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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주전골 경치
늦가을의 주전골 경치 ⓒ 박도
‘금강산도 식후경’

나그네의 옷소매를 붙잡는 대포항 저자의 아낙네들
나그네의 옷소매를 붙잡는 대포항 저자의 아낙네들 ⓒ 박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는데 그새 점심시간이 늦었다. 아내는 우선 요기부터 하자고 속초 들머리 대포항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대포항 횟집 골목에 이르자 갯냄새 물씬한 아낙네들이 나그네를 붙잡는다.

누군가 그랬다. 삶의 의욕을 잃었을 때는 시장으로 가라고. 거기에는 활기 넘치는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광어 한 마리, 오징어 한 마리, 고등어 한 마리를 담은 한 채반이 2만원이라고 했다.

조금 머뭇거리자 잡어 한 마리를 덤으로 더 얹었다. 이곳 생선 값은 날짜와 몰려든 손님에 따라 춤을 춘다. 고등어 회는 처음이지만 그런대로 별미였다. 울산 지방에서는 갈치도 회로 먹는다고 했다. 얼큰한 매운탕에 밥을 한 술 들자 갑자기 행복해진다.

낯선 여행지 노점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아내는 감자시루떡을, 나는 새우튀김을 한 봉지 사들고 차에 올랐다. 이대로 설악산으로 갈까, 아니면 주전골로 갈까? 아내가 내 의사를 묻기에 ‘기사 맘대로’라고 했더니 남설악 오색 주전골로 향했다.

가을 빛깔이 짙게 물든 주전골의 비경(1)
가을 빛깔이 짙게 물든 주전골의 비경(1) ⓒ 박도
남은 해가 얼마 되지 않아 숙소에다 짐을 풀고 곧장 오색 주전골로 향했다. 이곳 들머리 너럭바위는 ‘오색약수’로 이름난 곳이다.

‘오색약수(五色藥水)’ 이름은 약수 맛이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부른 이름이라는 설과, 약수터에서 약 1.5킬로미터 올라간 골짜기에 있는 오색석사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절 화원에는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서 이 일대 지명이 오색으로 되었다고 한다.

오색약수는 깊은 바위를 뚫고 세 곳에서 분출되고 있으며 용소폭포로 가는 상류 쪽의 약수는 최근에 발견이 된 바, 철분이 하류보다 많다고 한다. 하류 쪽의 두 군데 약수는 발견 초기부터 있었던 곳으로 탄산 성분이 상류 쪽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색약수 맛의 특징은 사이다처럼 톡 쏘고 짜릿한 독특한 맛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주전골 들머리의 옛 약수터는 언저리의 무분별한 개발로 약수가 솟아나지 않아서 수맥이 끊어진 상태였다. 명물 오색약수터도 이제는 전설로만 남을 지경에 이르렀다.

가을 빛깔이 짙게 물든 주전골의 비경(2)
가을 빛깔이 짙게 물든 주전골의 비경(2) ⓒ 박도
네 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주전골

주전골은 오색약수터에서 선녀탕을 거쳐 점봉산(1424m) 서쪽에 이르는 계곡이다. 남설악의 큰 골짜기 가운데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계곡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의 경치가 그 나름대로 다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 단풍이 가장 빼어난다고 한다.

주전골은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 골이 깊으며 고래바위·상투바위·새눈바위·여심바위·부부바위·선녀탕·십이폭포·용소폭포 등 곳곳에 기암괴석과 폭포가 이어져 풍광이 빼어나다.

매표소에서 용소폭포까지는 2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로 등산로가 험하지 않아서 노약자들도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를 수 있으며 오르는 도중에 언저리 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주전골’이란 이름은 용소폭포 어귀에 있는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옛날 이 계곡에서 승려를 가장한 도둑 무리들이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등산로 길섶의 돌탑
등산로 길섶의 돌탑 ⓒ 박도

선녀탕의 명경지수, 떨잎이 물위에 떠 있거나 가라읹아 있다
선녀탕의 명경지수, 떨잎이 물위에 떠 있거나 가라읹아 있다 ⓒ 박도
주전골로 들어서자 선계로 들어온 듯, 그 비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필자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아도 우리나라 산하처럼 아기자기하고 경치가 빼어난 곳이 없다.

이런 경치를 나 혼자만 보기 아까운 터에 이번 가을 여행길에는 아내와 동행이라 함께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대부분 활엽수들은 모두 잎들을 떨어뜨리거나 떨어뜨렸지만 아직도 지는 가을이 아쉬운 양 마지막 정열을 태우는 단풍나무도 있었다.

선녀탕에는 선녀들이 목욕한 흔적은 보이지 않고 떨잎(낙엽)들이 물위에 떠 있거나 물아래 가라앉았다. 지나는 등산객들이 산신에게 바친 듯 돌탑을 군데군데 싸두었다. 골이 막힌 듯 다가가면 다시 골이 나타나기를 여러 번 끝에 용소폭포에 이르렀다.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의 배경이라도 되는 듯 아름다운 언저리 경치와 폭포, 그리고 연못이었다. 폭포 위를 오르자 바위마다 온통 돌탑을 쌓아두었다. 사람들은 저 돌탑을 쌓으면서 마음 속으로 무엇을 빌었을까?

용소폭포에서 내려다보는 주전골 경치도 보통이 아니었다. 이런 비경을 두고도 왜 신혼부부들은 동남아나 괌을 찾을까? 어쩌다가 제자들이 주례를 부탁해 오면 나는 신혼 여행지를 국내로 할 것을 권유한다. 지난 해 겨울 고3때 한 반이었던 남녀 두 제자가 찾아와서 주례를 부탁하기에 바로 이곳 주전골을 신혼여행지로 추천해 줬더니 그대로 따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무 때라도 오면 결코 후회치 않을 곳이 남설악 주전골 계곡이라고 감히 추천하는 바이다.

용소폭포
용소폭포 ⓒ 박도

용소폭포 위의 돌탑
용소폭포 위의 돌탑 ⓒ 박도

주전골 계곡의 떨잎들, 갑자기 저 떨잎처럼 지고 싶었다
주전골 계곡의 떨잎들, 갑자기 저 떨잎처럼 지고 싶었다 ⓒ 박도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는 단풍나무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는 단풍나무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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