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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최근 일년 이내로 백련교도들의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에 개방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조사하던 중이었다. 헌데 광명을 보면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것과 같은 태도다. 그는 백련교도들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아미타불.... 구방주(具幫主). 태조께서 취득한 이후 성화령의 처리는 어떻게 한 것인지 알고 계시오?”

“아마 태조께서도 처음에는 없애려 하다가 결국 없애지 않았소. 다만 성화령을 세부분으로 분리했다는 말을 들었소. 그 중 한 부분인 연화대는 태조께서도 침상 위에 놓고 사용하셨다 하오.”

연화대에는 기이한 효능이 있다 한다. 촛불을 켜 놓으면 방안이 열배 이상 밝아지고 과일을 넣어 두면 오래 돼도 썩지를 않는다 했다.

“다만 연화대는 정난의 변 당시 현 황상께서 금릉을 함락할 때 사라졌다고 하오. 아마 궁인 중에서 혼란한 틈을 타 훔쳐 달아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지오.”

정난의 변(靖難之事).

숙부가 황제인 조카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한 이 사건은 사실 주원장의 주씨 황실을 유지하고자 했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천민으로 황제가 된 주원장은 대대손손(代代孫孫) 주씨(朱氏)의 천하가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랬다. 자신의 사후에도 26명의 아들과 16명의 딸들이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리길 바랬던 것이다.

'호람의 옥(胡藍之獄)'이라 일컬어지는 건국공신들의 숙청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건국공신들은 장기간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존재들이었고, 그들을 그냥 두면 언젠가는 주씨 황실에 반역을 저지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주씨의 천하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세자를 제외한 25명의 아들들을 왕(王)으로 하여 성(省)과 대도(大都)를 선택하여 황실의 울타리로 삼았다. 서안(西安) 진왕(秦王), 대동(大同)의 대왕(代王), 북평(北平)의 연왕(燕王), 대녕(大寧)의 영왕(寧王), 감숙(甘肅)의 숙왕(肅王), 태원(太原)의 진왕(晉王) 등이 그들로 본래 지방 행정이나 정치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 지휘권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사실상의 지방제후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원장은 이러한 울타리로 인해 자손들끼리 싸우고 죽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정난의 변은 세자였던 의문태자가 주원장보다 먼저 죽게 되자 주원장 사후 황위를 물려받은 손자인 건문제가 관료들과 숙의한 끝에 황권을 강화하고자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황권 강화에 첫번째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지방제후의 삭탈관직과 사병의 제거였던 것이다.

수천명에서 수만명까지 사병을 거느리고 있던 숙부들의 왕위 박탈과 군사권을 빼앗으려 하자 연왕이었던 영락제가 제태(齊泰), 황자등(黃子澄) 등 간악(奸惡)을 토벌한다는 명의로 군사를 일으켜 ‘정난지사(靖難之師)’라 자칭하며 사년여의 전쟁 끝에 금릉을 함락시키고 황위에 오르게 된 사건이었다.

연화대는 마지막 금릉 함락 당시 많은 궁인들이 궁을 빠져 나갔을 때 누군가가 가지고 나간 모양이었다.

“적멸안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는데 태조께서 이미 서달 대장군께 하사하신 거구려.”

무림에서도 성화령의 존재는 언제나 긴장감과 함께 공포감을 주는 존재다. 아무리 사라진 백련교라 하더라도 중원 천지에는 백련교도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종교에 빠진 맹신도(盲信徒)들은 죽인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미 적멸안은 그들의 손에 들어 갔겠구려. 또한 연화대 역시 무사하다고는 할 수 없고..... 손잡이 역할을 한 봉(棒)의 행방은?”

철골개의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그것에 대해서는 개방에서도 모르오.”
“아미타불..... 그들이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인가? 이미 성화령의 세부분을 모두 모았다면...”

그들은 성화령에 의해 움직일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의 움직임이 은밀했던 것은 아직 성화령을 얻지 못했다거나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는 뜻이다. 그들이 정작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 된다.

명 건국 후부터 받은 박해를 생각하면 그들은 도저히 재생할 수 없는 상태여야 했지만 그들이 움직인다면 죽음의 세월을 보낸 만큼 준비도 철저하게 했을 것이다.

“아미타불.....!”
“무량수불.....!”

이곳에 있는 각 파의 장문인들은 알고 있다. 이미 선대의 어른들로부터 그들의 마공이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사술(邪術)이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 들었다.

“헌데 황실에서는 왜 초혼령을 해금하라 했을꼬... 아미타불.... 백련교도를 처리했던 곳이 초혼령일진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초혼령의 비밀 조직은 주로 백련교도의 진압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그로 인하여 무림방파는 초혼령의 행사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백련교도가 준동하려는 상황에서 초혼령은 해금령이 이루어졌다.

각 무림방파들은 초혼령의 해금을 원하고 있었지만 정작 이런 시기에 해금이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초혼령의 해금은 백련교도들의 음모일지도 모른다. 불길한 생각이 좌중의 마음 속에 찬바람이 불게 만들었다.

“무량수불..... 초혼령의 해금이야 어쩔 수 없이 공표를 해야 하겠지만 우리만이라도 초혼령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막는 것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외다.”

청허자가 좌중이 느끼는 바를 조심스럽게 대변했다.

“하지만 해금이 공표되면 당장 발등에 떨어진 양장주의 도움을 본파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화산파(華山波)의 장문인 개화검(開花劍) 우태현(瑀太賢)의 솔직한 말이었다. 그것은 양만화에게 막대한 도움을 받아 온 소림과 종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해금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양만화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무림각파에 도움을 주던 상인들은 다시 생각할 수도 있다.

문파를 꾸려 나가는 데는 당연히 돈이 필요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문파는 더 번성할 수 있다. 그리고 강한 문파일수록 더욱 많은 돈이 시주나 기부의 명목으로 지원된다. 그것이 세상 인심이다.

물론 무림문파는 그들만의 수입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현상 유지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정도다. 금전 앞에서는 아무리 세속에 초탈한다 해도 그리 쉽지 않다.

“아미타불..... 일단 현 무림정세와 이번 양만화 시주의 초혼령에 대해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 의논해 보는 게 좋을 것이외다. 더구나 운룡상인께서도 백가촌(百家村) 문제를 제기하셨고, 천마곡(天魔谷)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청허도우와 화산의 우장문인께서 지적하셨으니 처리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같소이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이 모인 것은 단지 초혼령의 해금 문제뿐은 아니었다. 그동안 평온했던 무림에 알지 못할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사라졌던 백련교도들의 움직임이 중원 곳곳에서 감지되는가 하면 결정적으로 이 자리에서 성화령이 백련교도들의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음이 밝혀졌다.

어차피 이번 구파일방 장문인들의 모임은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자 서로의 필요에 의해 소집된 것이다. 황실에서 송하령의 밀지가 전달된다는 것은 회합 이유 중 하나였을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무림질서를 수호하는 구파일방의 본능적 위기감이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두 여시주께서는 그간 고생이 많으셨소. 본사에서는 두 여시주와 일행이 머무시는 동안 최대한 편의를 봐 드리겠소이다.”

광허선사의 치하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실제 송하령과 서가화가 쫒기는 동안 구파일방이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스러운 마음이 그 첫째다. 두번째는 이미 감지하고 있는 무림정세의 변화에 대한 확신이 두 사람의 표물을 통하여 확신할 수 있었던 것.

세번째는 이만 자리를 비켜 달라는 의미다. 이번 회합은 구파일방 중 두 군데의 장문인이 빠져 있기는 하나 장문인들이 모여 회합하는 자리이다. 그런 자리에 나머지 외인들이 참석해 있을 이유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다.

“그럼 며칠만이라도 소림의 신세를 져 볼까?”

갈유는 광허선사에게 가볍게 포권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늙은 생강이 맵다고 했던가? 이미 갈유는 광허선사가 말한 의미를 알아 들었다. 그래서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자신이 몸을 일으킨 것이다.

그에 따라 구양휘를 비롯 나머지 일행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는 장문인들을 향해 가볍게 예를 올리고 방장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구양시주는 잠시 남아 주겠소?”

광허선사는 일행과 함께 방장실을 나서는 구양휘를 향해 말했다.

“제게 하교(下敎)하실 말씀이라도 계십니까?”
“하교라니 어찌.... 허허.... 당금 무림에서 무적철검이라 불리우는 구양시주에게 하교할 사람이 어디 있겠소. 사안이 심상치 않은 관계로 구양시주의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게요.”

구양휘. 그는 무공도 무공이려니와 강호에 내로라하는 무림세가(武林世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더구나 그들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무림세가의 후기지수(後起之秀)들이 구양휘를 정점으로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구파일방은 무림세가와 일정 거리를 두면서 서로 돕는 관계에 있으니 그를 회합에 참석시킨다는 것은 이번 회합에 무림세가들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

구양휘라고 그런 내막을 짐작 못하는 바도 아니다. 그는 잠시 같이 온 일행들을 보다가 신형을 돌려 자신이 앉았던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경청하겠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좌중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명예를 탐한 바 없었으나 그로서도 굳이 거절할 자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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