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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듯 마는 듯 유유히 흐르던 구름도 오늘은 머리 위를 빨리 지나간다. 어느새 앙상해진 나뭇가지도 바람의 방향에 따라 한껏 가지를 뻗고 길가에 떨어진 낙엽도 신명나게 춤을 추며 내 발을 간질인다.
바람은 내 머리카락에도 각치며 파고든다. 차가운 손으로 실타래를 풀 듯 쉬지 않고 놀림이 바쁘다. 바람은 구중중한 내 눈도 맑게 한다. 창문의 먼지를 훑어내 듯 눈에 낀 세상의 때를 말끔하게 벗겨낸다. 상큼한 기분이 온 몸을 감싼다.
잠시 눈을 감는다. 옷깃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조금 춥다. 하지만 시원하다고 생각을 바꿔본다. 그리고 구름이, 나뭇가지가… 바람의 리듬에 몸을 맡기듯 나도 자연스럽게 바람의 흐름에 기댄다.
몸이 점점 바람처럼 가벼워진다.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걱정은 여전한데 잠시 바람에 몸을 맡기니 세상의 칼날에 생긴 생채기가 아무는 느낌이다. 몸은 조금씩 추워지는데 마음만은 새뜻하다.
구름이 흐르는 것인가, 바람이 부는 것인가? 자연의 모든 것이 강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아득한 산마루를 지난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을 만진다. 다시 쪽빛 하늘로 올라가 구름을 움직인다. 바람은 푸른 피가 되어 살터를 새롭게 한다. 바람은 그 속에서 흔들리는 작은 나도 어루만진다.
그러나 쇠기둥을 박고 검은 아스팔트 위에 돌니처럼 곧추선 단단한 건물들, 빈틈없는 사각의 회색건물만이 죽은 생물처럼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간이 사는 시멘트 건물은 조금의 미동도 없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그 모습으로 있었던가?
얼마나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버틸 수 있는가?
흘러가는 구름이나 나부끼는 나무보다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바람 너머 너볏한 산 하나가 물끄러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