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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송으로 둘러싸인 장릉.
적송으로 둘러싸인 장릉. ⓒ 한성희

나무들을 인공적으로 심은 거냐, 원래 있던 것이냐, 특별히 소나무를 심는 이유가 있냐, 사초지와 능 주변의 바위들은 일부러 갖다놓은 것이냐, 지붕 처마 끝에 있는 조각은 무엇이냐 등등.

침엽수가 주를 이루는 이유는 풍수적인 해답밖에 들려줄 수 없다. 침엽수는 여자의 음모를 상징하며 무덤 앞에 서 있는 남근을 상징하는 망주석과 음양조화를 이루어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는 속설이 있다는 정도로.

그 다음에는 망주석 앞에 가서 유심히 살펴보고 온 사람의 질문이 뒤따른다.

"이건 뭐죠?"
"그건 세호(細虎)라고 합니다."
"다람쥐라고 들었는데요?"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정식 명칭은 세호라고 해요. 세호가 어떤 동물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람쥐는 아닙니다."

세호가 상행하는 장릉의 망주석.
세호가 상행하는 장릉의 망주석. ⓒ 한성희

한자의 뜻풀이대로 하면 아주 작은 호랑이 문양이 되겠지만 아무리 봐도 호랑이 비슷하기는커녕 닮은 구석도 없다. 아직 세호를 새기는 목적과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오리무중의 동물로 남아 있다.

"뭘 의미합니까? 왜 거꾸로 머리가 내려갔지요?"
"밑으로 내려간 건 하행이라고 합니다. 저쪽은 꼬리가 올라가는 상행이니 한 번 가보세요."

이런 질문이 나오면 골이 아프다. 상행과 하행의 위치에 따라 묻힌 왕과 왕비의 혈통이 정실인지 첩인지를 뜻한다고도 하기도 하고, 위와 아래를 보고 있는 것은 땅과 하늘의 복을 지킨다는 전해오는 속설도 있으나 정설은 아니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이것도 정답이 될 수 없는 것은 왕릉의 세호가 한 쌍 모두 하늘로 올라가는 상행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공릉에 망주석이 없는 이유를 묻는 사람도 있다. 세자빈으로 묻혀서 나중에 능으로 추존된 것이라 석물이 단출하다고 대답하지만 공릉과 마찬가지로 추존된 능인 영릉에는 망주석이 있고 원과 사대부의 묘에도 있는 것을 보면 이 역시 정확한 답은 될 수 없다. 풍수적인 이유에서 세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순릉의 능을 지키는 석호와 석양은 조선초기 석물이고 위의 망주석 석물과 비교된다.
순릉의 능을 지키는 석호와 석양은 조선초기 석물이고 위의 망주석 석물과 비교된다. ⓒ 한성희

순릉의 망주석 세호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두루뭉실 생겨 형상이 분명치 않다. 장릉의 세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것과 비교된다. 능의 석물이 조선후기로 내려오면서 섬세하고 분명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차이는 세호에서도 나타난다.

간혹 석상이나 석호 등 석물들이 후에 다시 만든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도 있지만 당시의 석물 그대로라고 하면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세호가 '하늘로 가냐 땅으로 가냐'에서 질문이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세호에 뚫린 구멍까지 묻는 것이 사람들 호기심이다. 참 자세히 보기도 잘 본다. 왜 구멍이 한 개도 있고 두 개도 있냐고 까지 묻는다.

"저 구멍의 용도는 아직 밝혀진 바는 없지만 제례 의식을 할 때 깃발을 꽂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습니다."

석물을 보고 나면 몸을 돌려 정자각을 내려다보는데 장명등과 정자각 후문과 정문 홍살문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것을 이곳에 올라와야 볼 수 있기도 하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번엔 정자각에 대해 꼬치꼬치 묻기 시작한다. 정자각은 목조건물이라 전란이나 화재를 당하면 타버리기 때문에 남은 주춧돌 위에 새로 보수한 곳이 많다.

우아한 맞배지붕의 영릉 정자각.
우아한 맞배지붕의 영릉 정자각. ⓒ 한성희

거의 모든 정자각이 맞배지붕이지만 드물게 호화스럽게 팔작지붕의 정자각이 있는 왕릉도 있다. 조선건축물에서 맞배지붕은 부속건물이거나 작은 규모의 건물일 때 올리는 가장 간단한 지붕 형태다.

경복궁의 근정정과 경회루 같은 궁궐의 주건물은 팔작지붕이고, 맞배지붕은 부속건물인 종묘나 능의 정자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맞배지붕, 팔작지붕, 우진각 지붕이 조선 건축의 기본적인 지붕구조다. 남대문이 쉽게 볼 수 있는 우진각 지붕이다. 우진각 지붕은 도성의 성문이나 궁궐의 대문에 주로 사용한다.

맞배지붕의 정자각은 팔작지붕처럼 화려한 곡선이 없어 수수하긴 하지만 선이 간결한 대신 무게가 있고, 수수한 평상복으로 차려입은 왕비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품위가 있다. 호기심 많은 사람은 눈도 좋아서 정자각 추녀마루에 얹힌 잡상(雜像)을 놓치지 않는다.

정자각 추녀마루의 용두와 잡상.
정자각 추녀마루의 용두와 잡상. ⓒ 한성희

"저건 뭐죠?"
"잡상이라고 하는데요. 정자각에는 손오공(손행자), 삼장법사(대당사부), 저팔계가 있죠. 제일 꼭대기에 있는 것은 용의 머리인 용두구요."
"잡상은 왜 올려놓습니까?"
"악귀를 막는다는 벽사의 의미가 있죠."

잡상이란 말 그대로 잡동사니 동물과 사오정도 포함돼 있고 이귀박과 삼살보살에 이르기까지 10여 종이 있다. 그렇지만 잡상은 아무나 지붕에나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귀하신 토우들이다. 잡상은 궁궐과 궁궐에 관련 있는 건물에만 올릴 수 있다. 능도 왕과 왕비가 주무시는 곳이니 정자각에 잡상이 올라간다.

절의 지붕에 잡상이 있는 경우도 왕실의 제사를 지낸다거나 능 주변에서 축원을 하는 등, 왕실과 관련을 맺은 사찰에 국한된다. 하루아침에 몰락한 회암사의 발굴터전에서 잡상이 나온 것은 이성계와 문정왕후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왜 사오정은 없습니까?"

하긴 서유기의 주인공 중에 사오정만 빠진 이유가 궁금하긴 할 것이다. 왕실 관련 건물에만 올라가는 잡상은 홀수로 올리기 때문에 사오정이 빠진 것이다.

잡상의 유래는 송나라에서 전해졌다고 하며 임진왜란 이후 조선 궁궐 건축물에 유행했고 일본에는 없다. 중국에서는 황제 궁에 11개를 올리고 세자궁은 9개 하는 식으로 지위에 따라 숫자가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는 경복궁 경회루에 11개가 올라가 가장 많은 잡상이 있다. 잡상은 생김새가 알아차릴 수 있게 분명하지 않고 가지가지다. 손오공만 해도 모자를 쓴 잡상이 있는가 하면 모자를 벗긴 잡상도 있다.

'잡상'이라고 발음하기가 좀 거북스러울 정도로 이름이 잡스런(?) 편인 잡상의 또 다른 명칭은 '어처구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도 잡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수가 건물을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올려놓는 어처구니를 깜빡 잊고 올려놓지 않아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기껏 잘 지어놓고 어처구니를 올리지 않으면 미완성이 되니 작은 일을 마무리하지 않아 어이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잡상이나 어처구니나 발음상으로 우스꽝스러워 왕궁 지붕에만 올라가는 귀하신 몸치고는 이름 복은 별로 없나보다.

공릉에 대해 해설을 하다보면 호기심 많은 사람 덕분에 이렇게 알쏭달쏭한 세호의 정체유무부터 조선지붕 종류까지 줄줄 꿰어야 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도 생긴다. 그렇지만 눈으로 보는 것마다 많은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 반갑고 상세한 해설을 해주는 일이 더 보람 있다는 해설사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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