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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이 생산라인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불법파견 노동자는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다. 단지 가슴에 패용하고 있는 명찰만 다를 뿐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청들은 정규직들과 함께 일하면서 가장 힘들고 더러운 일들만 합니다."

1년6개월 전 현대자동차 하청인 세화산업 소속으로 자동차 라인을 타다, 월차를 쓰려다가 아킬레스건이 잘린 송성훈(31)씨. 현재 현대자동차 아산 15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송씨는 "하청들이 하는 일이 정규직에 비해서 훨씬 노동강도가 세다"고 호소했다. 현대자동차에서 라인을 타는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은 라인에서 일하거나 훨씬 힘든 일을 한다는 게 한결같은 이야기다.

울산공장 12곳, 아산공장 9곳에 이어 전주공장 12곳도 불법 판정

정병석 노동부 차관은 지난 9월 22일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결정에 대해 노동부 입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생산라인에 정규직과 파견근로자가 혼재돼 있고 시프트 근무조에도 구성이 혼재돼 있었다. 이런 점들을 파견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여러 기업들의 생산라인에서 적용중인 '소사장제'는 현행법상 허용된다. 그러나 이는 완벽한 아웃소싱이 전제가 돼야 하며 모든 노동관리 사항을 원청회사에서 관여하면 문제가 된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노조와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금속산업연맹은 지난 5월 27일 현대자동차와 21개 하도급 업체를 불법파견 혐의로 고발했다. 그 결과 노동부는 9월 22일 울산공장 12곳, 아산공장 9곳, 1800여명 총 21개 업체에서 불법파견이 진행되고 있다고 판정했다. 현행 파견법상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에 파견근로를 제공할 수 없지만 공장에서는 공공연하게 불법이 진행돼왔던 것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아산공장 불법 판정 이후 노동부는 사내하도급점검지침에 따라 고용안정에 대한 개선계획서를 10월 18일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노동부 사내하도급 점검 지침에 따르면, 불법파견의 경우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거나 완전도급으로 변경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예정보다 하루 늦게 내놓은 현대자동차의 '고용안정에 대한 개선 계획서'에는 직접고용계획은 없고 파견과 임시직 활용, 완전도급화 방안만이 담겨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직접 고용으로 인한 부담보다는 불법을 감수하겠다는 것.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현대차 정규직노조가 지난 8월 20일 울산공장 101개, 전주공장 12개 전체 하청업체를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을 이유로 노동부에 고발한 결과 지난 10월 21일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12개 업체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이 확인됐다. 울산공장 101개의 경우 예정보다 판정이 늦어지고 있지만, 유사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동부는 현대자동차가 제출한 개선계획서가 타당성과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지난 11월 11일 해당경찰서에 현대자동차를 고발조치했다. 이에 대해 비정규연대회의 오민규(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은 "불법파견 엄단을 통해 비정규직 보호를 내건 노동부가 직접고용을 강제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무책임한 태도"라면서 "사건을 경찰에 넘겨 책임을 면하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노동부를 비판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불법파견 실태

조사를 진행한 울산지방노동사무소 담당자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불법을 지적했고, 개선계획서가 적절하지 않아 고발조치 했기 때문에 책임을 방기했다는 말은 맞지 않다"면서 "경찰 고발 조치 등의 처리는 본부(노동부)에서 최종적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고발한 울산공장 101개 판정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이 관계자는 "워낙 공장이 많은 데다 조사가 끝난 후 검토 작업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다"면서 "정확한 시일을 못박을 수는 없지만,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동부의 고발 조치에 대해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회사는 법 테두리 안에서 현실적이라고 판단해서 개선계획서를 제출했지만, 노동부가 고발조치를 취했다면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거 아니겠느냐"면서 "내수가 침체돼 있고 원화절상으로 수출시장마다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노조 요구대로 비정규직 1만명을 직접고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도 물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좋겠지만, 그러다 회사 망하면 누가 책임지겠느냐"며 직접고용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문제에 대해 재계 역시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현대차 불법 파견 판정에 대해 "제조업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판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면서 "법을 현실에 맞춰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차 직접생산에 투입되는 비정규직은 약 1만1000여명. 지난 2000년 회사와 노조가 '비정규직 사용'을 합의한 이후 비정규직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번 노동부의 현대자동차 불법 파견 판정은 그동안 만연돼 있었지만 손 댈 수 없었던 불법 파견이 수면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정규직 법안의 개정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자동차 불법 파견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노동계와 재계의 관심이 그 어느 때마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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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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