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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리가 해풍에 잘 마르고 있다. 속초항에서.
양미리가 해풍에 잘 마르고 있다. 속초항에서. ⓒ 김규환
1999년 12월 성산동 아내 자취방에서 시작된 신혼생활을 부랴부랴 정리했다. 이듬해 4월 초 혼례식을 우리들만의 형식과 내용으로 치르고 약 8개월만에 이사를 감행한 것이다.

아내는 새 신랑을 두고 큰 언니 집을 제 집 드나들 듯했다. 결혼 전 아내는 언니 집에 얹혀 살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평소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큰 언니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가져다 먹는 일이 잦았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이거 이러다 평생 처가살이 면치 못하겠다는 생각과 나를 뭘로 보냐며 기분이 상했다. 언짢았다. 안 되겠다 싶었다. 독립을 선언하고 홍은동으로 옮겼다. 둘 다 한 번에 지하철로 출퇴근이 가능한 곳이고 아내가 친정어머니를 대신한 큰 언니네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쉽게 결정을 보았다.

녹번동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에 자리 잡은 우리들만의 공간은 지은 지 40년이 넘은 오래된 집이었다. 도로에서 50여 미터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는데도 방음시설이 잘 되지 않아 문을 꼭꼭 걸어 잠가도 씽씽 달리는 차 소리가 낱낱이 들리도록 시끄러웠다.

먼지는 얼마나 많던지 하루라도 방을 닦지 않으면 시커멓게 변했다. 과장 하나 하지 않고 먼지 소굴이었다. 그 뿐이 아니다. 어찌나 집이 추웠던지 옛 시골집 외풍에 비견할 수 없이 바람이 솔솔 들어와 이불을 둘러쓰듯 덮어야 잠이 왔다. 발과 귀가 시려울 지경이었다.

신혼생활에 같이 돈을 버는 즐거움에 하루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늦장가를 든 나도 남들이 그러듯 아내 손을 잡고 아침 출근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보글보글 맛난 찌개를 끓여 반주로 소주 한 잔 하며 신혼살림을 즐겼다.

34살에야 장가를 가선지 매사에 힘이 났다.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5개월여 아이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다가 쌈박한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로 아내 배가 서서히 불러오는 것 아닌가. 설렜다. 곧 아이 아빠가 된다는 생각에 착한 남편이 되려고 새롭게 마음을 먹었다. 산달이 다가와도 아내는 하루도 빼 먹지 않고 직장을 잘도 다녔다. 입덧 한 번 하지 않고 아이가 나올 날만을 기다렸다.

치우는 건 내가 치울테니 함박눈 한번 쏟아졌으면....
치우는 건 내가 치울테니 함박눈 한번 쏟아졌으면.... ⓒ 김규환
그 해는 무척 추웠다. 눈도 근래 보기 드물게 많이 퍼부었다. 평소 야근을 밥 먹듯 했던 터라 일찍 돌아와 쉬고 싶었다. 차는 거북이 걸음이었고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12월 마지막 주말, 아내보다 일찍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있으려니 뽀송뽀송한 함박눈이 도로와 인도를 가득 메우고 비켜주질 않는다. 눈이 키 높이 구두를 신었는데도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가까스로 가파른 길을 올라 집에 있으려니 아내가 곧 돌아올 시간이 임박한다.

밥을 해놓을까, 집안 청소를 할까 고민하던 차 오르막길에 눈이 수북이 쌓인다. '어? 이젠 녹지도 않네. 저거 꽁꽁 얼면 출산일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아내가 오르내리기 힘들 건데….' 빵 모자를 둘러쓰고 옥상 곳곳을 뒤졌다. 빗자루로 쓸만한 게 없는가 샅샅이 찾아도 아무것도 없었다.

운동화로 갈아 신고 철물점에 갔다. 플라스틱 빗자루를 하나 사서 도로에 가까운 쪽부터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금세 내 온몸은 땀이 뻘뻘 나도록 젖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눈에 두꺼운 외투도 흥건했다. 차츰 날이 추워지더니 녹을 성 싶지 않도록 눈은 차곡차곡 더 쌓이기만 한다.

이제 도로변만 치웠을 뿐이다. 좀 더 기다렸다가 눈사람이나 만들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쉬 뭉쳐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여 그냥 쓸어 나가기로 했다. 앞으로 쓸어야 할 거리는 총 50미터가 넘는다. 양 옆으로 밀쳐서 우선 사람이 다닐 자리는 확보하고 나중에 당그래나 삼태기를 빌려 나르기로 했다.

“쓱쓱쓱”

목이 말라 우유를 하나 사서 먹었다. 차차 지쳐 가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수고하십니다"라고 할 뿐 집으로 들어간 이후로 빗자루를 들고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그게 힘이었던가. 1시간 남짓 중노동을 한 끝에 오후 세시 반을 넘겨 가파른 오르막길 30여 미터를 다 쓸었다.

눈은 얼어붙기 전에 치워야 좋습니다. 내 집 앞 내 골목은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치우면 세상이 더 밝아질 겁니다.
눈은 얼어붙기 전에 치워야 좋습니다. 내 집 앞 내 골목은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치우면 세상이 더 밝아질 겁니다. ⓒ 김규환
아직 네 집만 다니는 우리 골목길 20여 미터가 기다리고 있다. 쉬기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 다시 빗자루를 잡았다. 안쪽은 지붕에 가려 조금 덜 쌓였다. 그때 쉰 중반 쯤 된 아저씨가 골목으로 들어오시더니,

“젊은이 같은 사람 처음 보오. 집 앞에만 쓸지 힘들지 않아요?”
“아, 아닙니다. 어렸을 때 눈 치우던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요 뭘.”
“그래도 저 앞 도로에서 여기까지 눈을 다 치우려면 반 시간은 걸렸겠구만….”
“운동을 평소에 하지 않았더니 이제 어깨가 조금 결릴 뿐입니다.”
“고향이 어디요?”
“아 예. 남쪽입니다.
“나는 순창인디.”
“예 저는 전남 화순입니다. 이사 온 지 석 달 밖에 안 되어서 인사 못 드렸습니다.”
“아니요. 젊은이 참 고맙소.”
“예,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잠시 뒤였다. 5m쯤 남아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옆집 아저씨가 빗자루와 쇠로된 쓰레받이를 들고 함께 하시겠다고 나온다.

“다 했는데요.”
“그래도 고마워서 혼자 집에 있기 뭐합디다.”

새벽같이 눈 치우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새벽같이 눈 치우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 김규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말끔히 정리하고 나서 들어가려 했다.

“자, 우리 집으로 갑시다.”
“아닙니다. 곧 아내가 올 시간이거든요.”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가서 요기나 하고 가라니까는….”
“제 아내가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아 미끄러질까봐 쓸었던 것뿐입니다.”
“아니요. 내 금방 소주 한 병 사올 테니까 집으로 오시오. 여기요.”

대문을 가리키며 들어오라고 성화다. 붙임성이 좋아 낯을 가리는 일이 없는 나지만 사실 나와 아내만을 위해 눈을 쓸었을 뿐인데 이걸로 남의 신세를 진다는 게 꺼림직 해서 한사코 사양한 속내를 아시려나.

더구나 내 윗옷은 젖어 철푸덕거리고 아랫도리는 꽁꽁 얼어붙어 저벅거렸고 양말엔 물이 차 있었다. 옷을 털고 있는데 아저씨가 오셨다.

“저, 그만 들어가 보렵니다.”
“아따 젊은이 왜 그요? 어서 갑시다.”

겸양도 두 번이면 됐다 싶었다. 무례를 무릅쓰고 옆집으로 들어갔다. 땀이 식자 썰렁했다. 아주머니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꺼내 가스를 끼운다. 무슨 좋은 안주가 있기에 저리 거창한 상을 차리나 싶었다. 혹시 삼겹살이라도 나오려나.

“애 아부지 가스 좀 켜주세요.”
“알았어. 당신은 가서 양미리 꺼내오고 양념 좀 준비해요.”

잠시 기다리자 아주머니가 잘 말라 길쭉하며 등 쪽은 갈색이고 배는 은백색 생선 두 두름을 꺼내 오신다.

“요놈이 양미린디 저번에 속초에서 사온 것이요.”
“예? 무엇이라구요?”
“양미리라고 합디다. 자 묵어봅시다.”
“저는 처음입니다. 맛있게 생겼는데요.”
“기름장에다 찍어 드시오. 자자 소주도 한잔 받고.”

통째로 구워 익으면 가위로 잘라 다시 더 굽는다. 한 점 들어 소금에 찍어 꼭꼭 씹어봤다. 비린내도 없고 꼬들꼬들하고 기름기가 철철 넘치며 부드럽게 넘어간다. 과메기 맛과는 사뭇 다르다.

“참 맛있네요. 한 잔 받으시고요. 저 잠깐만 집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왜요 옷 갈아입게요? 이왕 버린 몸 그냥 있지 뭐하게요.”
“아내가 돌아왔을 겁니다. 혼자 먹기 아쉬워서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얼른 오세요.”
“예.”

과메기가 맛있는 철입니다.
과메기가 맛있는 철입니다. ⓒ 김규환
마침 아내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가방을 든 채 가자고 했다. 주거니 받거니 소주병이 두병 세병 쌓이더니 여섯 병까지 비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양미리는 두 두름째 묶음에서 빠져나와 네모난 프라이팬 위에 올려졌다.

“새댁, 날은 잡혔수?”
“예. 2주 정도 남았답니다. 1월 중순이래요.”
“그래요? 아들일까 딸일까?”
“그냥 낳기로 했어요. 딸이면 좋겠는데 모르겠습니다.”
“그럼 내가 애도 몇 번 받아봤는데 한 번 봐볼까….”
“새댁 내 방으로 좀 갑시다. 한 번 봐야겠어. 100명 넘게 내가 틀린 적이 없거든요.”

이끌려 들어간 아내는 기어이 둥그런 배를 보여주고 왔다.

“필시 아들이구만.”
“그래요? 어떻게 아십니까?”
“딱 본께 아들이여. 배가 둥글고 납작하잖아요. 툭 튀어나오면 딸이여.”
“여보 그만 하고 술이나 한 잔 들어요. 양미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니까.”
“알았어요.”

차차 어둑어둑해질 무렵 이웃집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한두 점 맛본다는 것이 거덜을 냈으니 욕이나 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배불리 먹고 거나하게 취해 돌아오니 밥 생각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화장실을 쥐가 쥐구멍 드나들 듯했다. 기름진 생선을 한꺼번에 혼자서 열댓 마리를 먹어치웠으니 설사를 한 것이다.

딸 해강이는 1월 14일 아빠인 나를 쏙 빼닮아 우리와 만났다. 처음 본 순간 어찌나 이목구비가 나를 쏙 빼 닮았던지 없는 실력으로 시(詩) 한 수를 짓기도 했다. 그 동네에서 더 살았더라면 술판이 이어졌을 테지만 아이가 태어난지라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5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추억이 되었다. 두 분을 만나려면 눈 한 번 펑펑 쏟아져야 하는데 영 눈 소식이 없어 안타깝다. 소주 두어 병과 양미리 서너 두름 들고 찾아가면 무척 반길 텐데. 시간은 흘러 이젠 아이들을 위해 눈을 쓸어야겠다.

2001년 1월 14일 지금까지 겪은 추위 중 제일 매서웠던 날 태어난 딸 해강이. 곧 만 5세가 된다.
2001년 1월 14일 지금까지 겪은 추위 중 제일 매서웠던 날 태어난 딸 해강이. 곧 만 5세가 된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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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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