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사람들과 늘 가는 집만 가는 사람들. 불과 3년 전만 해도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음식이라는 게 그냥 주면 주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시간 없으면 대충 시켜서 먹으면 되는 거지, 무슨 맛있는 거라는 게 대단하다고 찾아다닌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을 하다가도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를 놓고 일에 관한 회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그것도 굉장히 진지한 모습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사람들을 거의 경멸하곤 했다. 특히 미식가라는 사람들은 오죽 할 일이 없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에 경멸에 가까운 시선을 보냈다.

그러던 내가(!) 음식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늘 우리 곁에 있기에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지낸다는 공기라는 존재처럼, 음식도 그런 게 아닐까 라는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하루에 두 번 이상은 접할 수밖에 없는 음식.

이렇게 가까이 있는 소중한 음식을 멀리 했던 지난 삶을 처절하게 반성하며, 이제는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뭘 먹을까에 대해, 회식 자체보다는 회식 메뉴에 대해 더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은지라, 앞으로 가야 할 음식의 길은 끝이 없을 것이라는 예감도 든다.

등촌칼국수는 등촌동에만 있다

요즘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솥단지를 던지며 시위까지 했을까. 80:20 법칙은 음식의 세계에도 어김없이 적용이 되는 것 같다. 80%의 맛집들이 죽는다고 하는데, 20%의 맛집들은 손님들로 미어터지는 현실이다.

차 한 대도 주차할 공간도 없고, 번화가도 아닌 주택가 골목 구석에 있어 찾아가기도 쉽지 않고, 메뉴도 달랑 하나지만, 넓은 2층 건물이 매일 손님들로 가득한 곳이 있다. 등촌칼국수. 정확하게 말하자면 '등촌버섯매운탕칼국수'집이다.

혹시 "아아, 등촌칼국수~, 우리 동네에도 있는데 맛 괜찮지"하시는 분 계실지 모르겠는데, 등촌칼국수는 말 그대로 등촌동에 있는 게 진짜다. 내가 등촌칼국수를 알게 된 건 4, 5년 전쯤 일산에 있는 한 등촌샤브샤브칼국수집에서였다. 칼국수집인데 좀 특이하다 싶게 먼저 고기를 간단하게 샤브샤브해서 먹고, 느타리버섯을 집어 먹고 나서 칼국수 면을 넣어 칼국수를 먹은 것도 좋았지만 남은 국물을 이용해서 밥을 볶아주는 데 그 맛이 엄청났다. 칼국수를 먹고 남은 국물에 배합된 고슬고슬한 밥과 은은하게 퍼지던 달걀향의 볶음밥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에야 이렇게 주 요리를 먹고 난 다음에 남은 것들을 활용해서 밥을 볶아 먹는 집들이 흔해졌지만, 아직도 난 당시 등촌칼국수집에서 볶아 먹은 것보다 맛이 있는 볶음밥을 먹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만난 등촌칼국수집의 원조집은 다른 곳에 있었다. 결국 내가 제대로 된 등촌칼국수를 만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요구됐다. 하지만 등촌동에 있는 등촌칼국수집에서 맛을 본 등촌칼국수는 면발도, 버섯도, 육수도, 마지막의 볶음밥도, 정말이지 긴 세월을 기다린 보람을 느끼게 했다.

등촌칼국수의 핵심은 버섯, 칼국수, 볶음밥

등촌동에 있는 등촌버섯매운탕칼국수를 만든 주인공은 최월선씨다. 1986년 4월 3일 처음 문을 열었는데, 평범한 주부 최월선씨를 음식 장사의 길로 인도한 계기는 남편의 사업 부도였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식당이었기 때문에 메뉴도 집에서 할머니가 해주시던 칼국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 칼국수는 감자, 호박, 채소 등이 들어가는 평범한 칼국수였는데 가끔 고추장을 넣어 주시던 것이 생각나 오늘의 매운탕식의 칼국수를 개발하는 단초가 됐다고 한다. 그런데 왜 버섯을 생각했을까. 최월선씨가 강화도에 가게 되었는데 한 버섯재배 동네를 지나다 맡게 된 버섯의 향이 너무 좋아서 넣어볼 생각을 하게 됐다고.

지금이야 등촌칼국수의 메뉴 구성이 많은 사람들이 아는, 흔한 것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전혀 새로운 스타일이다. 이렇게 탄생한 버섯매운탕칼국수는 6개월 정도가 지나면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해 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맛을 보기 시작한 손님들은 2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단골이 되었다. IMF도, 최근의 경기 불황도 끄덕없었다.

등촌칼국수의 핵심은 버섯, 칼국수, 볶음밥이다. 버섯은 단 한 가지, 느타리다. 표고나 팽이 등은 미끄러운 맛이 있고 느타리는 끓여도 쫄깃하다는 장점이 있다.

칼국수를 만드는 밀가루는 강력분도 아니고 중력분도 아닌 만두를 만드는 용도의 밀가루인데 (주인 최월선씨의 말에 따르면) 밝힐 수 없는 무엇인가를 첨가한다. 면은 방화동에서 만드는, 일종의 아웃소싱 방식인데 굵은 면발이고 손으로 썰며 다른 집과는 기계에 넣는 횟수가 다르다는 정도만 얘기해 준다. 여타의 칼국수 면발과는 차원이 다른 쫄깃함의 비밀은 끝내 밝히지 못했다.

육수는 사골 국물에 최월선식 배합 양념을 쓰는데 시원함과 담백함이 생명이다. 물론 겉절이 김치는 매일 버무린다. 오전 10시에 배추를 절이면 오후 5시에 냉장고로 들어가는 과정을 매일 반복한다.

인식의 전환이 등촌칼국수를 탄생시키다

자리에 앉으면 느타리버섯과 미나리가 수북하게 쌓인 냄비가 불 위에 얹혀지고 서서히 끓기 시작하면 쫄깃쫄깃한 버섯과 상큼한 미나리를 먹고 육수의 깊이가 더해지면 칼국수를 넣고 나서 익기가 무섭게 두툼하면서도 탱탱한 칼국수를 입에 말아 넣는다.

면발을 남김없이 먹고 나면 달걀이 얹혀진 밥이 들어와 부드러운 볶음밥이 되는 등촌버섯매운탕칼국수. 좀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하나 있다. 국물은 면이 익고 나서 먹어야 좋단다. 왜냐하면 면발에 국물이 배여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감자도 같이 먹고 불은 줄이면 줄이지 절대로 끄지 말라고 한다.

하루 평균 500에서 1천 그릇을 판다는 등촌칼국수. 칼국수이기 때문에 쫄깃한 두툼한 면발이 가장 큰 매력이겠지만 매콤한 칼국수 맛을 내는 방식을 개발했다는 점과 마치 하나의 코스 요리처럼 버섯, 칼국수, 밥의 순서로 먹게 한 방식은 이 집의 온전한 공이 아닐까. 우리에게 친근한 칼국수에 약간의 새로움을 첨가한 방식으로 재미를 유도한 것, 이것이 등촌동에만 있는 등촌버섯매운탕칼국수집으로 발길을 옮기게 하는 힘인 것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