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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의 이효석 생가 전경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의 이효석 생가 전경 ⓒ 박도
작가의 고향이 바로 명작의 고향

세계문학의 고향을 기행한 김성우(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씨는 <컬러기행 세계문학전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계문학은 향토문학이었다. 우리가 애독하는 세계문학전집 속 작품들은 거의가 작가의 고향이 무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면 작가의 신변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작가는 어릴 때 추억이나 도시보다는 조그만 시골마을에서의 추억이 세계문학의 토양이었다.

이효석 생가 마당에서 바라본 앞산
이효석 생가 마당에서 바라본 앞산 ⓒ 박도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칼브에서 태어났는데, 그 일대가 온통 전나무 숲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칼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청춘은 아름다워라> 등 무려 23편이나 된다.

그는 고향을 배경으로 한 작품만 모아 책으로 묶은 후, 그 서문에서 "내가 작가로서 숲과 시냇물을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내 고향 칼브 주위의 숲과 나골트 시내를 머릿속에 그렸고, 칼브의 다리와 교회당은 내 작품 여러 곳에 나오는데 이 풍경들이 나의 세계상을 키웠다"고 썼다고 한다.

비단 헤세뿐이랴. 알퐁스 도데도 작가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풍찻집 소식>, <월요 이야기>에서 정감 있게 그렸다.

우리나라 민족 시인 김소월은 평북 정주 곽산 마을을, 다음 회에 이을 김유정은 춘천 신동면 실레 마을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효석 생가를 찾으면서 산수를 살펴보니 그야말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으로 명작의 고향일 수밖에 없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 동이가 허생원을 업고 시내를 건너고 있다(이효석문학관 소장).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 동이가 허생원을 업고 시내를 건너고 있다(이효석문학관 소장). ⓒ 박도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 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띠로 등에 얽어매고 반 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흘린 뒤였으나 밤물은 뼈를 찔렀다.

…… 허 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뎠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 버렸다.

허비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으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이 대목은 장돌뱅이 허생원이 마침내 끈끈한 혈육의 정을 감각적으로 체득하는 절정 부분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젊은 날은 제 잘난 멋에 살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식이 그립고 소중하다고 한다.

필자가 아는 어떤 이는 손자를 껴안았을 때의 촉감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한다. 혈육간에도 피부가 맞닿을 때 더욱 짜릿한 정을 느끼나 보다.

아무튼 이 작품은 한국 단편소설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간과 자연, 서정과 서경이 잘 어우러진 예술성 높은 작품이다.

인걸은 지령

물방앗간에서 조금 오르자 이내 이효석 생가가 나왔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지만 앞면은 전시용으로 만든 후 줄을 쳐놓아 고즈넉하기 그지없었다. 생가 앞뒤 산수가 빼어나다. '인걸은 지령'이라는 말을 새삼 확인했다.

생가 본채, 지붕의 기와가 재래의 것이 아니라서 몹시 거슬렸다
생가 본채, 지붕의 기와가 재래의 것이 아니라서 몹시 거슬렸다 ⓒ 박도
그런데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생가 지붕의 기와가 재래의 전통기와가 아니고 플라스틱 개량 기와라서 나그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이다. 기왕 생가를 기념물로 일반에게 공개한다면 더 철저히 고증해 그 무렵의 생가로 재현하였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생가와 어울리지 않는 기와지붕은 옥에 티였다.

이효석의 생가라면 유족들이 매입해 관리할 수 없다면 평창군이라도 군 단위 문화재로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10년 전 필자가 그곳을 찾았을 때보다 봉평 일대는 이효석을 더 기리고 상품화하고 있었다. 작가 이효석은 두고두고 봉평, 평창 강원도의 자랑거리요, 문화상품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호텔 계단 모서리에 전시된 미야자와 겐제의 작품 <눈 건너기>중의 한 장면
호텔 계단 모서리에 전시된 미야자와 겐제의 작품 <눈 건너기>중의 한 장면 ⓒ 박도
필자가 지난해 일본 이와테 현을 갔을 때 이와테 현은 온통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으로 뒤덮여 있었다.

심지어 호텔 계단 모서리에도 겐지의 작품 속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만나는 공무원 명함에서조차 겐지의 작품 <첼로를 켜는 고슈>의 첼로를 새겨 자랑스럽게 건넸다.

생가에서 발길을 돌리자 곧 '이효석 문학관'이 나왔다. 2002년 평창군에서 세웠다는데, 이효석문학전시실, 문학교실, 학예연구실, 메밀자료실, 자료검색코너 등 필자가 둘러본 문학기념관 중 가장 잘 마련돼 있었다. 입장료 2000원을 낸 후 들어가자 문학 교실에서는 이효석의 생애가 비디오로 방영되고 있었다.

이효석문학전시실 곳곳에는 아기자기하게 가산의 문학세계를 보여주거나 작품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눈요기로 충분하였고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이효석문학관 전경
이효석문학관 전경 ⓒ 박도

‘이효석문학관에 전시된 가산의 문학세계
‘이효석문학관에 전시된 가산의 문학세계 ⓒ 박도

봉평장 풍경 모형(‘이효석문학관 소장)
봉평장 풍경 모형(‘이효석문학관 소장) ⓒ 박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허생원 일행이 밤 새워 대화 장으로 가는 길로 여겨졌다. 도중에 큰 시내가 있어서 차를 멈추고 카메라에 담았다. 아마도 이곳이 동이가 허생원을 업어서 건넸던 그 시내이리라.

대화로 가는 길의 시내. 허생원을 등에 업고 물을 건너는 동이가 그려진다.
대화로 가는 길의 시내. 허생원을 등에 업고 물을 건너는 동이가 그려진다. ⓒ 박도


이효석은?

1907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 이 마을에서 태어난 이효석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숭실전문학교,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로 재임하였다.

1928년 <유령의 도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노령근해> <상륙> <행진곡> <기우>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자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 후 모더니즘 문학단체인 '구인회'에 참여하였고 <돈(豚)> <산> <들>을 발표하면서 자연 교감을 시적인 문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1936년에는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라고 평가되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으며 심미주의 세계관을 나타낸 <장미 병들다>, <화분>을 계속 발표하여 인간의 성(性) 본능을 탐구하는 새로운 작품경향으로 주목받았다.

1942년 5월 25일 만 36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세상을 떴다. '천재는 요절'이라고 하더니, 그 역시 이상이나 김유정, 김소월처럼 일찍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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