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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의 석간> 표지
ⓒ 소담출판사
<일요일의 석간>(日曜日の夕刊). 제목이 재치있다. 제목을 보았을 때 첫 느낌이, '문장이 참 간결한 것이 꾸밈없는 문체를 이루고 있겠지' 싶었는데, 역시 그렇다.

내용은 별다른 서사적 배경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서사의 무게에 짓눌려 있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이 소설의 강점이다. 일상의 가벼움, 그 가벼움의 미각 같은 것이 깔려 있어 그 맛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아주 기분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차갑지 않은 바람, 살갗에 소름이 돋을 때 가만히 다가오는 훈풍, 따스하고 기분좋은 흔들림처럼 말이다.

시게마츠 키요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아닌가 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자 가정실씨는 "그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작가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지난해 국내에 번역 출판된 <비타민F>(124회 나오키상 수상작)를 통해 우리에게 가족소설의 대표 작가로 강한 이미지를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일요일의 석간>은 일본 마이니치(매일) 신문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선데이마이니치>에 연재한 옴니버스 단편을 모은 것이다. '선데이'는 '일요일'이니까, 이 소설은 석간이 배달되지 않는 매주 일요일에 석간 대신 독자들 앞에 나타났던 셈이다. 시게마츠 키요시는 말한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일요일 저녁, 조금 쑥스러워진 아버지가 일요일에는 석간이 오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응? 석간이 어디 갔지…?" 하고 중얼거립니다. 그런 아버지들의 마음에 작은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현실의 석간이 힘겹고 슬픈 뉴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더욱 미소지을 수 있는 작은 동화 같은 이야기들을 모은 것입니다.'


일본에서 <在日朝鮮人女性文學論>을 펴낸 바 있는 이 책의 번역가 김훈아씨는 이 책의 미덕을 이렇게 알려주었다.

"작가는 우리에게 신문 기사가 아닌 내 자신과 그리고 우리 가족과 조금은 긴 호흡으로 마주하는 시간을 돌려주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들로 멀리 와 있는 우리가 조금이나마 제자리를 돌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중략)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누군가의 작은 일상에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머물면서 잔잔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읽어나가면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나 미소를 짓게 하고 또 어느새 눈가에 이슬이 맺히게 하는 이 이야기들은 시게마츠 작품 중에서도 가장 따뜻하고 경쾌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일요일의 석간> 속의 단편소설 제목들도 재미있거나 혹은 아주 간편하다. '꼼꼼남과 털털녀' '카네이션' '철봉 하느님' '초밥 드세요' '산타클로스 부탁해요' '고토를 기다리며' '감귤계 아빠' 등등. 제목부터 발랄하고 싱싱한 이 단편소설 12편은 꽃샘추위도 사라진 4월의 '꼼꼼남과 털털녀'부터 시작하여 3월의 '졸업홈런'까지 이어진다.

연재니까 똑같은 시점으로 갔겠지 싶었는데, 분위기는 비슷하다 하더라도 내레이터의 시점은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게다가 저마다 번뜩이는 참신한 이야기라 12편이 모두 매력적이다.

이 가운데 내가 특히 경쾌한 마음으로 읽었던 건 다음 세 편. 지나치게 꼼꼼하여 통산 일곱 번의 실연을 당한 남자와 더 이상 털털할 수 없는 여자와의 연애 이야기 '꼼꼼남과 털털녀'와 6월이 오면 버릇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열성팬 이야기 '오우토키의 연인' 그리고 원조교제 하는 문제아 딸과 바른생활 선생님인 아빠와의 갈등을 다룬 '산타클로스 부탁해요'이다.

여기에 한 편 더 있다. 열여덟 번째 생일에 처음 가본 노팬티 카페에서 나왔을 때, 그 카페에서 어젯밤에 아르바이트했다는 그녀(까마귀)가 생일선물로 보여준 것은 '털'이었다고 하는 추억 이야기 'September 1981'. 여성의 '털'이 실컷 나와도 전혀 음란하지가 않다. 오히려 신선하다.

"남자한테 털 보여주는 건 이게 마지막이다."
"잘 지내라. 도쿄는 진짜 재미있는 데다. 진짜로 잘 지내야 된데이."

온통 까맣게 차려 입은 시골소녀 까마귀의 억센 시골 사투리를 경상도 사투리로 응용한 번역가의 재치도 번뜩인다. 여기에 감동을 짙게 더해 주는 부분이 있다. 서른일곱 번째 생일날 '나'는 수영장에 데려갈 아이들을 앞에 두고, 그때 딱 한 번 만났던 소녀 까마귀를 떠올리며 생각하는 것이다.

'까마귀도 이제 곧 서른일곱 살이 될 것이다. 결혼은 했을까, 아이는 어떨까. 행복하게 지냈으면 한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건강하게.'

일요일의 석간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김훈아 옮김, 소담출판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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