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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단풍이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주전골)
철 지난 단풍이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주전골) ⓒ 박도
늦가을 여행을 떠나다

먼 가을산 비탈진 돌길을 오르노라니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두세 집
수레를 멈추고 단풍 숲을 바라보니
서리에 물든 잎이 봄꽃보다 더 붉네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의 절구 '산행'이다. 봄, 가을은 언제나 짧았다. 지난 세월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기에, 여름 겨울은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많이 했지만, 가을 여행은 별로 하지 못했다. 봄은 그런대로 봄 방학이라 하여 학년이 바뀌는 2월 말 무렵부터 한 열흘 쉴 수 있고, 그 무렵은 성수기가 아니라 조촐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주전골 용소폭포로 가는 오솔길, 떨잎이 한창 지고 있다
주전골 용소폭포로 가는 오솔길, 떨잎이 한창 지고 있다 ⓒ 박도
지금은 백수라, 주말과 절정기를 피해 이런저런 사정을 다 가리다 보니 단풍이 한물 간 때에야 집을 나섰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한창 붐비는 철에 인파를 헤집고 다니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차례 묵은 적 있는 남설악 주전골에다 숙소를 예약한 다음날 아침, 느긋하게 늑장을 부리면서 채비를 차린 후 아내의 차에 올랐다. 둔내 IC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탄 뒤 진부 IC에서 빠져 국도를 타고 오대산 쪽으로 달렸다. 월정사와 상원사는 여러 차례 들렀던 곳이라 다음으로 미루고 소금강 계곡에 가고자 진고개로 향했다.

오대산에서 주문진으로 가는 진고개 정상
오대산에서 주문진으로 가는 진고개 정상 ⓒ 박도
마른 나뭇가지 위에 까마귀

날씨가 끝내 주게 좋다. 거기다가 도로도 한적하기 그지없다. 오대산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6번 국도는 3~4분은 달려야 차 한 대가 지날 정도로 뜸했다. 여행은 비수기에 다녀야 대접도 받고, 제대로 볼 수 있으며 숙박료도 싸다.

한 번은 8월 하순경 동료들과 함께 변산반도에 갔더니 민박집에서 하루 숙박료로 1만 5천원을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어차피 텅 비는 방이라면서 마음대로 쓰라고 해 각자 한 방씩 차지해서 아주 쾌적하게 묵고 온 적도 있었다.

진고개 정상 휴게소에는 차들도 관광객도 더러 있었다. 한 농사꾼이 고산에서 재배했다는 호박고구마와 양파를 팔았다. 아내는 이런 산골에서 나는 고구마는 잘 썩지도 않는다면서 고구마 한 박스와 양파 한 자루를 사서 트렁크에 실었다.

소금강 가는 길섶의 감나무
소금강 가는 길섶의 감나무 ⓒ 박도

소금강 계곡의 명경지수
소금강 계곡의 명경지수 ⓒ 박도
비록 단풍은 절정을 지났지만, 산 전체가 추색이 짙게 들어 더 없이 아름답다. 길섶의 감나무는 잎은 다 떨어진 채 벌거숭이 감을 탐스럽게 매달고 있었다. 소금강 계곡에 들어서자 계곡물이 더 없이 맑았다. 잎이 다 진 마른 가지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서 고독을 즐기고 있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흥얼거려진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마른 가지에서 고독을 즐기는 까마귀
마른 가지에서 고독을 즐기는 까마귀 ⓒ 박도
소금강이 치마를 약간 걷어올린 채 속살을 보이며 나그네를 향해 손짓한다. 그러나 이날은 주전골에서 묵어야 했기에 차머리를 동해 바다로 돌렸다. 20여 분을 달리자 탁 트인 동해바다가 펼쳐졌다. 주문진을 지나 한참을 더 달리자, 나타난 휴게소가 38선 휴게소. 차를 멈추고 원한의 38표지석과 망망대해를 카메라에 담았다.

1945년 8월 10일 미 육군성차관보 사무실에서는 일본군 항복에 대비해 한반도를 38선으로 분할해, 그 이북의 일본군은 소련군에게, 그 이남의 일본군은 미군에게 항복케 하라는 안을 작성한 바 있다. 그때의 38선이 전후에도 분단의 선으로 남아 6·25 한국전쟁 이후 휴전선으로 오늘까지 이어졌을 줄이야.

원한의 38 표지석
원한의 38 표지석 ⓒ 박도

한국전쟁 중의 38선
한국전쟁 중의 38선 ⓒ NARA

쪽빛 동해바다
쪽빛 동해바다 ⓒ 박도

한적한 가을 바다
한적한 가을 바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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