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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로 구슬치기 해 보셨나요? 모자 씌워진 부분이 뭉퉁해서 제멋대로 굴러가지요.
상수리로 구슬치기 해 보셨나요? 모자 씌워진 부분이 뭉퉁해서 제멋대로 굴러가지요. ⓒ 김용철
70년대에도 늦가을엔 먹을 게 참 많았다. 먹어 봐야 배 부르지 않는 열매와 뿌리다. 정금, 머루, 다래, 꾸지뽕, 고욤과 칡, 마 따위의 뿌리에서부터 홍시와 돌배, 아그배, 산감, 포리똥(야생 보리수)에 심지어 쥐똥까지 먹었다. 팥배, 장구밥도 즐겼다. 온 천지가 먹을 것 투성이었다. 노란 목화 꽃 빼먹다가 얼마나 지천(지청구)을 들었던가.

고구마 뿌리가 알이 튼실하게 들면 줄기만 툭 잡아채도 불그레한 고구마가 삐져나오매 손이나 옷에 쓱쓱 문질러 생으로 씹었다. 크면서 무 뿌리가 위로 자라며 통통 배가 불러온다. 노출이 진행되면서 푸르스름해지는데 학교 오가며 손으로 툭 밀어 무시뿌랭이(무 뿌리) 토끼처럼 이빨을 돌려 매운 겉을 뱉고 설컹설컹한 맛에 물기 가득 배를 채웠다.

다래. 가을 첫 서리맞으면 달보드레합니다. 아직 남부 지방엔 있을까 모르겠네요.
다래. 가을 첫 서리맞으면 달보드레합니다. 아직 남부 지방엔 있을까 모르겠네요. ⓒ 김규환
나와 머루는 인연이 많다. 머루가 어디에 있는지와 제철을 알았다. 꼴 베러 가면 토란 밭 가장자리 찔레 가시덤불에 한뭉텅이씩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해마다 그 때 그 자리를 잊지 않고 찾아가면 자잘한 알갱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꼴 베는 건 건성이었다.

꼴을 베다 낫을 툭 던져 놓고 덤불로 들어간다. 가시에 찔린 줄도 모르고 송이송이 따다 보면 한 바구니 가득하다. 쌓인 바지게 풀 사이에 구멍을 파서 토란잎이나 떨어진 칡 잎을 깔고 덮어 파묻는다. 누구라도 보면 달랄 게 아닌가. 형제끼리 나눠 먹어야 하는데 괜스레 빼앗기기 싫어서다.

지게 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세 송이를 양손에 잡고 한 알 한 알 따 먹는 재미 쏠쏠했다. 알갱이만 쏘옥 빨아 먹고는 씨 세 개를 혀에 감아 “툭” 뱉자 3연발 포탄이 날린다.

“훕~”
“푸-”

작대기마저 거추장스럽다. 옆구리에 끼고 조금 시큼한 걸 먹어 본다. 며칠 있다 따면 맛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다른 사람 천신이 될 게 분명해 하루라도 서둘러 땄으니 며칠 두면 나아지겠지. 간혹 위에 있는 서리 맞은 건 달달하다. 손과 입술이 빨갛다가 거멓게 바뀐다. 세 송이로는 부족해 지게를 작대기로 받치고 꼴을 헤집어 꺼내 먹는다.

항월 밭에서 집에 도착할 무렵엔 따면서 먹은 것까지 치면 다섯 송이가 아니라 열 송이도 넘는다. 혓바닥이 알딸딸해지며 갈라지다가 급기야 설사로 직행하고 마는 게 포도의 원조 머루다. 달다고 마구 먹는 통에 멀구(머루의 사투리) 먹고 설사하지 않은 사람 거의 없었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요즘은 개량 머루가 나와 예전 머루와 포도의 중간 크기더군요.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요즘은 개량 머루가 나와 예전 머루와 포도의 중간 크기더군요. ⓒ 김규환
들녘은 텅 비어 가고 있었다. 산도 붉게 물든 지 오래지 않아 바위가 더 선명히 보이고 헐벗어 갔다. 으름 따먹으러 다녔던 깊은 골짜기엔 어김없이 다래 넝쿨이 치렁치렁 걸려 있다. 한둘이 갔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니 아이들이 한패가 떠난다. 아버지 막걸리 주전자 하나씩 들고서….

“쩌것이 뭐시다냐?”
“뭐야? 달래야?”
“고게 아니고 뽀짝 와서 똑바로 쳐다봐 봐.”
“아, 보인다. 쩌게 다래구나.”

마침 서리 맞은 쪼글쪼글 쪼그라든 다래가 노랗다. 곧 떨어질 태세다. ‘조놈들을 어떻게 딴다지? 가만, 잡아채 볼까. 아냐 그래도 끄덕 없을 거야. 에라! 모르겠다.’

“야, 욜로 모여 봐봐.”
“대막가지로 후들겨 불게?”
“여기까장 누가 간지대를 갖관간디 그냠마.”
“글면야?”
“다 모타 보란 말이다. 한꺼번에 잡고 넝쿨을 땡기면 됭께, 암말 말고 모여.”

수가 없었다. 그냥 당겨서 흔들면 담은 몇 개라도 떨어지겠지.

“한나, 둘, 셋!”
“읏샤!”
“다시 한번 땅겨!”
“끙~”

잡았던 줄에서 손이 빠졌다. “툭!” 나자빠졌다. “어이쿠, 엉뎅이야.” 손톱만한 알갱이가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낙엽이 쌓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감쪽같이 들어간 것 절반이 넘고 눈에 보이는 건 몇 개 안된다.

“규환아, 허벌나게 달다.”
“한 개 줘 봐봐.”
“니도 줏어 묵어.”
“던지런 새끼. 한나 주면 누가 잡아 묵냐?”

입에 넣고 오물오물 우물우물했다. 씹을 필요도 없었다. 쪼그라든 다래가 몽실몽실 물컹거리며 부서지자 작은 씨가 입안에 가득 퍼졌다. 흙 내음인가. 쉰 막걸리에서 나는 술 냄새 같다. 그래도 뒤끝은 달다. 물기가 자작거리는 골짜기를 따라 하노고(한없이) 올랐다. 어둑어둑해질 녘까지 따도 아직 차려면 멀었다.

“야, 글다가 어두워지면 호랭이 나온께 인차 그만 내려가자.”
“글자.”

꾸지봉에선 하얀 뜨물이 나옵니다. 이것 따다가 가시에 찔리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립니다.
꾸지봉에선 하얀 뜨물이 나옵니다. 이것 따다가 가시에 찔리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립니다. ⓒ 김규환
조금 내려오자 하얀 파리똥을 깔린 포리똥이 붉게 익어가고 있다. 줄기를 잡아채서는 한줌씩 따서 입에 가져간다. 질겅질겅 씹히지만 단맛 하나는 끝내 주는 게 보리수다. 감난쟁이를 돌아 밭둑을 지나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제각 황토빛 밭가에는 상수리나무 한 그루가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늦여름엔 까만 찝게벌레 하늘소 잡느라 발이 닳도록 오가던 곳이다. 흙구덩이 아래로 서걱이는 상수리나무 잎이 바람에 휘날린다. 잘 마른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듯 기분 좋은 소리다.

멀뚱멀뚱 쳐다보던 우린 30여m나 되는 잘빠진 높다란 나무를 감쌌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 했다. 아이들은 상수리나무를 보자 초등학교 다니면서 큰 아이나 솜씨가 좋은 아이에게 구슬을 다 따먹혔기 때문에 둥근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

도토리는 길쭉합니다. 구슬치기를 할 수 없죠. 대체로 묵을 쒀 먹을 때는 이 도토리보다도 상수리를 많이 씁니다. 참나무는 졸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따위가 있답니다.
도토리는 길쭉합니다. 구슬치기를 할 수 없죠. 대체로 묵을 쒀 먹을 때는 이 도토리보다도 상수리를 많이 씁니다. 참나무는 졸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따위가 있답니다. ⓒ 김규환
우르르 몰려가 발로 퉁 차보기도 하지만 끄덕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황토엔 돌이 없다는 걸 안다. 밭둑으로 올라가 웃옷에 대여섯개씩 담아 뛰어온다. “휘리릭!” 던진다. 지의류가 더덕더덕 붙은 나무줄기에 꽂히더니 데굴데굴 구르는가 하면 허공을 갈라 밭으로 간다. 이파리만 맞출 뿐이다.

“앗야!”
“야, 색꺄!”
“긍께 뒤로 좀 물러 서 있어야지, 임마!”
“잘 보고 떵거라, 씨벌롬아.”

미동도 않고 아이들에게 아무 협조를 하지 않던 상수리나무도 지쳐갔다. ‘에라! 이 녀석들아 니들이 상수리를 따’하며 비웃고 있다. 방향이 바뀌며 밤바람이 한번 거세게 불더니 “후두두둑” “후두둑!” “툭!” 한 되는 될 듯한 상수리가 바닥에 우수수 굴러가고 있었다.

“야! 줏어.”

나뭇가지를 주워 와 외딴 남의 집 앞길 경사진 흙구덩이에 구멍 2개를 팠다. 손톱 안은 흙먼지와 까만 때로 그득하다. 때보들이 집에 갈 생각을 않고 상수리구슬치기에 여념이 없다. 순서를 정해 반대 구멍으로 굴려 넣는다. 유리구슬이나 쇠구슬은 지형만 고려하면 어떻게든 들어갈 법하지만 도토리보다 큰 요놈의 상수리는 둥글지만 온전히 동그랗지 않고 타원형에 가까워 제 멋대로 데굴데굴 떼구르르 아무데나 굴러간다.

“야, 서! 지미럴 조까치.”
“야, 병문이 너 가만나눠라잉~.”

서로 한번씩 굴려보지만 요행이 따르지 않고는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해는 무등산에 걸려 석양을 붉게 물들였다.

“야, 우리 낼 허자.”
“째까만 더 하다가 가자.”
“그냥 가자. 울 엄마가 언넝 오라긋써. 가면서 쌈치기 하먼 되제.”

상수리.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는 잊지 말라고 신라 때 상수리제도 설명하면서 상수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상수리.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는 잊지 말라고 신라 때 상수리제도 설명하면서 상수리를 말씀하셨습니다. ⓒ 김규환
너무 늦어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서너개에서 열댓개까지 천차만별인지라 불공정 게임이었다. 행여나 하나라도 살림을 늘릴까 혹하는 마음으로 한데 껴들어 본다. 성호가 먼저 잡았다.

“자, 맞춰 봐.”
“오른손? 왼손?”
“오른손.”
“뺑!”
“나는 두비!”
“나는 쌈!”
"몇 명씩이냐? 뺑 둘, 두비 하나, 쌈 셋이구만…. 두비 간 놈 딴 데로 가라.“
“병용이가 뺑으로 가면 딱 맞겠네.”
“다들 걸어 봐. 몇 개씩이여?”

‘짤짤이’나 ‘쌈치기’나 그게 그거다. 뺑, 두비, 쌈 중에서 두 곳만 갈 수 있다. 3의 배수 중 각자 걸었던 개수에 맞으면 아이들이 가져가는 것이고 아무도 해당 사항이 없는 ‘두비’일 때는 성호가 여섯 알 또는 아이들이 걸었던 모든 것을 가져간다.

“두지기!”

‘두비’였다. 아무도 맞추지 못했으니 성호가 모두 차지하고 말았다. 두 번 세 번 연거푸 한쪽으로 쏠리더니 나에게도 한 개밖에 남지 않았다. ‘어, 어, 이거 안 되는디….’ 성냥골로 팽이를 만들어야 했으므로 나는 물러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아이들은 모두 성호에게 거저주다시피했다.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구밥이라고 하는데 씨가 무척 크고 섬유질이 많은 게 특징입니다.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구밥이라고 하는데 씨가 무척 크고 섬유질이 많은 게 특징입니다. ⓒ 김규환
집으로 돌아와 보니 벌써 밥 먹을 준비가 끝나 있었다. 어머니는 무실가리(무시레기)로 된장국을 매옴하게 끓여 놓았다. 밥을 먹고 나서 부엌칼을 가져와 상수리 모자 부분을 잘라 성냥골을 끼워 팽이를 만들어 밤새 갖고 놀았다. 윗목과 아랫목 경사진 부분을 따라 팽이가 핑글핑글 잘도 돌았다. 자는 동안에도 내 손엔 상수리팽이가 꼭 쥐어져 있었다.

다음날 우린 여물을 썰어 놓고 병용이 대문간에 모여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로 소일하다가 뒷골 고욤나무에 올라 삐득삐득 말라가는 엄지손가락만한 고욤을 따먹고는 다들 배앓이를 했다. 어찌나 먹었던지 이틀 동안 변소에 갈 수 없었다. 삼일째 되던 날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오래 버티고 있는 동안 까치가 꿀감을 쏙쏙 빨아 먹고 있었다.

팥배. 백당나무와 비슷한 이 열매는 보기와는 달리 아주 시큼합니다.
팥배. 백당나무와 비슷한 이 열매는 보기와는 달리 아주 시큼합니다. ⓒ 김규환
야생 보리수 포리똥. '포리'는 산스크리트어인데 한자 음차로는 보리(菩離)입니다. '보리'에 나무 樹자를 붙여 보리수라 하니 헛갈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얀 파리똥이 깔려 있지요?
야생 보리수 포리똥. '포리'는 산스크리트어인데 한자 음차로는 보리(菩離)입니다. '보리'에 나무 樹자를 붙여 보리수라 하니 헛갈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얀 파리똥이 깔려 있지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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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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