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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깊은 줄 모르고 서캐, 이, 벼룩 잡는 그 시절 아십니까?
밤 깊은 줄 모르고 서캐, 이, 벼룩 잡는 그 시절 아십니까? ⓒ 김규환

"아직도 내복을 입어요?" "예, 저는 입습니다."

나는 연탄이나 연탄가스에 힘겨웠던 시절보다 내복 속옷을 생각하면 더 서럽다. 서럽기만 하겠는가? 즐겁기도 하다. 오순도순 맛있는 걸 먹던 날보다 배고파서 힘들었던 그 때가 더 행복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순전히 고등학교 때 자취할 때 잠시와 대학 가서 한여름에 연탄가스를 조금 먹어봤으니 오죽하겠는가. 연탄 땔 아궁이를 만들지 않았던 우리 동네로서는 응당 그럴 법한 이야기 아닌가.

호롱. 숙제 좀 한답시고 앉아있다보면 코가 까맣게 되고 다음날 세수할 때면 시커먼 덩어리가 나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호롱. 숙제 좀 한답시고 앉아있다보면 코가 까맣게 되고 다음날 세수할 때면 시커먼 덩어리가 나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 김규환
며칠 전 내복을 꺼내 입었다. 얼마 전 제삿날이었던 어머니가 그립고 그 시절 내복과 이가 생각이 났다. 사람들은 내가 내복을 입는다고 하니 흉을 본다. 놀린다. 젊은 사람이 내복을 입는다고 핀잔을 주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여성이 그러는데 당당하게 말했다.

"내복 입는 게 뭐 어때서요? 오히려 요즘 같은 때 더 입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그걸로 둘 간의 대화는 끝이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더 이상 끼어들지 않고 마무리하였다.

뭐가 대순가. 유난히 겨울나기를 힘들어하는 내 체질과 몸 상태인 것을…. 누가 뭐라 해도 난 겨울엔 내복을 입겠다. 3도는 절약한다고 하니 달달 떨며 힘겨워하는 것보다 다소 볼품없지만 입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절일수록 나처럼 아래만이라도 입으면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요즘엔 예전 그 잿빛 내복도 사라지고 착 달라붙어 볼품 있는 내복도 많이 나와 있질 않은가. 나는 지금도 내복을 입고 있다. 며칠만 적응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부모님께 내복 한 벌 사드리지 못한 놈과 어머니 빨랫감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께 내복 한 벌 사드리지 못한 못된 놈이다. 취직을 하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하는 게 우리네 풍습이었는데 나는 변변한 취직 한 번 못했다. 뿐인가. 어머니는 14살 때인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으니 따뜻한 속옷을 선물하기란 애당초 글렀다.

지금도 시골은 밤 8시가 되면 암흑천지입니다. 벽시계 자명종 소리 듣고도 그 땐 잠만 잘 왔지요.
지금도 시골은 밤 8시가 되면 암흑천지입니다. 벽시계 자명종 소리 듣고도 그 땐 잠만 잘 왔지요. ⓒ 김규환
내복에 관해 참 할 말이 많은 나지만 어머니께 내가 드린 거라곤 거무튀튀한 옷을 벗어 마룻바닥에 던져 놓는 일이었다. 태우거나 찢거나 이가 드글드글 해도 아무 말 없이 사랑하는 자식들 내복을 물을 길러다가 푹푹 삶는 일을 2주에 한번씩은 했으니 그 빨래만도 겨울철에는 겁도 안 났던 분량이었을 게다.

4남 2녀가 벗어 놓은 옷에 아버지 옷까지 더하면 요즘 우리라면 무슨 소리 나올 법 한데도 군말 한번 않고 하셨다. 빨래터까지 김 풀풀 나는 그 무거운 걸 머리에 이는 걸로 모자라 미끄러운 고샅길을 양동이 왼손에 들고 냇가로 나갔다.

장갑 하나 없이 손빨래를 한다. 방망이를 두들겨 양잿물 얼굴에 톡톡 튀는 걸 감수하며 손이 곱아 가는지 떨어져 나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끙끙 앓듯 빨래를 해놓고는 두세 번 왔다 갔다 하시던 어머니는 빨랫줄에 널만한 곳이 부족한 게 더 걱정이었다.

밤마다 나는 어머니를 성가시게 했다.

"엄마, 자꾸 근질거린당께."
"글면 이가 있을랑가 모릉께 한번 벗어봐라."

내복을 꺼내 입은 지 열흘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윗도리와 아랫도리를 가리지 않고 꼼지락꼼지락 기어간다. 톡 한번 쏘고 지나가는 게 이(?)뿐만 아니라 벼룩까지 있는 모양이다. 성가시게 할 뿐 아니라 내가 먹은 걸 죄다 뽑아가니 살이 찔 일이 없고 삐룩삐룩 말라 비틀어져 가는 몰골 자체였다.

남자들 내복은 이 색깔에 가까웠는데 더 잿빛이었죠.
남자들 내복은 이 색깔에 가까웠는데 더 잿빛이었죠. ⓒ 김규환
흡혈귀, 이와 벼룩이 준동하던 시절 아이들이 호롱불 밝힌 까닭

스멀스멀 기어가는 이와 타다닥 튀는 벼룩은 흡혈귀다. 보리쌀만한 이놈들이 옷과 살갗 사이에 약간 틈만 있어도 비집고 들어와서는 살을 물어뜯으니 곳곳마다 내 몸에는 빨간 피가 엉겨 꺼멓게 굳어 있었다. 목욕이랬자 섣달 그믐날 물 한번 데워 플라스틱 통에서 한번 했으니 오죽하겠는가.

겉옷을 벗자 "싸르르~" "짜르르~" 정전기가 튄다. 한 꺼풀 두 꺼풀 홀라당 벗었다. 외풍이 심했다.

"으휴, 추워!"

동생 포대기를 둘러썼다. 그도 모자라 이불까지 두르고 일단 호롱불 앞에 바짝 다가가 보니 속옷 러닝셔츠 바느질 땀 결을 따라 새하얗게 낀 서캐가 덩캐덩캐 붙어 있다. 어찌나 단단히 엉겨 있는지 손으로 떼려고 해봤자 허사다. '써까리'라 했던 서캐는 움직이지 못하므로 잠시 젖혀두고 맨 먼저 후두둑 방 끝까지 튀어가는 까만 벼룩을 누르는 게 급선무다.

"어? 저기!"
"어디?"
"폴새 쩔로 튀어불었구만요."
"또 쩌기!"
"눌렀다."
"쩌기!"

손바닥, 방 빗자루, 걸레 등 닥치는 대로 누른다. 그래놓고 나서 손톱으로 쿡 눌러서 죽여야 한다. 방심했다간 또 다시 위로, 저 멀리 날아가는 벼룩은 참말로 재빠르다. 두 번 나눠서 눌러주니 내 까만 피가 톡 하고 방바닥에 흘렀다.

잠시 동안 일어난 사건치고 대여섯 마리 중 두 마리를 놓치고 네 마리를 잡았으니 괜찮은 성과였지만 그 두 놈이 나대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이윽고 자잘한 발이 노처럼 나 있는 이라는 놈 차례다. 바늘땀 접힌 부분에 숨어 있던 이는 보통 것은 보리쌀만 했지만 큰놈은 탱탱 불은 보리밥만 했다. 젖빛인 이는 내장이 투명하다. 어찌나 빨아댔는지 속은 까맣게 피로 가득 차 있다.

"여깄다."

헌 공책 한 장을 뜯어 그 위에 "한나, 둘, 셋, 네엣, 다섯…" 세 가며 손톱으로 쿡 누른다.

"톡!"
"툭!"

겨울철 빨래 널기는 간단치 않습니다. 처음엔 축축 처지다가 얼마간 있으면 꽁꽁 얼어 동태같이 되니 마르지도 않아 방바닥에 깔아놓기 일쑤였잖아요.
겨울철 빨래 널기는 간단치 않습니다. 처음엔 축축 처지다가 얼마간 있으면 꽁꽁 얼어 동태같이 되니 마르지도 않아 방바닥에 깔아놓기 일쑤였잖아요. ⓒ 김규환

까만 피 흥건한 공책 한 장이 아까웠지만 한 장 더 뜯어야 할 만큼 많았다

꽤 맑은 소리를 내며 피를 한 바가지씩 터트리는데 '웬수'가 따로 없다. 네모 쳐진 공책에 엄마와 동생, 형과 내가 쿡쿡 눌러주니 금세 빨간 피로 흥건했다. 딱지치기나 밑닦개로 쓸 아까운 공책 한 장을 더 뜯어야 할 판이다.

옆에선 "타닥닥 탁!" 서캐가 끼어 있는 바늘 선을 따라 호롱불에 지지는 중이다. 섬유와 서캐, 이가 타는 방 안에선 야릇한 고기냄새가 났다. 온 가족 이 잡기는 이제 초반일 뿐이다. 내복에도 즐비했으니 웃옷을 마저 끝내고 방구석지로 기어가는 놈들을 빗자루로 쓸어 확인사살을 하고 아랫도리로 넘어가야 한다.

그 시절 남자들이 입던 잿빛 내복은 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남아들 내복은 앞쪽이 움푹 도려내져 있다. 대낮에도 뭐 보여줄 게 있다고 달랑달랑 내놓고 다니게 했던 그 때가 여성이 조선역사에서 가장 힘겨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여자 아이들은 새빨간 내복을 입었다.

혼례 필수품 요강. 나중엔 깨지지 않고 가벼운 쇳덩어리 요강을 해갔습니다.
혼례 필수품 요강. 나중엔 깨지지 않고 가벼운 쇳덩어리 요강을 해갔습니다. ⓒ 김규환

"엄마! 요강 어딨다요?"
"말래에 있지. 칙간에 가서 싸고 오거라."
"추워서 가다가 얼어 죽겄는디요."
"글면 둼(두엄)자리라도 댕겨오덩가."

다섯 살 아래 막내 동생이 생긴 뒤로 집에선 방에 요강을 두지 않았다. 씽씽 찬바람 부는 마루에 두었으니 웬만하면 얼어 있기에 남자들은 윗통을 벗은 채로 망웃자리(두엄자리)나 측간까지 달음질을 해야 했다.

"쉬~ 쏴~"

건넌방 쪽 마루로 달려가 툭 터진 내복에서 내 작은 고추를 꺼내 잡고 마루에서 뚤방(토방)을 거쳐 마당을 향해 힘차게 깔겼다. 덜덜덜 더리덜덜 떨면서 누다보니 뚤방으로 절반, 마루로 서너 방울 떨어졌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손에 '끈적!'하고 달라붙은 걸 보면 산간 오지마을은 벌써 깊은 겨울밤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할머니, 어머니, 누나들의 전용 공간 어떤 집은 물동이도 대부분 여자 차지였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누나들의 전용 공간 어떤 집은 물동이도 대부분 여자 차지였습니다. ⓒ 김규환

서럽게 추웠던 그 때 그 시절

바람을 일으켜 '덜컹!'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여덟 번 울리는 걸로 보아 8시다. 해지기 무섭게 밥 먹고 불 끄고 잠자는 게 일이었으나 이 잡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호롱불도 기름이 봍아(떨어져) 깜빡거리고 있었다.

"규환이 너 말래서 쌌지?"
"왜에~. 성이 가 봐봐."
"성이 알아챈 건 니 내복에 한 방울 딜겨(떨어져) 있어서 그런 것이여."
"엄마 긍께 시방부터는 시구지름에다가 이를 빠쳐부끄라우?"
"그냥 손으로 잡아도 된디 뭣땜시 아까운 시구 축낸다냐. 기름 좀 부서라."

한 번 나간 김에 이번에도 또 나갔다 오라는 성화에 자그마한 석유통을 가져와 붓고 오들오들 떨면서 마저 이를 잡았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장에서 사온 투명하고 빨간 이약(虱藥)을 지푸라기로 몇 점 머리에 찍어주셨다. 방을 빙빙 싸돌도록 잠버릇이 나빴던 나에게 빵모자를 쓰고 꿈쩍 말고 자라니 새로운 형벌이 내려졌다.

차차 출출해졌다.

"성! 고구마나 깎아먹을텨?"

여성들 내복은 새빨간 색이었지요.
여성들 내복은 새빨간 색이었지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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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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