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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받는 아버지를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대장 외벽에 고름이 차오른 '게실염'이란 병으로 수술을 받은 지 2주가 지나고 나서 대장 내시경 검사와 조직 검사를 했는데 대장암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담당 의사의 입에서 대장암이란 말을 듣고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기까지 의사가 하는 얘기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청맹과니처럼 서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는 대상을 향해 원망을 쏟아 붓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척수종양으로 수술 받고 치료 중인 아들 준수도 있는데 아버지마저 암이라니요.

게실염 수술 후 식사까지 하셨던 아버지는 2차 수술도 이전처럼 간단한 수술이라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대장 끝부분에 있는 악성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대장의 절반과 소장의 일부를 잘라내야 하는 엄청난 수술이란 걸 모르시는 아버지는 편안하게 웃으셨지요. 하지만 눈치를 채신 어머니는 화장실 다녀오실 때마다 눈 주위가 붉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9일 아버지의 수술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수술실로 들어가신 후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수술중'이란 붉은 글씨가 '회복중'이란 녹색 글씨로 바뀔 때가지의 그 초조함과 긴장감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호자 대기실에서 느꼈습니다. 먼저 수술실에 들어간 환자가 회복 상태에 들어가면 여전히 수술 중인 다른 가족들의 불안과 초조는 더욱 심해집니다. 회복중이라는 녹색 글씨로 바뀌는 순간, 기다리던 그 환자의 가족들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돕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는 다른 가족들은 걱정이 더해갑니다.

아버지의 수술은 일곱시간이 걸렸습니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보호자를 찾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달려갔습니다. 수술을 담당한 의사 선생님이 수술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수술은 잘 됐다고 했습니다. 수술 후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항암 치료 과정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잠시 뒤 아버지의 이름 뒤에도 '회복중'이란 녹색 글씨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50여분 뒤에 아버지가 수술실 침대에 실려 나왔습니다. 동생이 먼저 달려가 수술실 침대에서 일반 침대로 아버지를 옮기는 걸 도와 주었습니다.

침대에 실려 일반 병실로 향하는 동안 아버지는 고통스런 신음을 연이어 토해냈습니다. 예순일곱의 아버지가 고통에 겨워 매달리는 대상은 아버지의 어머니, 즉 돌아가신 할머니였습니다.

"아이구, 어머니 나 죽네."
"명치 끝에서 불이 나네, 아이구."

하지만 침대 곁에 당신의 어머니가 오실 수는 없습니다. 굽은 허리로 걱정하며 내려다보는 당신의 아내와 아들 둘이 전부입니다. 수술 후 겪는 아버지의 고통을 아무도 대신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침대 주변을 서성이는 게 전부였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를 부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아버지의 비명이 들릴 때마다 등줄기가 비수에 찔린 것처럼 저려왔습니다.

진통제의 힘에 의해 아버지의 몸부림과 비명의 횟수가 점차 줄어들고 이따금 코를 골며 주무시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습니다. 밤새 자다 깨다를 되풀이하며 아버지는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때에는 곁에 서 있는 내게 손사래를 치며 한마디씩 하셨습니다.

"그만 자."
"피곤해서 어째?"

아버지는 잠들지 못하고 있는 아들을 걱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부여잡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여전히 제가 기댈 언덕입니다. 이대로 주저앉으시면 안됩니다. 어서 일어나셔서 제게 힘을 주세요. 아버지."

그렇게 또 하나의 병실에서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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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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