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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50일만에 만난 환자복 차림의 형이 낯선지 광수는 주춤거렸습니다. 뭐라고 얘기도 하고 손이라도 잡아줄 줄 알았는데 광수 녀석은 형 곁에 어색하게 앉았습니다. 옆에 있던 분들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응원의 말을 건넸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으면 반갑게 끌어안기라도 해야지."
"너네들 형제 맞아, 왜 그리 어색하니? 좀 웃어봐."

그제서야 광수가 형 가까이 다가가 앉았습니다. 형이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광수 못 본 사이에 살이 더 찐 거 같아."

그러면서 행여 광수가 저보다 키마저 더 큰 게 아닌가 걱정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앉은 광수의 키와 제 키를 비교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준수 키가 광수보다 크다며 녀석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런 형 옆에서 광수도 한마디했습니다.

"형은 다리가 길잖아. 일어서면 형 키가 더 클 거야."

키는 아직 준수가 큰데 얼굴을 보니 준수 녀석이 동생에 비해 훨씬 수척해 보입니다. 그 동안 병마와 싸운 탓이겠지요. 준수 옆에 앉은 아내의 몰골도 말이 아닙니다. 피곤에 지친 모습입니다. 입술마저 부르터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활짝 웃어보라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니 준수가 아빠와 광수에게 보여줄 게 있다고 했습니다. 엄마에게 손짓을 하며 의자를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또 새로운 운동을 배운 거구나 생각하며 녀석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았습니다.

ⓒ 이기원
작업치료대에 걸터앉은 준수 앞으로 의자를 가져왔습니다. 준수는 앉은 채로 오른발과 왼발을 힘겹게 옮겨 어깨 너비로 벌렸습니다. 그리고 발바닥을 땅에 대었습니다. 두 팔로 의자 손잡이를 다잡고 팔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더니 의자에 의지해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아내는 준수의 발바닥이 안전하게 땅에 밀착되도록 의자 뒤에 앉아 도와주었습니다. 서 있는 자세가 힘겨운지 녀석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엉덩이며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습니다.

준수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습니다. 곁에 있던 광수도 따라서 손뼉을 쳤습니다. 주변에 계시던 환자며 가족들도 함께 웃으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재활 치료를 받으며 근전도 검사를 해도 전혀 반응이 없던 왼쪽 다리에 이틀 전부터 움직임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준수의 변화된 모습에 그 동안 마음 고생이 싹 씻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용을 쓰며 서 있던 준수가 작업 치료대에 앉은 후 애쓴 준수를 격려해주었습니다. 동생과 아빠에게 자신이 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준수도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50일만에 만난 광수와 엄마는 모처럼 밖에 나가 점심을 먹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 준수는 내가 돌보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우리 네 가족이 오손도손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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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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