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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는 70년대부터 고도압축성장 중심으로 운영해 온 결과, 수출은 괄목할만하게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완제품, 특히 경공업 중심의 수출이었기 때문에 완제품 조립에 필요한 핵심부품들을 필요할 때마다 외국 것을 사다 쓰거나 기술도 베껴서 임시방편으로 사용해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근래 들어 '부품소재가 살길이다'라고 외쳐 본들 뾰족한 답이 나올 리 없는 현실입니다.

그간 미국이나 유럽에서 번 돈을 일본에 가져다 바치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의 경제평론가라고 하는 오마에 겐이치라고 하는 사람은 "한국 경제는 '양쯔강의 가마우찌'와 같다"라고 빈정대듯이 얘기한 바 있습니다. 그 의미는 다 아시리라 믿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산업구조의 근원적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실 세계산업구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완제품구조에서 부품소재중심으로 급변해 왔습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구조적 문제로 인해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던 데 대하여 반성하고 늦었지만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얼마전 모 전자회사가 500만 화소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휴대폰에 사용된 렌즈 모듈, 이미지센서, 음원 칩 등 핵심 부품은 온통 일제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외제부품들을 사용해서 조립완제품을 만들고도 세계 최초 제품은 맞기는 한 것이지요. 좋은 부품들을 사다가 조립에 성공한 최초 제품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제품을 팔기 위해 필요한 부품들을 자체적, 또는 부품기업들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노력은 뒷전으로 미루어 놓다보니 만연 대일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른바 경제종속, 기술종속이라는 낱말들이 돌아다니는 원인입니다.

여기다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금융구조개편에 따라 영미식 모델의 금융구조가 자리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영미식 모델의 특징은 금융과 산업이 따로 돌아가는 시스템으로 금융의 단기 유동성 추구로 자국산업 특히 대규모 투자에 불리하고, 양극단 산업(생명공학·일부 첨단 IT산업/숙련노동을 필요로 하는 전자산업, 자동차, 기계 등)을 제외하곤 발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최근 대출승인여부, 회수여부에 대한 결정을 본사의 중앙시스템에 의해 결정토록 하는 제도도 역시 한 단면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기업에 종속된 수직적 전속거래형식에 익숙해 있었던 관계로 중국으로 진출하면서도 '어디 납품할 데 없나?'하고 기웃거린다지 않습니까?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국 등으로 생산공장을 이전하면서도 정작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차별화된 제품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장기적으로는 국제적 분업체계를 갖춘 글로벌 경영체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부품소재 기반이 취약한 요인은 부품소재기업이 영세하고 자생력이 부족해 기술, 인력, 자금 등 기술개발에 필요한 자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완제품 대기업의 '대오각성'과 '살신성인'이 절실합니다. 완제품 대기업과 부품 중소기업이 기술 블록을 형성해 공동개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줄기차게 이를 실천해 가야 합니다.

부품소재를 살리기 위한 방안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는 기업가정신을 북돋아주어야 합니다.

부품소재기업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만 최근의 국내외 상황이 우리 기업들의 기업가정신을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업촉진도 중요합니다만, 우선 있는 기업들이 계속하도록 하는 지원도 절대 필요합니다. 기존기업들이 도산하고 폐업하고 국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업가들이 나타난들 언제 그들이 이익을 내고 성공할 것인지 불확실한 실정이거든요.

둘째는 대기업과 부품소재기업의 '상생의 틀'이 필요합니다.

앞에서 예를 든 500만 화소 휴대폰의 예처럼 지금부터라도 필요한 부품에 대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획단계에서부터 개발이 완료되어 이익이 나누어질 때까지 협력하는 틀이 절실합니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우는 대체로 기술개발단계에서 상호 협력해야할 자원에 대해 서로 몫을 나누고 비밀유지 서약을 하고 이익이 발생했을 때 철저히 투자된 몫으로 계산한다고 합니다. 또한 대체로 3년간만 도요타에 납품토록 한 다음, 그 이후는 닛산이나 마쓰다 같은 다른 자동차제조사에도 알선해서 회사의 규모가 커질 수 있도록 도운다는 겁니다. A사의 납품처는 다른 대기업 B사에는 기웃거리지 말아야하는 우리 현실과는 너무 차이가 나지요.

셋째는 원천핵심기술개발에 대규모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합니다.

뭐니뭐니해도 제대로 된 기술력 확보가 절대적입니다. 지난 4년간 정부가 부품소재기술개발자금을 한해 약 100개 기업에 지원하였습니다. 이제 그 결실이 상당수 기업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제대로 기업을 고르고 충분할 정도로 자금을 지원한 결과입니다.

2004년도 한해 지원자금이 1328억원입니다만, 이를 약 1조 정도로 늘려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2010년까지 약 100개 정도는 배출해 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분야의 기술개발수요에 대해서도 정부가 외면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제 정부의 지원도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해야 할 때입니다.

넷째는 대학과 연구기관을 핵심기술중심으로 개편해야 합니다.

일본은 지난 5년간 완제품중심 구조로부터 비롯되었던 정부 연구기관들을 53개의 전략핵심기술중심으로 대폭 개편했습니다. 예전 기계, 전자, 전기, 화학 등 분류로부터 로봇, 플라즈마, 촉매 등 전문화된 미래기술중심으로 확 바꾼 거지요. 물론 일본의 연구기관이 공무원조직이고 우리 연구기관들 대부분 출연형태에 노조가 있어서 쉽지 않은 점은 있습니다.

또한 대학도 미래기술중심으로 실사구시의 정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강아지미용, 호텔카지노를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정작 기업현장에 필요한 이공계교육은 현장과 괴리되어 늘 재교육이 필요하다지 않습니까. 만도기계와 경북대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도트랙' 같은 맞춤형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다섯째는 기업의 투자자금 공급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기업의 성장단계별로 볼 때 정부와 연관되는 지원자금의 상당수는 초기창업단계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적 어려움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또한 양산단계를 거쳐 이익창출 구조가 완성되면 코스닥이나 주식시장진입이라는 단계를 활용하는 길이 열려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기술개발이 끝나고 양산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는 기업이 대기업 등으로부터의 'OK'사인이 날 때까지의 늪은 어디에서도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시장상품과는 달리 부품소재의 경우는 채택되기까지의 '죽음의 늪'을 다시 거쳐야 하는 거지요.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부품소재 전용 사업화자금펀드'의 조성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여섯째는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중핵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합니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어 우리 영세기업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지금의 기업규모로는 거대 다국적 기업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핵기업'을 키워야 합니다.

즉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 → 현대모비스 → 부품소재기업으로 이어지는 형태와 같은 '중간 함정기업'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그런 기업들이 포츈 500대 기업 수준으로 성장하여 보쉬, 델파이, 덴소 같은 큰 세계적 기업과 경쟁해야 합니다.

일곱번째는 지원시스템을 실시간, 종합적으로 개편해야 합니다.

2001년 부품소재특별법이 발효된 이래 주요사업별로 1-2개 기관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어느 기관의 경우는 부품소재 이외에도 완제품에 관한 소·중·대형 지원사업을 동시에 수행 중에 있어 자칫 시장친화적 부품소재 육성정책의 본래의 특징적 요인이 흐려질 가능성 있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또한 아이디어 발굴, 창업, 기술개발, 양산개발, 사업화, 신뢰성확보, 시장진입, IPO(기업공개) 등 일련의 기업성장단계에 대해 일관적인 지원체제를 갖추어야 할 때입니다. 이는 국회가 심의 중인 특별법 개정에 의해 설립될 예정인 '한국부품소재진흥연구원'을 통하여 일관된 지원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 휴대폰의 라이프사이클이 3개월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속도지요. 이런 변화속도에 따라가자면 기술개발의 속도 또한 단축되어야 합니다. 공고, 신청, 실사, 평가, 투자결정, 협약, 사업착수에 따르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은 신청 당시의 신기술을 구기술이 된 뒤에야 지원하는 꼴입니다.

지난 64년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한 우리나라가 수출액 2000억달러라는 경이적인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40년간 수출이 무려 2000배 늘어나면서 세계 12위의 수출대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만, 현 기조를 유지한다는 가정 아래 2010년이면 세계 8대 무역대국까지 노려볼 만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부품소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수출경쟁력이 급속히 상승하고, 불안한 노사관계 등 안팎의 악재들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수출 기조 상승세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제 위에서 제시한 몇 가지 방향대로 산·학·연·관이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고용 없는 성장과 경기 양극화 현상의 심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봅니다.

부품소재,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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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의 모자라는 부분에 대해 지원을 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기술, 자금, 인력, 정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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