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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Чучхе
이번 선거전은 뚜껑을 열기 전부터 현 총리인 빅토르 표도로비치 야누코비치 대 전 총리 빅토르 안드례예비치 유셴코간의 박빙의 승부였다.

유셴코(건강에 이상이 없을 때의 모습)
유셴코(건강에 이상이 없을 때의 모습) ⓒ VOA
두 후보의 노선은 극명하게 대립한다. 현 총리 야누코비치는 당연히 현 정권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야당 '우리 우크라이나'를 이끄는 유셴코는 현 정부의 부패와 실정에 신물이 난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기반으로 반(反) 쿠치마 세력을 총결집했다. 쿠치마는 지난 10년간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으로 재직했지만 집권2기에는 실정을 거듭해 민심을 완전히 잃은 상태다.

야누코비치는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러시아어를 공식 언어로 격상시키겠다고 약속하는 등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는 러시아인의 환심을 샀다. 또 현직 총리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대선에 맞춰 노인 연금과 노동자 임금을 전격 인상해서 서민과 노년층의 지지를 유도했다.

야누코비치
야누코비치 ⓒ VOA
반면 유셴코는 부정부패에 곪아 터진 현 정부를 부정하며 광범위한 개혁을 약속했다. 부패 근절을 위한 구체적 안을 제시하고, 투명한 경제 운용을 펼칠 것을 구호로 내걸었다. 참고로 우크라이나 경제는 러시아처럼 올리가르히(신흥 재벌)가 주무르며 마피아식 독점과 부정이 만연한 상태다.

외교 분야에서도 두 후보는 대척점에 서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야누코비치는 러시아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하고 유셴코는 유럽을 바라보고 있다. 유셴코는 우크라이나가 유럽 연합에 가입할 것을 바라고 있으며 이라크에 파병한 1600명의 우크라이나 군도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선거법에 따르면 1차 선거에서 50% 과반수를 넘는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1, 2위를 차지한 두 후보간의 2차 선거로 넘어간다. 1차 선거에서 39.87%를 득표한 유셴코와 39.32%를 얻은 야누코비치가 재격돌한 11월 21일 2차 선거가 무수한 부정으로 얼룩짐에 따라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오렌지 혁명'은 시작됐다.

오렌지 혁명

광장에 운집한 유셴코 지지자들
광장에 운집한 유셴코 지지자들 ⓒ S@nya
11월 21일 2차 선거가 끝난 직후 출구 조사에 따르면 유셴코가 11% 정도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중앙선거위원회가 야누코비치가 유셴코보다 3% 가량 더 득표했다고 발표하자 유셴코 지지자들은 키예프와 서부 지역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20만에서 많게는 50만으로 추산되는 유셴코 지지자들이 키예프의 독립 광장을 17일간 뜨겁게 달구며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이들의 시위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신봉하는 유럽연합과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혼란 와중에 대법원이 혁명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유셴코 진영은 2차 선거 결과 무효 소송을 대법원에 냈다. 그리고 지난 3일 대법원은 2차 선거는 부정 선거로 그 결과는 무효이고 2차 선거가 공정하게 다시 시행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12월 26일까지는 재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승자는 누구인가?

TАК! ЮЩЕНКО! (YES! 유셴코!) 마이단에 선 유셴코. 그 옆은 유셴코 당선시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율리야 티모셴코.
TАК! ЮЩЕНКО! (YES! 유셴코!) 마이단에 선 유셴코. 그 옆은 유셴코 당선시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율리야 티모셴코. ⓒ VOA
그 후, 역사상 유례없는 재선거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헌법을 개정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오는 26일 재선거를 치르는 것에 동의했다. 재선거에 동의한 양측이 합의안을 도출함에 따라 11월 22일부터 우크라이나를 뜨겁게 달군 시위와 혼란은 일단락됐다.

이 합의안은 선거법 개정뿐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대거 의회로 넘기는 헌법 개정도 포함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유셴코의 승리요, 장기적으로는 쿠치마의 승리라 하겠다. 왜냐하면 선거법 개정, 중앙 선거위원회 개편, 검찰 총장 경질 등으로 선거 부정을 막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관철되어 유셴코의 당선이 거의 확실한 상태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대신 의회와 총리의 세력을 강화하는 내용은 현행 대통령 중심제를 의회 중심제로 바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유셴코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해도, 우리우크라이나당이 의회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내각 구성이나 정국을 운용하는 데 난관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도리어 의회에 추종 세력을 확고히 구축한 쿠치마가 앞으로도 의회를 조종하며 권력을 계속 휘두를 가능성이 크다.

유셴코 지지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리본
유셴코 지지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리본
따라서 현 정국에서 가장 큰 승자는 묘하게도 빅토르 안드례예비치도, 빅토르 표도로비치도 아닌 바로 두 번의 임기를 꽉 채우고 물러나는 쿠치마 대통령이다. 이는 쿠치마가 얼마나 민심에서 이반한 대통령이었는지 생각한다면 아이러니컬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오렌지 시민 부대가 반대한 것은 바로 쿠치마 정부였다. 그런데 오렌지 혁명의 결과, 그 정부의 심장 쿠치마가 계속 권력을 주무를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은 두 빅토르의 혈전이지만 결국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고, 가장 큰 이득은 노회한 정치인 쿠치마가 챙겼다. 더구나 두 빅토르 모두 쿠치마 밑에서 총리를 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진 배경을 상기할 때 곰과 주인의 비유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권력 다툼이라고 냉소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오렌지 혁명에 있다. 오렌지 혁명의 주인은 어느 개별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이 아닌, 바로 개혁을 열망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이다. 그들은 앞으로 펼쳐질 정치권의 행보에 실망하게 될지 모른다. 안타깝지만 아마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구 성향이 팽배한 대법원에게서 선거 무효 판결을 받아낸 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성공했으며, 이 성공의 기억은 앞으로도 우크라이나 시민 역량이 자라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오렌지 혁명의 중심 마이단
오렌지 혁명의 중심 마이단 ⓒ V. Iv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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