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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바다에서 건져 올린 게
새벽바다에서 건져 올린 게 ⓒ 인권위 김윤섭
자명종 소리에 깨어 여관을 나선다. 해양경찰서에 들러 출항신고를 마친 뒤 저인망 복성호에 승선하자 새벽 3시. 먹빛 바다를 향해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선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고물 쪽 선원식당으로 들어간다. 반 평이나 될까, '소꾸도'라는 식당 안은 새벽바다를 가르고 있는 복성호와는 대조적이다. 먹잇감을 찾아 어선은 눈에 불을 켜고 항해 중이나 선원들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앉은 채 석고상이 되어간다.

선원식당을 나와 찾아간 곳은 선장실. 어제 잠깐 얼굴을 익힌 바 있는 선장 박상조(53)씨는 한 사건으로 현재 재판에 계류중이다. 지난 6월 19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복성호에서 조업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는데, 비트(어망줄을 고정시키는 쇠갈고리가 달린 막대기)를 책임지고 있던 중국인 선원이 그물을 올리는 도중 그만 로프에 휩쓸려 수장되고 만 것이다.

“요즘 머리가 아파. 며칠 후면 판결이 나겠지만 선장 혼자서 어떻게 아홉 명을 책임지라는 것인지…. 경찰서로 검찰청으로 불려 다니는 건 선장이지만 내가 없으면 아홉 명의 식구(선원)들이 손을 놓아야 해.”

새벽 3시에 깨어나는 바다

듣고 보니 변명은 아니다. 선원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선장은 고기 밭을 찾아 바다를 헤매고 있다. 또한 싹쓸이 저인망(바다 밑바닥으로 끌고 다니며 깊은 데 사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은 자망(그물을 길게 쳐서 그물코에 물고기가 걸리게 하여 잡는 그물)과 달리 한 번의 선택이 그날의 어획량을 보장한다. 그러므로 모든 책임은 선장의 몫이다. 어획량이 밑바닥을 칠 때 선원들의 실망 섞인 눈빛도 눈빛이거니와 그 모든 책임을 지고 선장은 키를 놓아야 한다.

현재 속초에서 감포까지 저인망 어선은 44척. 그중 죽변은 6척의 저인망이 조업 중이다. 그나저나 최근 들어 저인망을 바라보는 정부와 수산 관련 학자들, 환경단체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물고기의 씨를 말려 생태계를 위협하는 싹쓸이 어선이라는 점이 그 이유다.

그래서 내놓은 정부의 방침이 저인망 어선 감축. 정부는 어선 감축 정책의 일환으로 저인망 1척당 2억원을 제시하고 있으나 선주들은 입질조차 하지 않는다. 정부와 학자들, 환경단체의 의견을 인정하지만 3억5000만원은 돼야 협상에 응하겠다는 것이 선주들의 입장이다.

박상조씨는 여기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인다. “선주들이야 배를 팔면 그만이지만 그럼 우린 뭐가 되는 거요? 이 배에 타고 있는 선원들만 보더라도 이곳 죽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소. 속초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한족 선원들이 전부란 말이오.”

선장이 말하는 10명의 선원들이란 이렇다. 선장을 머리로 기관장, 갑판장, 주방장에 이르기까지 장급 선원만도 4명에 이른다. 숫자적인 분류는 그것만이 아니다. 가장 실질적인 임금문제에 다다르면 등급의 분류는 확연해진다. 도급제로 시작해 도급제로 막을 내린 광부들처럼 선원들 사정도 오십보백보다.

그날의 어획물에 따라 각자 손에 쥐는 돈의 액수는 달라질 수 있겠으나 하나의 원칙 만큼은 영구불변이다. 그날의 어획물 중 기본 경비(기름, 숙박비 등)를 먼저 감하는 계산법은 선주 50%, 선장 15%, 기관장 13%, 갑판장 12% 선이다. 그러니까 선주와 장급선원의 몫을 제외한 돈으로 나머지 선원들의 몫을 분배하는 셈이다. 여기에 예외적인 인물이 있다면 바로 중국이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방의 선원들이다.

바다가 삼킨 목숨들

저인망 한 척에 3명까지 승선이 가능한 외국인 선원들에 대해서는 월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중 중국인 선원을 예로 든다면 그들은 본국에서 2주간의 선원 연수교육을 마친 후 송출회사를 통해 한국에 입국, 3일간의 소정교육을 끝으로 이국에서의 선원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삼십대의 이들이 본국을 떠나올 때 치러야 하는 돈은 만만치 않다.

본국의 송출회사에 바쳐야 하는 액수는 한국돈으로 350만원에서 500만원. 2년 만기로 1년을 더 연장할 수 있는 이들은 삼겹살 한번 배불리 먹을 수 없다. 연수기간인 1년은 본국을 떠나올 때 빌린 돈을 갚느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바다에 그물이 내려가는 순간은 매우 긴장되는 시간이다. 복성호에서도 그같은 사고로 중국인 선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새벽바다에 그물이 내려가는 순간은 매우 긴장되는 시간이다. 복성호에서도 그같은 사고로 중국인 선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 인권위 김윤섭
중국인 선원들이 연수기간에 받는 봉급액수는 20여 일 조업에 월 55만원. 1년이 지나면 급여는 70만원에서 75만원으로 오른다. 도주와 이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여권과 정기적금 통장을 선주가 관리하고 있는데 급여에서 30만원을 정기적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 송출회사에서 매달 자동이체로 빼가는 3만원이 그것이다. 이 역시 3년이면 1인당 백 여만원, 중국에서 온 선원들한테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연수기간이라면 모를까, 연수가 끝났는데도 송출회사에서 돈을 빼가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말이 좋아 송출회사지 뱃놈들 말로 하자면 중간 브로커들이 아닙니까?”

출항한 지 1시간 30여 분. 다른 어선들과 교신을 주고받던 박상조 선장이 '띠엑, 띠엑' 조업신호를 알린다. 순간 복성호에 탄 선원들의 몸놀림이 민첩하게 돌아간다. 공습경보라도 발령한 듯 각자 위치로 돌아간 선원들은 새벽 5시가 가까워오는 칠흑의 바다에 그물을 내리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오는 건 바로 그 무렵, 그물을 내리는 속도는 전신을 마비시킬 정도다. 왼발이든 오른발이든 한 보를 잘못 내딛었다간 투망 줄에 휩쓸려 수장되고 만다.

전쟁을 방불케 한 십여 분의 투망작업이 끝나자 선원들은 다시금 식당으로 향한다. 쉰을 넘긴 사람들 속에는 올해 칠순을 맞은 서씨도 있다. 이들의 한 달 수입은 평균 100~150만원, 이것도 들쭉날쭉이다. 어가(고기값이 떨어져 쉬는 일)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생활고의 타격은 극심해지게 되고, 어선 수리기간(1년에 1개월)으로 접어들 때면 가족들을 찾아가는 귀갓길부터 탄식이 이어진다.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간 것 같아. 바닥난 물고기도 물고기지만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남는 게 있어야지. 한 달 경비 빼고 선주가 반을 가져가 버리는데 뭐 얼마나 남아 있겠어. 그야말로 콩고물이지.”

선원생활 40년째로 접어든다는 칠순의 서씨는 갑판장의 말에 담배만 뻐끔거리고 있다. 탄식도 몸에 배면 저렇듯 바퀴에 눌린 외짝 신발처럼 침묵으로 변하는 것일까?

배가 출항해 선장이 어장을 찾는 동안 부족한 잠을 채우는 샤오타오.
배가 출항해 선장이 어장을 찾는 동안 부족한 잠을 채우는 샤오타오. ⓒ 인권위 김윤섭
수많은 선원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살았다는 그는 그물을 올릴 때가 되자 나이답지 않게 민첩해진다. 새벽 3시에 출항한 배가 첫 그물을 걷어 올린 시각은 아침 6시. 가장 먼저 찾아오는 건 한 무리의 갈매기 떼였다. 한 척의 어선이 물고기를 찾아 3마일의 바닷길을 항해해 온 것처럼 갈매기들 또한 투망한 그물이 올라오자 갑판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중국에서 온 까우홍치앙(26)과 눈이 맞은 건 첫 수확이라고 할 수 있는 어획물의 선별작업이 한창일 때였다. 쥐틀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저인망에서 그물을 놓고 걷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와 그의 동료인 샤오타오(30)는 이물과 고물을 오가며 분주히 몸을 놀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13시간의 조업을 마치고 돌아와 동일장 숙소에 마주앉자 까우홍치앙의 이력이 한순간에 드러난다.

“샤오타오 형은 농사를 짓다 왔고, 나는 중국에서도 배를 탔어요. 한국에 온 지는 3년째인데 6월 19일날 친구를 잃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한마을에서 태어나 여러 해를 죽마고우로 살아온 끈끈한 우정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친구의 사체마저 찾지 못한 까우홍치앙의 슬픔은 오래 갔다. 선주 측의 배려로 스무 날 남짓 고국에 다녀왔으나 조업을 할 때면 친구와 함께했던 날들이 떠올라 남몰래 눈시울을 붉힌 적도 많다.

“다른 외국인들은 3년이 지나도 연장이 가능한데 우리 중국만 달라요. 3년을 다 채우고 돌아가면 한국에 다시 오기 힘들어요. 그래서 고향에 갔다가 돌아왔어요. 샤오타오 형은 여권을 분실해서 여행비자로 머물고 있는데 한번 중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나올 수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곳에서 너무 많은 돈을 빌려왔거든요.”

늙은 한국 선원들 그리고 젊은 외국 선원들

스물에 고국을 떠나온 까우홍치앙과 샤오타오. 둘은 연수기간에 한푼도 쓰지 않고 모은 돈으로 본국을 떠나올 때 얻은 빚을 겨우 갚았다. 이후 그들이 번 돈은 1300만원. 본국으로 돌아가면 집 한 채 마련할 돈은 된다.

“친구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선장이 가장 좋아요. 선장은 욕을 하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 ×새끼, ×새끼하면서 많이 욕해요. 얼마 전에도 샤오타오 형하고 다른 선원하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한국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욕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날도 다른 선원이 술에 취해 샤오타오 형더러 싸가지 없다며 칼을 들고 덤볐어요.”

술을 마셔도 욕하지 않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까우홍치앙의 말에 한국의 술문화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려다 그만두었다. 중국 사람들은 욕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그의 잇댄 말 때문이었다. 더구나 갑판장과 샤오타오가 브리지에서 잠이 깨었는데 갑판장한테만 밥을 주었다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함께 일하는 한국인 선원들도 넌지시 술잔을 내밀 듯 인정한 대목이다.

“좋을 때도 있고 미울 때도 있어. 좋은 건 저만한 나이의 한국선원들이 없다는 것이고, 미운 건 위아래가 없다는 거야. 화가 나서 귓방망이라도 한 대 먹인 날이면 신고하겠다고 난리를 치거든. 그러니 도리 있나. 자식같이 생각해야지.”

한국선원들은 그래도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나이든 한국선원들과 젊은 외국인 선원들이 애면글면하며 함께 바다생활을 하고 있지만 서로 등 돌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같이 지내고 처지가 비슷하다 보니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도 내륙 사람들보다 낫다.

한국 선원과 중국 선원이 함께 잡아올린 물고기의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 선원과 중국 선원이 함께 잡아올린 물고기의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 인권위 김윤섭
만원짜리 공중전화 카드 하나면 고국에 계신 부모님과 4시간은 통화할 수 있다는,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오래 머물고 있는 사람이면 십중팔구 외국인 선원들이라고 귀띔해 주는 까우홍치앙과 샤오타오를 뒤로하고 도착한 곳은 속초시 청호동에 있는 '통발(꽃게)선주협회' 사무실이었다. 17명의 외국인 선원들이 기거하고 있는 청호동 통발협회는 도의회, 시, 수협의 지원을 받아 선원숙소를 말끔히 단장해 놓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영길씨는 윗선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우리는 선원들의 처우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분명히 해주고 싶습니다. 그런 만큼 정부도 잘한 사람은 잘한 만큼의 보상이 뒤따랐으면 합니다. 저인망에 반해 통발은 80% 이상을 수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선원 한 명을 구하려면 목이 탈 지경입니다. 외국인 선원 한 명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수협을 시작으로 수협중앙회, 항만청, 송출소, 출입국관리소에 이르는 숱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애면글면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

최영길씨의 말처럼 외국인 선원 한 명이 도착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5~6개월. 중국에서는 대기중인 선원들이 줄을 서 있건만 정작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입술이 탈 따름이다. 속이 타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송출회사에서 매달 3만원을 빼가는 것처럼 선주협회 또한 정기적으로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수협중앙회 관리비로 매달 2만5000원을 지급해야 하고, 해운노조(한국노총)에 지급하는 외국인 선원들의 노조비도 1인당 5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원들에게 얼굴 한번 내민 적 없는 해운노조는 그 돈을 받아 어디에 사용하는 것일까?

통발협회 사무실을 나와 실향민들이 살고 있는 청호동 아바이마을로 들어서자 당찬 목소리로 문제점을 털어 놓던 통발협회장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는 개인적인 일로 인해 외국인 선원들이 식사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밥은 물론이거니와 친화적인 주변환경을 위해서라면 끓여 먹는 일조차 허용할 수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외국인 선원들은 분명 밥을 먹든 먹지 않든 1개월에 30만원의 식대를 지불하고 있었다. 통발협회 또한 그렇게 서류를 올리고, 감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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