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성전에 모셔 있는 공자의 모습
대성전에 모셔 있는 공자의 모습 ⓒ 정호갑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배우고 제 때에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기에, 늘 배우고 그 배운 것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제대로 익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게을러질 때마다 스스로 채찍질하는 구절이다.

후목불가조야(朽木不可雕也 :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 제자가 부패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공자가 질책한 말이다. 이 또한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로서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함부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닫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도록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일침을 가하는 구절이다.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이 말의 뜻에 대해 도올 선생은 ‘평생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고도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가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공자의 절절한 자기 고백으로 풀이하였다.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렇지만 그 욕구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때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며,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길이 아닌 길을 가기도 한다. 하지만 공자는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홀로 공부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다.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자 한다.

공묘의 거리
공묘의 거리 ⓒ 정호갑
2500여년이 지난 곡부의 거리는 여전히 공자의 거리였다. 공자의 흔적들이 공묘를 비롯한 여러 곳에 남아 있고, 그를 상품화한 많은 물건들이 거리에 나와 있었다. 건물들은 모두 낮아 친근감을 주었는데, 사실 그것은 공자를 모신 사당인 대성전보다 높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 한다.

길거리에는 마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 마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마차를 타고 곡부를 관광하며 공자의 유적을 둘러볼 수도 있다. 이러한 곡부의 모습들에서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 포근함을 맛본다. 시간이 있으면 하루 쉬었다가 가고 싶은 곳이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 ⓒ 정호갑
곡부에서 둘러보아야 할 곳은 공부(孔府), 공림(孔林), 공묘(孔廟)인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알맹이는 공묘이다.

공부는 공자의 후손들을 위해 지어진 관공서이자 사택으로, 공묘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공씨 가문의 대소사를 처리하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공림은 공자를 비롯한 후손들이 묻혀 있는 일종의 가족 공동 무덤으로 그 규모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무덤이라 할 수 있다.

공묘는 기원전 480년 공자가 타계한 다음 해에 제자들이 공자가 직접 강의한 행단에 대성전을 지어 그의 위패를 모신 것이 공묘의 시초였다고 한다.

대성전은 그 규모가 웅장하여 북경 자금성의 태화전에 버금간다. 대성전 정면의 10개 기둥에는 등 비늘을 번쩍이며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용 조각이 깊게 투각되어 마치 용이 살아 하늘로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듯하다. 지붕 또한 황궁에나 쓴다는 황색 기와나 용을 사용하였다.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 앞 돌 기둥에 투각되어 있는 용 조각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 앞 돌 기둥에 투각되어 있는 용 조각 ⓒ 정호갑
이는 공자가 학문의 황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굳이 차이라면 자금성의 태화전에는 오르는 층계가 3단임에 비해, 대성전은 2단이다. 공자는 황제와 같은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대성전 안에는 여러 개의 액자가 걸려 있는데 모두 공자의 학문이나 사상을 찬양하여 놓은 글이다. 공자가 역사에서 어떠한 평가를 받아 왔는가를 알 수 있기에 그것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면서 공자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민생미유(民生未有) :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온 이래로 공자만한 위대한 성인은 없었다는 뜻으로 공자가 성인의 최고봉임을 말하는 것이다.

대성전 안에 걸려 있는 民生未有
대성전 안에 걸려 있는 民生未有 ⓒ 정호갑
만세사표(萬世師表) : 한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강희제는 공자가 만세 제왕의 본보기가 된다는 뜻으로 이 글을 직접 썼다. 곧 공자는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라는 뜻이다.

사문재자(斯文在玆) : 문화와 문자를 비롯한 모든 문명은 모두 다 공자 안에 있다는 뜻으로 공자의 학문과 사상이 그만큼 깊다는 것을 뜻한다.

덕제주재(德齋幬載) : 옛날에 소중한 보석을 옮기는 수레는 장막으로 둘러싸 신성함과 엄밀함을 느끼도록 하였는데, 공자가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돌며 인의와 도덕을 강연한 것을 이에 비유하였다.

성집대성(聖集大成) : 공자를 성인이라고 찬양하는 것은 고대 성현들이 작게 이루어 놓은 도덕 사상을 융합하여 한 곳에 모았기 때문이다. 곧 공자에 의해 모아진 것이 크게 이루어 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화성유구(化成悠久) : 건륭황제가 오경 가운데 가장 깊고 예리한 문자를 인용하여 조성한 것이다. 공자가 인류를 교화시킨 사상과 문화는 역사의 검증을 거쳐 이미 성공한 것이고, 앞으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져 내려 갈 것이라는 뜻이다.

시중입극(時中立極) : ‘시중(時中)’은 공자의 중화(中和)사상에 따라 인류를 교화시키고 군자라면 중화를 수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입극(立極)’은 최고점을 뜻하는 것이니 공자의 중화사상으로 길러낸 사람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뜻한다.

여천지참(與天地參) : <중용>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과 땅의 일에 함께하는 일은 하늘과 땅의 화육(化育 : 천지자연의 이치로 만물을 만들고 기른다)을 돕는다는 것으로, 사람으로서 하늘과 땅에 동참하는 무사(無私)의 자세야 말로 교화된 이상적 인격에서 말미암는다는 뜻으로 공자의 공덕을 찬양한 것이다.

2500여년 시간을 거치면서 공자는 인류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배우고 제 때에 익히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값진 일이며, 그것을 즐거워 할 수 있어야 정보지식화 시대에도 살아 남을 수 있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썩은 나무가 되지 않도록 길러내야 하는 것 또한 여전히 우리가 할 일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이다.

공자의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위해 마음을 다시 추스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