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잠시 후 그에게 다가온 인물은 무적철검 구양휘였다.

“나는 지금 장안(長安)으로 떠날 생각이네. 이번에 나타난 초혼령을 보고 싶거든. 자네에게 급한 일이 없다면 같이 가는 것도 괜찮을 듯 싶은데….”

섬서 장안의 양만화 집으로 간다는 뜻이다. 담천의에게는 특히 할 일은 없다. 하지만 그는 내일 아침 사부 아닌 사부를 찾아 떠날 생각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그는 구양휘를 따라 가기로 결정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구양휘는 왠일인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구양휘 같은 인물이 같이 가자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해금령은 공표되었지. 각파마다 이해득실이 달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이틀 만에 장안에 도착할 수 있겠소?”

초혼령의 기한은 모레 저녁 자시로 끝난다. 그 안에 초혼령의 행사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빠듯하겠지. 삼문협(三門峽)까지 내일 오전 중으로 도착하면 뱃길을 이용해 내일이라도 밤늦게 화음현(華陰懸)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야. 쉬지 않고 달려가면 모레 저녁에는 장안에 도착할 꺼야.”

강행군이었다. 반드시 초혼령의 행사가 그들이 도착한 후에 이루어지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있었다. 이제 초혼령은 그 위력을 잃을지 모른다. 아무리 공포감과 신비함으로 가려져 있었다 해도 전 문파들이 간섭한다면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서가화와 송소저는 같이 갈 수 없겠지. 괜찮겠나?”
“소제야 상관없소.”
“그렇다면 준비하게.”
“준비할 게 뭐 있겠소? 이대로 가면 그만이오.”

구양휘는 빙그레 웃으며 눈짓으로 한쪽을 가르켰다. 그곳에는 송하령과 서가화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차를 준비할 테니 빨리 내려오도록 하게.”

송하령과 잠시라도 말을 나누라는 것일 게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러한 배려를 해 주는 구양휘가 고맙다. 구양휘가 바쁘게 지객당 쪽으로 내려가자 송하령과 서가화가 다가왔다.

“가시기로 했나요?”

서가화의 물음이었다.

“그렇소.”
“당연히 갈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여간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해 주신 것 감사드려요.”

서가화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만물표국의 표사 중 유일하게 목적지까지 동행한 사람이다.

“다행이오.”

말이라도 부드럽게 해주면 어쩌랴. 하지만 저 인간은 끝까지 저런 식이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저 인간만 보면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한 감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시선이 송하령에 가 있는 것도 그녀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서가화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사람이 같이 있는건 꼴보기 싫지만 이쯤에서 소녀는 빠져야겠군요. 나중에 강남에 오시면 보답해 드릴께요.”

서가화가 이런 정도로 말을 한다는 것은 크게 봐주는 거다. 담천의는 교구를 돌리는 서가화에게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기회가 닿는다면 찾아 가겠소.”
말은 하면서도 이미 그의 시선은 송하령에게 가 있었다.

“……!”
“……!”

이제 두 사람뿐이다. 어떠한 약속을 한 바도 없거니와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이대로 헤어져 후에 만나지 못하면 사실 그만이랄 수도 있다. 이미 마음은 상대에게 보였다.

이런 일에 서툰 담천의가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이미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술을 드셨나요?”

이런 자리에서 던지는 질문이라니……? 괜히 할말이 없다 보니 던져 보는 질문이다. 하기야 소림 내에서 술을 먹은 것은 기사(奇事)라 아니할 수 없다.

“몇 모금 얻어 마셨소.”

던지는 질문에 하는 대답도 어색하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열리지 않는다. 마주치는 시선도 어색하다. 두 사람 모두 가슴 속에 있는 말을 해야 하는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

이럴 때는 남자보다 오히려 여자가 용감하다. 송하령은 고개를 돌려 애꿎은 땅을 바라보면서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실 건가요?”

그 말에 담천의의 입가에 한줄기 미소가 피어 오르는가 싶더니 얼굴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녀가 어렵게 꺼낸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어찌 모르랴. 손에 잡히는 듯 하다가도 저만치 가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녀는 참으로 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나는…”

담천의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어느새 그녀의 두눈에 피어오른 이슬이 찰랑거리고 달빛에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담천의는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그녀의 교구를 끌어안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안겨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겠소. 당신이 기다려 준다면…. 그게 언제가 될는지 모르지만 나는 갈꺼요. 만약 너무 늦어 당신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분명 당신을 찾아 가겠소.”

그의 나직한 대답에 송하령은 눈에 매달려 있던 이슬을 떨구었다. 이렇듯 갑작스럽게 찾아 온 사랑에 당황하기는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그와 같이 있었던 이십여일이 몇 년은 되는 듯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녀의 마음은 천근거암이 내려 앉은 듯 무거웠다.

그녀는 손을 돌려 그의 목을 끌어 안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이렇게 있었으면 싶다. 사랑이란 묘한 것이다. 이렇듯 갑자기 불꽃처럼 타오르는 것이다.

“기다릴께요. 당신이 올 때까지 하령은 기다릴 거예요. 당신이 오지 않는다 해도 하령은 영원히 기다릴 거예요.”

그녀는 기다릴 것이다. 이미 마음을 준 사내다. 그의 마음도 안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간사해 변하기 마련이지만 사랑하는 순간에 있어서는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그 믿음도 사람들의 욕심이다.

그러나 자신만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게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별빛이 내려 앉고, 대낮처럼 밝은 달빛 아래의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에서 울리는 고동 소리를 듣고, 감미로운 숨결을 느끼고, 상대방의 체취를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그녀는 눈에 별빛같은 이슬을 머금고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