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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태
처음에는 무슨 흉한 소리냐며 펄쩍 뛰던 어머니도 할머니를 비롯한 친척들이 모두 나서 그렇게 하기를 권하자 나중에는 못이기는 척, 여러 번의 진료와 검사 끝에 드디어 어머니는 임신에 성공,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늦둥이를 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아이가 바로 다솜이라고 했다. 이름도 예쁜 다솜이는 무럭무럭 자라 지금은 벌써 5살이라고 했다. 동생은 신기하리만큼 언니를 빼닮았고, 하는 짓 또한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동생이 태어난 이후 어머니도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었고 집안 분위기도 한층 밝아졌다고 했다. 집안에 다시 웃음꽃이 피고 온 가족이 생기를 되찾은 것이다. 그녀는 그 동생 다솜이가 눈에 삼삼해 자주 천안에 간다고 했다. 동생을 보면서 그리고 행복해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녀도 빨리 아이를 갖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단다.


지상에서만의 특권

그 좋은 천국에서도 맛볼 수 없는
오직 이 세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단 하나의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랑이다.


사랑의 표현

화중왕(花中王) 장미도
향기를 동반하듯이
아름다운 사랑은
늘 진실한 표현을 필요로 한다

내가 가슴을 활짝 열어 보였을 때
사랑은 갑절로 커져
내게 다시 돌아왔다
겨울아이의 눈덩이처럼


사랑의 샘

퍼내면 퍼낼수록
생명수로 가득하지만
가두면 가둘수록 냄새나는 사해(死海)
나누면 나눌수록 배가 되는 기쁨을
사랑의 화신(化身) 외에
그 누가 알랴


불 면

전에는 외로움에 잠 못 이루고
지금은 보고픔에 잠 못 이루고

내일은 또 무슨 일로 잠 못 이룰까?


사랑연습 6

순풍에 돛단 것처럼
너와 나의 만남이 잘 진행되도록
한 마리 한 마리
정안수 떠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곱게 정성들여
수를 놓듯이 종이학을 빚는다

정말 천 마리를 접으면
사랑이 이루어질까?


사랑연습 7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소월의 진달래꽃은 현재형이 아닌 미래형이다

너를 만나면 마냥 부풀어 오르는 애드벌룬처럼
한없이 기쁘고 즐겁다
그러나 한편 이 사랑이 깨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먹구름 낀 밤하늘처럼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 같은
마음구석

사람은 왜 사랑의 절정에 서면
이별을 생각하는 것일까?



이즈음 나의 <사랑일기>에는 그녀를 노래하는 시와 낙서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 그때는 그녀에게 편지를 많이 썼다. 편지뿐만 아니라 거의 매일 아침 운동 삼아 그녀의 하숙집까지 뛰어가 자작시 또는 좋은 글귀나 명언 등을 그녀의 창틈에 꽂아놓고 돌아오곤 했다.

주말이면 우리는 시내 중심가로 나가 주로 영화와 연극을 감상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분위기와 풍경이 좋은 찻집에서 커피도 마시고 먹자골목을 돌아다니며 김밥, 만두, 떡볶이, 순대 등을 사먹었다. 그런데 내가 그녀를 보고 하나 놀란 사실은 그녀에게 의외로 공주처럼 까다로운 데가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차를 마시는 장소를 고를 때 그녀의 귀티는 극에 달했다. 정말 차 한 잔을 마시는 데 분위기를 여간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 집은 조명이 어두워서 싫고, 이 집은 음악이 마음에 안 들고, 이 집은 인테리어가 너무 천박하고, 이 집은 너무 인공적인 냄새가 나고, 이 집은 지하라서 칙칙하고, 이 집은 탁자 배치가 틀렸고‥‥‥.'

보통 여섯, 일곱 집은 돌아다니고 나서 '이 집은 그런 대로 마음에 드네' 하면서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제가 너무 까다롭죠?"

"좀 그러네요. 남자들은 보통 아무 데나 들어가서 마시는데 여자들은 약간 다른 가보죠?"

"모든 여자들이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좀 특별한 편이겠죠."

"그러는 이유라도 있나요?"

"글쎄요, 뭐랄까? 같은 영화라도 TV로 보면 재미가 덜하잖아요. 대형극장에서 보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지. 똑같은 원리예요. 기왕이면 분위기 좋고 전망도 좋은 곳에서 마시면 훨씬 차 맛이 좋잖아요. 그리고 자장면은 배고플 때 먹는 음식 이지만 커피는 기호식품이잖아요. 솔직히 이 커피 원가가 얼마 되겠어요. 다 시간과 공간 값이지. 그럼 같은 돈 내고 마시는 건데 이왕이면 그 값어치를 하는 곳 을 찾아야죠."

그녀답지 않게 긴 사설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그녀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그녀는 단순히 겉멋만 부리는 허영형 공주가 아니라 실속파 공주였던 셈이다.


* 18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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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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