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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우 기독인들이 서울광장에서 미국과 부시에 대한 지지 또는 지원하는 집회를 가진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던 저는 김 교수님의 글을 보면서 그나마 동지적 사고를 가진 분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습니다.

8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반예수적인, 비그리스도적인 한국 개신교의 무지함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 김 교수님과 마찬가지로 40평생 단 한 번도 교회를 떠난 본 적이 없는 저에게도 예사롭지는 않은 것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한국 극우 개신교의 문제는 공동체 의식의 결여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성서를 통해 고백된 모든 신앙인의 고백과 성서를 통해 전하는 하나님과 예수의 모든 말씀이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체적인 고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개신교는 이를 늘 개인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고백하며 행동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한국 극우 개신교는 앉은뱅이를 걷게 한 예수의 기적을 단지 한 개인의 질병이 치유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해석하고, 예수를 잘 믿으면 질병이 낫는다는 개인적 신념체계를 교인들에게 갖게 만드는 데 중심을 두고 있었을 뿐, 앉은뱅이가 일어섬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평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공동체 전체가 아름다워 졌다고 하는 그들 공동체의 체험과 고백에는 무관심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한국 극우 개신교가 예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예수의 삶에 대한 실천의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더라면, 기도 열심히 하고 예수를 잘 믿으면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대한민국 각지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라고 가르치기에 앞서 오늘 날 우리의 교회와 성도들이 앉은뱅이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백을 함께 나누며 실천을 서로 독려하였을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법률은 앉은뱅이를 만드는 법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단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두어 앉은뱅이를 만드는 법입니다.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 문제제기를 하면,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고 감옥에 보내는 법입니다.

미국의 한반도 군사전략으로 우리 민족 누구도 원하지 않는 전쟁이 이 땅에서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논문 한 편을 써도 미국을 반대하는 것은 북한과 동일한 주장이라며 감옥에 보내고 앉은뱅이로 만드는 법입니다.

혹시라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갈까봐 말하고 싶어도 말 못하게 하는 벙어리를 만드는 법이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독점자본의 침탈에 대해서도 모른 척하도록 하는 건전하고 건강한 사람들을 장님으로 만드는 법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범죄자로 만들고 자유를 빼앗고 억압하는 법률입니다. 고작 몇 백 년도 되지 못한 이념의 잣대로 수 천 년 존중해 온 인권을 유린하는 법률입니다. 생각과 생각의 방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지 못하는 법률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61:1~3)


예수는 누가복음에서 이사야서를 인용하며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을 명쾌하게 밝혀 두었습니다. 과연 오늘의 한국 개신교는 이 땅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얼마만큼이나 예수의 오신 까닭을 신앙하여 왔는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한국 극우 개신교가 미국과 부시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국가보안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동안, 이라크에서는 이념과 신념도 없고 더더욱 테러리스트도 아닌 수 천의 민간인들이 미국의 포탄과 총탄에 죽어가고 있었으며, 이 땅에는 이념과 신념이 다르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감옥에서 자유를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한국 극우 개신교가 미국과 부시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국가보안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동안, 이라크에서 일어난 전쟁은 미국의 대외군사전략에 따라 이 땅 한반도에서도 전쟁을 일으킬 위험을 키웠으며, 이런 사실을 알리는 것도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야 할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의 온 삶을 통하여 아름다운 소식, 복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은 무엇입니까? 단지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고 감옥에 가두는 것입니까?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전쟁과 기근에 시달리게 하고,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것입니까?

그런 일들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고 그 일을 행하는 사람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진정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란 말입니까?

한국 극우 개신교는 지난 시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했던 그 모든 것들이 전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득권의 이름으로 기도했으며, 세상의 부도덕적인 권력의 이름으로 기도했고, 썩어빠질 부와 자본의 이름으로 기도했음을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예수를 믿어왔고 또 앞으로도 그를 믿고자 합니다. 그 분은 좋으신 분이시고, 우리가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로 일컬어지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는 그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셨고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에게조차 용서와 화해의 목소리를 내신 분입니다.

나는 한국의 기독교가 이런 예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더 이상 예수의 이름을 가리지 말고, 기득권의 이름으로 타락하여서 하나님의 나라가 올곧게 서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 되신 ‘참 교회’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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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정의,평등,진리,생명,사랑 그리고 가족- 소중한 의미들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회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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