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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해수욕장 자갈 위에서 한 컷!
홍도 해수욕장 자갈 위에서 한 컷! ⓒ 홍좋사모공동취재단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건만 섬에서 맞이한 아침은 상쾌했다. 흑산도는 숙식을 함께 해야 아침을 해결할 수 있다. 사람들은 민박집 아주머니가 차려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허겁지겁 밀어 넣고 혼자서 선장을 만나러 나갔다. 항에 나가보니 2박 3일로 나가는 영복호 선장님과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서울에서 밤새 고속철도를 타고 내려온 KBS 제작팀이 선주협회 회장님과 통화가 되었다며 첫 배에 올라 리포터와 함께 들어온다고 한다. 나는 상황이 좋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돌아가라고 했지만 그냥 오겠다는 거다.

선장은 자신들은 먼 바다로 나가니 다른 배를 접선시켜주겠노라고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홍어 배를 타겠다는 맘이었으나 딸린 식구들과 동행자들을 두고 혼자 주말을 넘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선으로 홍도 인근에서 하루만에 돌아오는 배에 무전을 쳐보기로 했다. "치지지직" 곧 "바닷물결도 세지만 홍도 부근은 아직 어장이 형성되지 않아서 고기 구경하기 힘들다"는 전갈이다.

홍도유람선과 어선의 잠녀들
홍도유람선과 어선의 잠녀들 ⓒ 홍좋사모공동취재단

하늘이 돕지 않고 세상사 맘 같지가 않다. 막막했다. 진퇴양난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언제 이 먼 섬까지 또 날 잡아 올거나. 회원들에게 안 된다는 말을 전달할 엄두도 나지 않았고 실망스런 그 눈빛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문제다.

과감히 버리자. 먼 바다에서 3일을 버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까운 홍도 쪽은 아직 산란하러 돌아오지 않았기에 홍어 구경하기 힘들다니 도리가 없다. 결국 홍어나 실컷 먹고 유랑이나 떠나기로 급선회했다. 이런 결정을 내리니 덜 깬 술이 확 밀려왔다.

"여러분, 이번에는 안 되겠습니다. 홍도 구경이나 갑시다. 다들 챙기세요."
"한 두 명이라도 안 된데요?"
"예, 도저히 맞지가 않아요. 다음을 기약합시다."

남문바위로 접근하면서 물빛이 은색으로 부서졌다.
남문바위로 접근하면서 물빛이 은색으로 부서졌다. ⓒ 홍좋사모공동취재단

이영일씨가 인솔하여 홍도로 향했다.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니 부담이 훨씬 줄었다. 조오련 선수 같으면 1시간 남짓이면 충분히 도착할 가까운 거리니 20여 분 가면 되겠지.

KBS 제작진이 탄 목포발 배가 20여 분 연착해 9시 50분께 왔다. 전화가 오갔다. 상황이 좋지 않아 가능하면 흑산도에서 바로 목포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해도 온 그들이다. 월요일 아침 방송인데 토요일에 막무가내로 왔으니 내 책임은 아니다.

우리 배가 움직일 채비를 한다. 전화로 마저 설명을 해주고 홍도 유람을 떠났다. 40여 분 후에 도착했다. 홍도(紅島)! 아침 햇살이 바위 절벽에 부딪쳐 유난히 붉다. 동사면(東斜面)에 노출되어선가. 말 그대로 홍도(紅島)다. 붉은 섬이다.

남문바위 정면에서 바라보며 오래 서 있었다
남문바위 정면에서 바라보며 오래 서 있었다 ⓒ 홍좋사모공동취재단

섬이 북적인다. 이 곳 사람들은 배 시간에 맞춰 하루 서너 차례 나와 손님을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간다. 이 궁벽하고도 아름다운 섬에선 어느 집엔가 꼭 들어가야 머물 수 있으니 장삿속으로만 보면 이 얼마나 좋은가. 배가 실어다 놓으면 짤막한 대화 몇 마디로 고객을 확보하니 참 좋겠다.

길가에 줄줄이 널어놓은 멸치를 보며 오토바이만 다닐 수 있는 좁다란 마을길을 따라갔다. 홍도 초등학교를 지나 해수욕장이다. 섬엔 노란 곰취 꽃이 유난히 환하게 웃고 있다. 모래는 한줌도 찾기 힘들다. 둥근 자갈이 "자각자각" "자글자글" 반긴다.

이 곳 사람들은 농사지을 땅이 없어 뭍에서 농산물을 사다 먹는다고 한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깔끔하게 끓여준 매운탕을 놓고 바다를 보며 점심을 먹은 뒤 유람선에 올랐다. 전복과 해삼 따위를 채취하는 '잠녀'(해녀는 일본 사람들이 잠녀를 낮춰 부른 말) 예닐곱이 탄 배가 지나간다.

천연 분재가 미덥다. 홍도는 전체가 해송덩어리다. 산 위쪽 흙이 조금 있는 곳엔 더덕이 많이 난다.
천연 분재가 미덥다. 홍도는 전체가 해송덩어리다. 산 위쪽 흙이 조금 있는 곳엔 더덕이 많이 난다. ⓒ 홍좋사모공동취재단

무에 그리 볼 게 많다고 이 작은 섬이 2시간이나 걸릴까 보냐. 반신반의하며 홍도를 훑어나갔다. 사람들은 2층으로 올라와 바람을 가르며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안내원이 지시한 곳을 좇아가기 바쁘다. 입담이 어찌나 좋은지 푹 빠져 있다.

곧바로 장관이 펼쳐졌다. 남문바위를 끼고 한동안 배가 꿈쩍하지 않는다. 물갈퀴도 멈춰 있다. 우르르 몰려들어 기념사진을 찍는다. 남문바위 주위로 세상의 모든 명품(名品)을 모아놓은 건가. 10여분 머물렀을까. 병풍바위를 아쉽게 지나 유배 온 선비가 일생동안 가야금을 탔다는 '칠금리동굴' 앞에 있다. 시루떡이 차려 있고 작은 바위섬들이 곳곳에 떠 있다. 방향이 바뀌어 새우 대가리 쪽 서편으로 가니 점심 먹었던 해수욕장이다. 거북바위, 부부탑, 석화동굴 등 장관의 연속이다.

바위섬 벽엔 곧 떨어질 듯 돌이 쪼개지고 나무가 거꾸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래 목숨은 쉬 끊어지지 않는 거야. 저 집요한 생명에 대한 집착, 누구도 쉽게 거둬들일 수 없는 질긴 희망의 끈을 사람들은 하찮게 여겨 쉬 거두기도 하고 놓기도 한다. 타인의 목숨마저 맘대로 한다.' 부끄러웠다 자연을 보면서.

돌탑이 유난히 붉다.
돌탑이 유난히 붉다. ⓒ 홍좋사모공동취재단

홍도는 철분덩어리다. 그래선지 반대편은 역광(逆光)으로 더욱 아름답다. 철분을 먹고 해송(海松)이 섬 전체를 덮어 감싸고 있다. 300~400년 장구한 세월 겨우 한 자(尺 30.3cm)에서 50cm가 컸다니! 커봐야 1m다. 해풍에, 소금물에 절어 산다. 못 자랐다. 양분이랬자 빗물이 전부요, 소금 샤워를 하며 산다. 꼬불꼬불 기묘한 형상은 제각각이지만 이보다 단단한 나무가 있을까 보냐.

솜씨 빼어난 분재 달인이어도 흉내낼 수 없을지다. 흙 한 줌 없는 바위에 둥지를 틀어서는 바위틈을 뚫어 비집고 들어가는 힘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어느 한쪽에만 있다면 모를까 섬 자체가 자연분재 농원이다. 거제 해금강 해상공원 외도의 인공미라곤 찾아볼 수 없다. 누구도 손대지 않은 총 천연(天然)이다. 난 고새 욕심이 발동했다. '저 바위와 소나무를 툭 찢어 서울에 갖다 놓으면 1억 받아도 되겠는 걸.' 못된 맘을 가졌으니 요 모양 요 꼴인가.

멀리 홍도2구 등대가 보였다. 등대 주변 너른 바다에서 홍어가 잡힌단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이 마을이나 등대 숙소로 내년 휴양지를 점찍어 놓았다. 독립문바위와 탑섬을 지나 북쪽을 끼고 돌자 흑산도가 가까이 펼쳐져 있다.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캬. 같이 간 회원 중 한명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캬. 같이 간 회원 중 한명 ⓒ 홍좋사모공동취재단

잔잔한 파도를 침대삼아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다. 해강이도 잠이 들었다. 1층으로 내려 보내려고 안고 계단을 내려갔다. 두 걸음 내려갔을까 거센 바람에 애지중지하던 '백아산철쭉제' 기념 모자가 날아가고 말았다.

쳐다볼 상황이 아니라 바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어? 아이가 걸렸나?' 위험천만한 자세로 뒤를 돌아보았다. "놔 놔, 놓으란 말야. 해강아 손놓아." 바람이 거세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보다. 더 크게 세 번을 말하니 자던 해강이가 깨어 손잡이를 슬며시 놓는다. 본능이었던가.

1층에 눕혀놓고 올라왔다. 안내원도 마이크를 놓고 쉬고 있다. 잔잔한 명승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지친 기색이다. 슬픈여바위와 공작새바위를 끼고 홍도항을 지나니 1시간 40분만에 일주를 마쳤다. 허기가 밀려왔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진 찍고 눈도장 찍느라 바삐 움직인 탓이다.

유난히 붉은 홍어회. 누구든 이걸 먹고는 군말 나오지 않는다. 찰떡이니까.
유난히 붉은 홍어회. 누구든 이걸 먹고는 군말 나오지 않는다. 찰떡이니까. ⓒ 홍좋사모공동취재단

마른오징어에 가져간 고량주로 목을 축이고 있던 차 처음 지났던 남문바위로 접근했다. 까만 잠수복 차림 잠녀 몇 명이 배 옆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우르르 1층으로 내려가 자연산 광어와 전복, 소주를 돈과 바꿔치기 한다. 어부 중 칼잡이 손이 빨라지자 뚝딱 한 접시씩 차려져 초고추장과 함께 건넨다.

"자~ 한잔 합시다." "건배!"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질 않는군요." "홍어 배 타지 않아도 후회는 없습니다." 몇 순배 돌자 술이 떨어져 더 사왔다. 고소함의 극치를 경상도는 '꼬시다'하지만 나는 '고습다'가 아니라 '꼬습다'고 한다. 꼬순 맛과 흐물흐물하지 않고 쫄깃한 맛이 퍼지며 사르르 녹는다. 배 멀미가 뭔지 모르고 선상에서 회 한 접시로 끝내는 이 기분.

홍도2구의 주변 뱃길을 유도하는 등대가 말끔하다. 내년 5월 이후 4개가 있는 방을 민박으로 받는다고 한다.
홍도2구의 주변 뱃길을 유도하는 등대가 말끔하다. 내년 5월 이후 4개가 있는 방을 민박으로 받는다고 한다. ⓒ 홍좋사모공동취재단

홍도에 내려 흑산도로 돌아와 삭힌 흑산도 홍어에 주인 할머니가 손수 빚은 막걸리로 피로를 씻었다. 방송 촬영도 계속됐다. 5일 가량 삭혔다고 하는데 생물과 또 다른 느낌이다. 저녁을 먹고 곤드레만드레 잠과 술에 취해 일어나 보니 5시. 홍어경매는 열리지 않고 썰렁하다. 아무리 비싸도 60~70만원이던 8kg 1번치가 지난 추석 때는 116만원이었단다.

발효는 삭이기보다 삭히는 거다. 노폐물까지 쓸어내리는 발효식품은 중독성이 강하다. 고추장, 된장이 그렇고 김치, 장아찌, 젓갈이 그렇다. 그 으뜸이 한번 맛들이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홍어다. 흑산홍어!

차 시간에 쫓겨 목포에서 대포 한잔 나누지 못했지만 승용차에 탄 몇 사람은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에 들러 비빔밥 먹는 걸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이번 여행의 최대 수확은 직접 홍어 배를 탈 수 있는 선을 잡았다는 것이다. 다음엔 더 많이 공부하고 떠나야겠다. 한 번 더 가면 더 많은 걸 배워오겠지.

진짜 방짜인지는 몰라도 전주발효식품엑스포(매년 10월 20일께 열린다)에서 먹은 전주 비빔밤 한 그릇 먹느라 서울 올라오는 길이 멀기만 했다.
진짜 방짜인지는 몰라도 전주발효식품엑스포(매년 10월 20일께 열린다)에서 먹은 전주 비빔밤 한 그릇 먹느라 서울 올라오는 길이 멀기만 했다. ⓒ 홍좋사모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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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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