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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루 옆에 자리잡은 5평 정도의 경내 사진관
보제루 옆에 자리잡은 5평 정도의 경내 사진관 ⓒ 서정일
화엄사를 찾은 사람들에게 "경내에 사진관이 있는지 아세요?"라고 물으면 유심히 살피지 않고 지나친 사람들은 "있다"는 대답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례 화엄사 내에는 사진관이 있다.

87년 3월 22일부터 시작했으니 17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보제루 옆 5평 정도의 크기에 사진관은 자리하고 있다.

20여 년 전 스님을 알게 돼 경내사진관을 경영했다는 윤용호(66)씨, 18살 때부터 사진관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니 윤씨의 사진경력도 50년이 다 돼간다. 사진인생의 절반을 화엄사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선친께 물려받은 다섯 마지기 정도의 논이 있었지만 몸이 약해 기술을 배워야겠다 싶어 사진을 하게 되었다는데 지금 와서는 후회도 된다고 한다.

멋지게 찍어달라며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윤용호 사진사
멋지게 찍어달라며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윤용호 사진사 ⓒ 서정일
"여기 사진관 전성기는 그래도 흑백 사진 때였어. 사진기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는 많이들 찍어줬지. 그런데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가 나와서 거의 매일 공치다시피 한다니까." 분주했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는 그에게 어쩌다가 사진에 관해 말이라도 걸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날은 행복한 날.

이곳을 사용하고 있으니 화엄사에 공양으로 보답을 드린다면서 "장사가 잘 되어야 많은 공양을 드릴 텐데"하는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거의 매일 아침 8시경에 출근하여 4시경에 퇴근하는 윤씨에게 "점심은 싸 오세요?"라고 질문하니 껄껄껄 웃으시며 "나도 반 스님이 다 되었네, 절밥만 20여년 가까이 먹었으니"한다. 아마도 절에서 식사를 해결하시는 듯했다.

"10여년 전일까, 웬 남녀 한 쌍이 사진을 찍겠다고 왔어."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예전 카메라가 없던 시절엔 사진을 찍으러 왔다면 그건 카메라 장비와 함께 필름까지 넣어 사진사가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찍어줬던 모양이다. "그날도 내가 그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려고 장비와 필름을 준비해서 갔는데…."

그렇게 말꼬리를 흐리시더니 갑자기 어디서 왔냐고 물으신다. 그리고 빗으로 머리를 빗더니 화엄사 무인판매소라는 글씨가 잘 나오게 한 장 찍어달라신다. "이렇게 신문을 보고 있으면 되는가?"라고 하면서 모델(?)같은 포즈도 취하면서….

사진 한 장 찍어드릴 테니 나머지 얘기 해달고 조르고 졸라서 들을 수 있던 얘기엔 씁쓸함이 있었다. "도로옆 개울가로 가더군. 경치가 좋다면서 그러더니 말이야." 또 얘기를 머뭇거리신다.

"갑자기 달력을 만드는데 수영복 입은 걸 찍어야 한다면서 나 보고 안 보이는 데로 가 있으라고 하잖아." 어쩔 수 없이 윤씨는 황당하지만 손님들이 하자는 대로 멀리 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어 가보니 그 비싼 카메라를 몽땅 들고 사라져버린 뒤였단다. 이런 손님 저런 손님 그 많은 손님 중에 그 사건을 떠올려 얘기하시는 건 아직까지도 그 카메라가 아까우신가 보다.

마루앞에 있는 무인 필름 판매대
마루앞에 있는 무인 필름 판매대 ⓒ 서정일
죄송하지만 드릴 수밖에 없는 질문이기에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데 어떻게 생활하세요?"하니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지. 여기 봐 필름도 무인판매로 하잖아. 알아서 돈 놓고 가시라고." 그러고 보니 정말 무인판매소라고 써 있었고 옆엔 잔돈과 몇 장의 천원짜리가 있었다.

지난 20여 년간 보제루 한편을 지키고 있는 화엄사경내 사진관. 윤용호씨의 수행하는 마음을 닮아 그 많은 사연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또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하는 사무실 내부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하는 사무실 내부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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