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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이 8일 오후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이 8일 오후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04년 12월 국회로 돌아와 보자. 정기국회 마지막 이틀을 남긴 국회는 색깔공방으로 얼룩졌다. 덕분에 기자들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기자실은 양당 대변인과 율사 출신 의원들의 브리핑과 기자회견으로 빌 새가 없었다. 16대 국회에서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유시민 의원을 겨냥, '북으로부터 이회창 관련 자료를 들여왔다'는 주장을 폈을 때도 그랬으리라.

이번엔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이 그 당사자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집단의 육성으로 집중 포화되었다는 것.

8일 열린 본회의에서 공안검사 출신의 주성영 의원은 "이철우 의원이 92년 북한 노동당에 현지 입당해 당원부호 '대둔산 820호'를 부여받고 지금까지 암약하고 있다"고 공세의 포문을 열었고, '민변' 출신인 박승환 의원은 "오늘 신문보도를 통해 이 의원이 간첩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 의원을 '간첩'으로 규정했다. 여기에 판사 출신의 김기현 의원은 "북한노동당에서 암약한 사람이 대한민국 국회에 있다"고 덧칠했다.

이번 사건을 제기한 한나라당 3인방 주성영·박승환·김기현 의원의 말을 '조합'해 보면 "대한민국 국회에는 이철우라는 국회의원 간첩이 암약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주장은 과거완료형도 아니고 현재진행형이다.

8일이 설전이었다면 9일은 법리전이었다. 이철우 의원의 소위 '조선노동당 가입전력 의혹'에 관한 재판기록이 공개되면서 공방은 달아올랐다. 게다가 당사자인 이철우 의원이 기자회견장에 등장했을 때 열기는 피크에 달했다.

이 의원은 재판부 기록을 낱낱이 반박하지 못했다. 기자들의 관심사는 1심 판결문에 적시된 김일성 초상화와 조선노동당기를 바라보며 입당식을 거행한 게 맞냐는 것 등이었지만 "만들어 낸 것"이라는 수준의 해명에서 그쳤다. 이 의원은 자신이 4년의 실형을 살게 된 핵심사항인 '민족해방애국전선(이하 민애전)' 가입에 대해서도 "내가 대학졸업 후 활동한 사회운동그룹에 이름을 붙여 조직을 만든 것"이라고 부인했다. 사실 이 사건을 당사자의 진술로 입증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이라는 것이 이 의원의 주장이었다.

"양홍관은 성기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모멸감과 모욕감 고통을 가해 진술을 받아냈다. 총책인 황인오도 간접적으로 고문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전체적으로 의혹사건이고 과거사 진상규명에 포함되어 있다. 전체가 거짓이다. 당시 우리가 20일 동안 모진 고문당하고 잠 안재우고 거꾸로 매달리고 엎드려뻗쳐 하고 손에 껍데기가 까지고 모질게 당했다."

사실 이철우 의원의 결백은 판결문에 대한 반박보다는 '사상전향'쪽에 맞춰져 있었다.

"마르크스 자본론도 읽고, 주체사상도 읽었지만 이제 생명이 다했다는 것을 알고…, 완전히 새로운 가치정립을 하고 지역에서 7년 동안 주민들과 진솔하게 만났고…,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신앙활동을 하고 있고…."

곁에 서 있던 동료 의원도 "하나님을 믿는 안수집사다, 주체사상과 하나님이 어찌 양립되나, 과거를 폐기처분하고 사상적으로 완벽히 정리가 되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하나님까지 동원, 눈물겨운 순간이다.

'하나님'까지 동원해야 하는 현실

국회 본회의에서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의 `북한 조선노동당 입당 의혹`을 제기했던 한나라당 김재경, 주성영, 김기현, 김정훈의원(오른쪽부터)이 9일 저녁 기자회견을 갖고 의혹 제기 배경 등을 설명하며 미소 짓고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의 `북한 조선노동당 입당 의혹`을 제기했던 한나라당 김재경, 주성영, 김기현, 김정훈의원(오른쪽부터)이 9일 저녁 기자회견을 갖고 의혹 제기 배경 등을 설명하며 미소 짓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철우 의원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결백을 이어갈 때, 브리핑룸 뒤켠에서는 주성영·김기헌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원 판결문 복사본을 기자들에게 나눠주며 다음 기자회견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앞에 있는 이철우 의원의 기자회견을 부지런히 타이핑하던 기자들의 관심도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더 쏠려 있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을 둘러싸고 웅성거림이 커졌다.

이 의원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목청은 수세적인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쳤다. 열린우리당 한 당직자의 '좀 조용히 하라'는 주의가 있었지만 끄떡하지 않았다.

브리핑룸이 어수선해지자 이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중이던 유기홍 의원은 아예 "한나라당 의원들이 저기 와 계시지만 언론인 여러분, 주 의원에게 어제한 발언 '간첩으로 지금까지 암약하고 있다'는 점을 반드시 물어봐 달라'라며 호소했다. 이 의원측은 과거에 대한 입증보다는 현재는 '간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힘을 싣는 듯 보였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열린우리당측에서 기자들에게 제공한 자료는 8쪽에 달하는 2심 판결문이 전부였지만 한나라당측에서 제공한 것은 1심 판결문, 대법원 최종판결문, 동아일보에 보도된 당시 사건개요 등 수십 장에 달하는 복사물이었다. 사건 당사자인 이철우 의원보다 먼저 재판기록을 찾아 부지런히 기자들에게 나른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더욱이 열린우리당측은 2심 판결문을 공개하면서도 재판부가 이 의원으로부터 조선노동당기와 김일성 초상화, 김정일 초상화를 몰수했다는 내용이 담긴 2쪽을 누락시킨 채 배포해 의혹을 샀다. 이에 대해 처음엔 "오래 보관하다보니 2쪽 부분만 소실됐다"고 해명했으나 나중엔 "이 의원에게 확인해보니 조선노동당기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대목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그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다시 해명했다.

확실히 법리전에선 한나라당이 공세적이었다. 전여옥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실에 나타나 "이철우 의원 관련 1심, 2심, 대법원 판결문 풀 텍스트가 복사중"이라면서 "가장 중요한 이철우 의원의 노동당 입당 부분이 1심에서 사실로 드러났고 (이 의원이 가입한) 민애전이 조선노동당 하부조직이라는 사실이 판결문에 있다"고 한나라당의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이에 저녁을 먹다가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라는 전여옥 대변인의 주문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왔다는 주성영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간첩 조작사건'은 오늘 아침까지의 상황이고 오늘 오후에 전체 판결문을 구해보니 '간첩사건'임이 분명하다"면서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이 나를) 제명한다고 해서 솔직히 떨었는데 판결문을 보니 안심이 된다"고 말하며 여유를 부렸다.

김수영의 눈물은 현재진행형

이 의원은 1997년 4년형을 다 살고 나와 현재 자신의 지역구인 연천·포천에서 지역운동을 해왔다. 교회 안수집사라고는 하지만 "동네에서 간첩중의 간첩"으로 통해 "주민들에게 해명하고 극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꼬리표는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도 따라다녔지만 유권자들은 '간첩 이철우'를 선택했다.

그런데 다시 재수사를 받고 있다. 그것도 국회에서. 대한민국 실정법에 따라 처분을 받았음에도 정치적 재판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이 재판은 끊임없이 이철우 의원과 그의 가족들은 따라다닐지 모른다. 바로 '정신고문'이다.

김수영이 다시 살아온다 해도 그는 울었을 것이다. '나 빨갱이 아니야'라며 사상의 자유를 저당잡힌 정신고문을 호소했을 것이다. 이명원씨는 '김수영은 왜 우는가'라는 그의 칼럼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삼대에 걸쳐 대물림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시대착오다. ‘명동백작’에서의 김수영의 눈물은 21세기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현재형이다."

한나라당으로부터 `간첩`으로 지목당한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신상발언을 하는 동안 동료의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나라당으로부터 `간첩`으로 지목당한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신상발언을 하는 동안 동료의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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