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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상을 한 인물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닭죽을 먹었던 일행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나직히 탄식을 터뜨리며 촌노와 그 며느리로 보이는 여인 쪽으로 다가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뒤 따라 들어 온 사내들은 그와 일행인 듯 아무 말 없이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헌데 그들이 앉자마자 구석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에잉, 먹어 보란 말도 않고 지들끼리 처먹지를 않나... 들어 왔으면 문이라도 제대로 닫아야지 자는 노인네를 얼어 죽이려 하지를 않나... 요새 젊은 것들은 예의가 없어.”

한쪽 구석에서 나직하게 코를 골며 자던 거지 행색의 노인이 뇌까린 말이었으나 이 안에 있는 인물들치고 그 말을 듣지 못한 인물들은 없었다.

“아무리 거지가 춥고 배고픈 직업이라 하지만 더 배고프게... 더 춥게는 하지 말아야 예의 아닌가?”

그 투덜거림은 이 안의 모든 사람을 싸잡아 욕하는 소리였다. 그 말에 모두 얼굴을 찌푸렸으나 실상이 그런지라 일단은 대꾸를 하지 않고 참는 듯했다. 하기야 이런 곳에서 거지 노인과 말다툼해서 이득 될 것은 전혀 없었다. 헌데 거지 노인은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자 기세가 올랐는지 더욱 큰소리로 떠들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남은 음식을 권하는 놈도 없고, 아직까지 문도 닫지 않고 있구먼... 고이얀 것들이야... 행색은 멀쩡한 것들이...”

그 말에 낭아봉을 메고 있는 두 사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똑같아서 마치 한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망령난 늙은이가...?”
“이 망령난 늙은이가...?”

그들의 목소리는 쇠를 긁는 듯한 탁한 목소리였지만 하는 말이나 목소리가 신기하게도 똑같았다. 이 세상에 이렇게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이들 말고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막 걸음을 떼어 거지 노인에게 가려할 때 그들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것은 열려진 문으로 들어서는 청년이었다.

“소생이 닫아드리면 되겠습니까?”

들어온 청년은 예의 바르게 문을 살며시 닫으며 거지 노인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인물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곧 바로 제단(祭壇)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흑의인에게 걸어갔다. 복면이 흘러내려 반쯤 드러난 얼굴은 거무튀튀했으나 핏기가 한점도 없는 것 같았다.

“쯧... 애석하군... 정말 애석해...”

청년은 무엇이 안타까운지 혀를 차며 흑의인을 바라보았다. 흑의인의 가슴에 기복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는 이미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몸 속의 피를 절반이나 쏟아내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이 그리 애석하단 말이오? 귀하는 죽은 그 사람과 관계가 있소?”

청년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던 남씨(南氏)라는 청년이 슬며시 미소를 띄우며 물었다.

“관계가 있다면 있을 것이고, 없다면 없다고 할 수도 있소.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오. 이 자가 죽음으로서 인해 애석한 일이 두가지가 있소.”

“두가지라니... 그것이 무엇이오?”

재차 묻자 청년은 잠시 흑의인을 바라보다가 흑의인의 허리에 걸려 있는 검을 검집째 끌러내어 자신의 검인양 집어 들었다.

“첫번째는 이렇게 좋은 검이 주인을 잃었으니 애석하고..... 두번째는 죽은 사람은 궁금증을 풀어줄 수 없으니 그것이 애석하오.”

“그 검은 백련정강(百鍊精剛)에 오금(烏金)을 입혀 만든 것이니 당연히 좋은 검이오. 헌데 귀하는 그 검을 차지할 모양이구려.”

“그렇소. 이 자는 내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 했으니 나 또한 이 자가 가진 것을 빼앗지 말라는 법이 없잖소? 더구나 그는 죽었으니 내가 가져도 무방할 것이오.”

그의 말에 남씨 청년은 기이하게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그에게는 무엇인지 기분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귀하는 그 사람이 죽어 애석할 일이 두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애석할 필요가 없겠구려.”
“그건 또 왜 그렇소?”

“검이 새로운 주인을 만났으니 애석할 일이 없고, 궁금한 일은 본 공자가 풀어줄 수 있으니 또한 애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귀하가 내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단 말이오?”
“아마 그럴 것이오. 헌데 저 사람이 귀하에게 빼앗으려 한 물건은 혹시 손바닥만한 철패가 아니오?”

그 말에 청년은 크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그에게 다가갔다.

“확실히 귀하는 내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구려. 어쩌면 우리는 말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소.”
“물론이오. 본 공자도 당신을 만나는 순간 운이 좋다고 생각했소.”

남씨 청년은 뭐가 그리 좋은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마치 청년을 만난 것이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솥에 아직 남아 있는 죽을 그릇에 덜면서 말을 이었다.

“귀하는 본 공자가 심혈을 기울여 끓인 닭죽을 맛 보고 싶지 않소?”

그는 말과 함께 죽을 담은 그릇을 수저와 함께 청년에게 건넸다. 그러자 청년은 주저없이 그 그릇을 받아 들고는 자리에 앉았다.

“저녁을 걸렀는데 귀하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고 계시는구려. 그렇지 않아도 부탁을 하려던 참이었소.”

말과 함께 수저를 들어 김과 함께 올라오는 향기를 맡으며 죽을 먹으려 할 때 귀퉁이에서 잔기침 소리가 들렸다.

“흠..흠..!”

코를 킁킁거리며 잔기침을 한 인물은 엉거주춤 상체를 일으킨 거지 노인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부스스한 얼굴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코였다. 주독이 들었는지 코가 너무나 빨개 잘 익은 열매와도 같아서 손가락으로 톡 튕기면 떨어질 것 같았다.

그 노인의 시선은 청년이 들고 있는 닭죽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너무나 애절하여 누구라도 그 닭죽을 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였다. 청년은 들었던 수저를 다시 죽 그릇에 놓으면서 그것을 거지 노인에게 내밀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노인장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구려. 노인장께서는 이것을 드시겠소?”

그 말에 거지 노인은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에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히죽 웃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빠르게 다가오더니 청년의 손에서 그릇을 낚아챘다. 혹시 주려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후룩.... 이 안에 인간은 많아도... 후륵... 후르륵... 사람다운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군. 노인네가 춥다 하니 문을 닫아 주고, 자신이 먹을 음식까지 양보해 주니 이 얼마나 착한 젊은이인가? 후륵... 자네는 삼대에 걸쳐 홍복(洪福)을 받을 것이야...”

거지 노인은 몇 마디 말을 하면서 그 뜨거운 죽을 어느새 다 비우고 있었다. 수저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바닥을 드러낸 그릇에 붙어 있는 죽까지 혀로 핥고 있었다. 모자라다는 것을 여실히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귀하는 어찌하여 본 공자의 허락도 없이 저 노인네에게 죽을 준 것이오?”

남씨 청년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나무랐다. 그러자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귀하가 준 것은 이미 내 것이오. 내 것을 저 노인에게 주는데 귀하의 허락을 다시 받아야 한단 말이오?”

이치에는 맞는 것 같지만 사실 억지라 할 수 있었다. 음식을 대접하는 성의를 보아 청년이 먹었어야 당연한 것이었다. 그 말에 남씨 청년은 불쾌한 기색을 지우며 미소를 띠웠다.

“좋소. 귀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본 공자는 다시 귀하에게 한그릇을 더 드리려 하오. 하지만 그것을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줄 생각이 있다면 주지 않을 것이오.”

“나는 반드시 그것을 먹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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