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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8일자 A34면 '김대중칼럼'
조선일보 18일자 A34면 '김대중칼럼' ⓒ 조선일보PDF

평소 '할 말을 하는 신문'이라고 선전해온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이 노무현 대통령의 'LA 발언'에 대해 토를 달고 나섰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노 대통령의 'LA 발언'은 부적절했고 '무모한 용기'였다는 식이다. 또 그래서 한미 동맹관계가 몹시도 우려된단다.

평소 미국에 대해 호의적이었고, 반대로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던 신문의 대표적인 컬럼니스트이니 그런 주장을 펴는 것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칼럼이 '외눈박이'라는 점을 필자는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김대중 칼럼 - '할 말을 한다'는 용기?] 전문보기

그는 칼럼에서 "외교에서는 할 말을 해야할 때와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안 할 말을 해야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거짓말을 해야할 때도 있다"고 썼다. 참으로 지당한 지적이라고 본다. 외교에 문외한인 필자가 봐도 분명히 그런 구석이 있을 걸로 생각된다.

노 대통령의 '무모한 용기'와 한미 관계

그의 '지당한 지적'은 이어진다. "외교에서 필요한 덕목은 용기나 사상이나 무력이 아니라 분별과 인내와 협상력이다. 때로는 굴종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비굴하리만치 사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참 점잔을 떤 그는 돌연 노 대통령을 비판 타깃으로 삼고 나섰다. 이번 노 대통령의 'LA발언'이 '시간과 장소, 또는 여건과 분위기'를 감안할 때 상식과 예의를 벗어난 것으로, 외교관행상 '결례'를 했다는 것이다. 즉 최근 선거에서 재선돼 잔칫집 분위기인 부시에게 심려를 끼칠 수 있는 얘기를 건넨 것이 비례(非禮)라는 것이다.

그가 부적절했다고 지적한 노 대통령의 'LA발언'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직 누구도 그 실체를 속시원히 확인하지 못한 '북핵'은 북한의 '자위용'일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노 대통령의 대미인식 태도다. 즉 노 대통령이 대미관계에서 이견이 있을 경우 그를 거론할 것이라고 한 것과 미국이 전략적 차원에서 한국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 대목 등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할 말'을 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미국의 속국이 아닐진대, 한미 양국이 입만 열면 떠드는 '동맹국' 관계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도의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노 대통령의 발언이 도가 지나친 게 아니라 역대 한국대통령들의 발언 수위가 지나치게 낮았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런데 김 고문은 칼럼에서 노 대통령이 잔칫집에 와서 왜 재뿌리느냐는 식으로 걸고 넘어지고 있다. 필자가 보기엔 이런 지적이야말로 부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노 대통령이 부시 재선에 적잖은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재선 후 '동맹국' 한국에 배려할 줄 모르는 부시

이번 미국 대선에서 쟁점 가운데 하나는 '이라크 전쟁'이었다. 두루 아는대로 한국은 미-영에 이어 3위의 파병국으로서 '동맹국'으로서의 의리를 할만큼 했다. 그 결과 부시의 체면을 세워주었고, 침략전쟁의 정당성 조장에도 힘을 보탰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감사 인사는커녕 찬밥 신세인 모양이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을 때 미국은 군사쿠데타에 대한 거부감은 물론 그의 좌익전력을 들어 비판적 시각을 보이다가 월남전 파병을 계기로 대한(對韓)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또 경제지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동맹국'에 대한 배려였다면 배려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한미관계사를 돌아볼 때 부시는 재선 후 적어도 '6자회담' 진행에서라도 성의를 표했어야 마땅했다.

그건 아직 경황중이라서 못챙겼다고 쳐도 근년 미국의 대한(對韓) 자세는 어떤 식인가. 지난해부터 봄부터 이런저런 경로로 '북폭설'을 흘려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가 하면 지난 여름 주한미군을 이라크에 파병하면서 한국정부와는 일언반구 사전 협의도 없이 빼내간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 건도 그야말로 '제맘대로'다. 이전부지는 물론 이사 비용에 집까지 지어달란다. 마치 식민지에서나 할 법한 행동을 거침없이 해대고 있어도 한국정부는 대꾸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민들을 오죽 무시했으면 고궁에 대사관과 직원 숙소를 짓겠다고 생각했겠는가. 이런 일들을 <조선>에서 잘 보도하지는 않지만 한 하늘을 이고 사는 동시대인으로서 그런 사실 자체를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고문은 걱정이 태산인 모양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미국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월등히 긴밀하고 친숙해져야 하는 판국에 견해 차이 해소를 위한 노력은 고사하고 부시 면전에서 정상외교의 ABC를 무시한 노 대통령의 용기있는(?) 종횡무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못할 것"이란다. 심지어 이번 노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과 부시를 의식한 컴플렉스의 결과"로 보인단다.

'할 말' 못하면 스스로 붓을 꺾어라

미국이 '시간과 장소, 또는 여건과 분위기'를 고려치 않고 제맘대로 얘기하는 건 괜찮고, 한국 대통령이 반세기만에 '할 말' 한 마디를 한 건 그리도 큰 문젠가. 국가간, 국가원수간의 예의는 나라가 크건 작건 쌍방에게 같이 있는 법이다. 대체 김 고문은 언제까지 이런 글을 쓸 것인가. 그는 어느 나라 국적인가. 칼럼 어느 구석에서도 한국적 견지에서,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바라본 대목이 없다. 이건 노무현 대통령을 '고운 시선'으로 봐달라는 주문이 아니라 한 쪽이 아예 배제됐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 "사진 찍으러 미국 가지 않겠다"고 했던 그가 취임 후 첫 미국 방문 때 '수용소 발언' 등으로 인해 국내 진보진영 및 지지자들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은 사실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필자 역시 그때 그런 비판자 대열의 맨 앞줄에 서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노 대통령이 이번엔 왜 이른바 '반미 발언'을 하게 됐을까. 독자들이 궁금한 건 바로 그런 거다. 그걸 분석하고 논평하는 게 바로 식자(識者) 언론인의 자세가 아닐까.

국제사회와 유엔이 인정한 이라크 침략전쟁에 한국 젊은이들을 파병할 때는 앞장서서 찬성하였고, 또 그들의 출국 사실조차도 보도않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무슨 낯으로 노 대통령을 '반미주의자'인 것처럼 비판한단 말인가? 그들의 패러다임에서 본다면 노 대통령이야말로 '한-미동맹'의 절대 신봉자요, 또 그래서 '이쁜' 대통령 아닌가?

'할말을 하는 신문'의 상징격인 칼럼니스트라면 그에 걸맞게 미국의 몰상식과 의리없는 처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할 말'을 하라. 그런 용기도 없다면 차라리 붓을 꺾어라. 이제 그런 붓으로 글쓰던 시대는 지났음을 알라. 덧붙여 이런 글로 독자 앞에 섬을 부끄러운 줄도 알라. 스스로를 독립국 국민이라고 자임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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