양한' 친일 미술의 실상을 담았습니다. 이 모두가 성금으로 이루어진 성과입니다(자세한 편찬 일정 및 진행상황은 박스 기사 및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참조 바람). 국민 성금으로 우리 나라에서 조사할 수 있는, 우리가 노력해서 조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는 다 봤습니다."

- "연구원들과 학자들이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있는 자료는 다 봤다"라고 하셨는데 더 정확한 기록을 위하여 일본 정부의 자료도 보실 계획은 없는지요? 역설적인 얘기입니다만, 누가 친일했는지 독립운동을 했는지는 일본의 기록이 가장 정확하다고 합니다.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 ⓒ 박도
임헌영 소장 : "해외에 우리 동포가 700만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은 우리의 현대사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솔직히 그동안 우리 연구소의 힘이 해외에까지 미칠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방 60돌을 맞아 해외동포들에게 호소합니다. 모국의 과거 청산에 동참해 주기를 부탁드리며 현대사 자료라면 무엇이든 우리 연구소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연구소도 이제는 눈을 해외로 돌리려고 합니다. 전문 인력과 예산이 태부족하지만 뭔가 시도해 볼 작정입니다. 지난 번 박 선생 방미 때 그곳 동포와 학자들의 헌신적인 봉사 미담을 듣고 해외 동포들과 연계만 잘 하면 효율적으로 해외 자료도 얻을 수 있다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조세열 사무총장 : "'일제 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하게 됨에 따라 2005년부터는 국가에 의해 반민족 행위가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연구소가 설립할 당시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때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경제적인 면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연구소를 색안경 끼고 바라봤지요."

임헌영 소장 : "이 법이 통과되었는데 그래도 친일인명사전이 필요한가? 그렇게 묻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테두리 내에서 공식적으로 조사하는 것이고, 우리는 민간단체의 연구로서 그리고 국가기관이 하는 보조로서, 국가기관이 조사하는 기간 이후로도 항구적으로 민족정신 고양을 위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는 꼭 있어야 합니다. 이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기관과 협력 또는 서로 견제가 필요한 거지요. 그래서 국가가 우리 연구소를 지원해 줘야지요. 이 법이 통과됨으로 우리의 할 일은 더 많아집니다."

조세열 사무총장 : "이번 개정안은 우리의 요구를 다 충족시키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16대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보다는 많이 진전이 되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반민족 행위자 선정도 사실은 공식적으로 없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규명이 상당히 약해지는 겁니다. 국가기관의 조사는 보고서 형태로 되어 버립니다. 아무래도 친일인명사전은 민간 연구소 쪽에서 선도적으로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 며칠 전 원주와 횡성에 사는 두 젊은 분이 저를 찾아와서 아직도 매국노의 후손들이 재산을 찾겠다고 군청이나 등기소를 드나든다면서 비분강개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조상의 족보까지 세탁하여 매국노의 후손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면서 산다는 군요. 매국노 후손들이 근신하지 않고 공직에서 3·1절 기념식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한다든지,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조명하는 블랙코미디같은 일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니, 이런 일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친일인명사전의 산실, 민족문제연구소 내부
친일인명사전의 산실, 민족문제연구소 내부 ⓒ 박도
조세열 사무총장 : "우리 연구소에서는 헌법상 기본권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매국형 친일파의 재산만큼은 국가가 환수하는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 조사로 매국형 친일파가 400여 명이 됩니다. 그들의 재산이 어마어마합니다.

임헌영 소장 :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재산을 모두 환수한다면 엄청난 액수가 될 겁니다. 그 돈으로 실업대책을 세운다면 일자리 없는 젊은이들을 모두 구제하고도 남을 것이며 길거리 노숙자도 다 해결할 겁니다."

조세열 사무총장 : "우리 연구소는 친일파 연구만 한 게 아니라 국가 재산을 지켜주는 일도 하였습니다. 친일파 후손이나 토지 사기단들이 일제 시대 창씨개명된 토지를 가로채려는 것을 밝혀서 그들이 국유지를 가로채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국가기관(산림청)에서 감사의 뜻으로 우리 연구소가 약간의 사례금도 받았습니다."

항구적으로 민족의 얼을 지키는 연구소가 되고자 함

- 민족문제연구소의 걸어온 길과 문턱을 더욱 낮출 방안은?
조세열 사무총장 : "한 마디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구차했던 시절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지난 겨울 박 선생님이 다녀오셨던 유하 현 일대의 신흥무관학교를 답사하고 왔는데 만주의 추위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더군요. 영하 30~40도의 추위 속에서 풍찬 노숙하다가 얼어 죽고 굶어죽고 총에 맞아서 죽은 선열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정말 지난 모금 운동 때는 감격했습니다. 사실 처음 문을 열 때는 '반민족연구소'라고 하여 좀 살벌한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연구소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더욱 문을 낮추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현판
민족문제연구소 현판 ⓒ 박도
- 저도 중국대륙에 흩어진 항일유적지를 답사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독립전사들은 조국의 해방을 위한다는 어떤 희열을 느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독립전사들은 친일파 민족반역의 무리를 짐승이나 벌레보다 못한 인간쓰레기로 보았을 겁니다. 지난 여름 제 시골집 출입문 위에 땅벌이 있는 것을 모르고 문을 세차게 닫다가 된통 공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 보니까 땅벌 두 마리가 죽어 있더군요. 그 땅벌보다 못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너무 과거문제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민족의 현실 문제, 곧 분단 극복이나 통일을 위한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갈 의향은?
임헌영 소장 : "우리가 식민지 시대를 겪었지만 그때의 문제들이 정리되지 않았기에 그 문제를 매듭짓고자 그렇게 비친 점은 부인치 않습니다. 친일 문제만 매듭짓거나 우리의 역량이 된다면 그야말로 민족문제인 분단과 통일문제도 다룰 것입니다."

- 민족문제연구소의 지향점에 대하여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임헌영 소장 : "우리 연구소의 목표가 친일인명사전을 내는 하나로 끝나서는 안 되고, '역사기념관'을 만들어서 민족의 얼을 지키는 일과 역사 자료관으로 사용함은 물론, 초중고등 학생들의 교육장이 되게 하는, 그런 비전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과 달리 국가나 기업체에서도 우리 민족의 얼을 지키는 기관에 관심과 지원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무리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임헌영 소장 : "첫머리에서 인사드린 대로 네티즌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과 아울러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리며 불길을 지펴준 <오마이뉴스>에 감사의 뜻을 올립니다. 아직은 이 과업이 끝난 게 아닙니다. 더욱 격려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의 힘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 세부 일정]

친일인명사전이란?
구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 혹은 지연시키며 각종 수탈 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이 사전에는...
해당인물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 행적 등이 기록된다.

세부 편찬 일정
2001년도 : ‘친일행적자 인물카드’ 통합 입력
2002년도 :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국내편)]
2003년도 :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국외편)]
2004년도 :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
2005년도 : ‘친일파’ 세부규정안 확정 - 사전에 수록할 인물 선정과 집필 시작
2005년도 :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지방편)]
2006년도 : [일제통치기구사전]
2006년도 : [일제협력단체사전(해외편)]
2007년도 : [친일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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